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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Aug 09. 2019

군에는 아직 일본이 살아있다.

군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물.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봉오동 전투] 영화가 지난 수요일인 8월 7일에 개봉했다. 배우 유해진이 극 중 연기한 황해철이 지닌 칼에 아로새겨진 문구에는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라는 사마천의 글귀가 쓰여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치열하게 투쟁한 독립군과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의 상황을 잘 묘사한 글이다. 아베 내각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갈등은 한일 경제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라고 다짐한 오늘 우리가 열광할 요소를 다 갖춘 영화다. 독립군이 승리한 역사를 기록한 영화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우리 군에서 일본은 다 지워졌을까? 1945년 해방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군대의 기틀을 잡아나가기도 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한국은 당장의 눈앞의 적을 처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친일과 반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효과적인 전투 수행을 위해 일본군에서 간부를 지냈던 이들을 그대로 국군 간부로 임명시킬 수밖에 없었다. 전쟁 영웅인 백선엽도 그러한 이들 중 하나로 그는 일본이 세운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해 독립군을 때려잡던 간도특설대로 활약했다. 하지만 백선엽은 해방 이후 국방경비대에 편입되었고 한국전쟁에서 북괴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공로를 세워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이를 비난할 수도 추켜세울 수도 없는 우리 민족이 갖는 아이러니다.


그에 대한 공과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나라 국군 요직에 많은 일본군 출신 간부들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다. 군 지휘계통 간부들이 일본군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히 군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일본식 용어가 굳어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군에는 아직 일본 제국군의 잔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일조/일석점호

아침저녁으로 부대 인원 및 특이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점호다. 우선 점호[点呼(てんこ, 텐코)]는 일본 용어다. 영어로는 Roll-call 중국어로는 점명(點名)이라 부른다. 아직 우리는 점호를 대체할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해병대에서 사용하는 순검(巡檢)이 어쩌면 우리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일은 해병대 순검을 국방부에서 일제 잔재라 하여 점호로 바꾸라는 지침을 내린 적이 있다. 점호도 일본어인데 말이다.


출처: 무한도전 진짜 사나이 영상 캡처


최근에는 일조점호나 일석점호를 대신하여 아침 점호와 저녁 점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조(一朝)/일석(一夕) 모두 일본식 한자 표현이다.



총기 수입

총기 수입이라는 말만 들으면 총을 외국에서 사오는 느낌이다. 내가 처음 군에서 총기 수입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도대체 뭘 하라는 것인지 몰라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영어 Sweep을 콩글리쉬로 사용해서 총기 수입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수입(手入)이란 일본식 한자로 손질의 의미를 가진다. 즉, 총이 늘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닦고 기름칠하는 손질 행위를 일본식으로 수입이라고 아직도 표현하는 것이다. 



작일, 금일, 명일

"명일 부대 훈련 계획 보고 드리겠습니다.", "작일 부대 점검결과 이상 무". 

군에서 보고할 때 또는 보고문에서 많이 사용하는 한자어다. 정확히는 일본식 한자어다. 작일(昨日)을 일본어로는 きのう(키노우)로 읽고 실제로 한자도 동일하게 사용한다. 이를 대신할 우리말인 어제가 있지만 왠지 한자어를 사용해야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 때문인지 아직도 많이 사용한다. 금일(今日), 명일(明日)도 모두 일본식 한자다. 우리말로 순화하면 오늘과 내일이 보다 바른 표현이다. 



사관

[육군 사관학교, 3사관학교, 학군사관, 학사사관, 여군사관, 간부사관...]

군 간부가 되는 모든 과정에는 '사관'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들어간다. 그러나 사관(士官)은 역사적으로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비롯된 단어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문과 무를 나누어 무관과 문관으로 관직을 구분했다. 사관이라는 관직은 없었다. 사관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선비 사(士) 자에 벼슬 관(官) 자를 쓰고 있다. 선비가 벼슬을 했는데 왜 군 간부가 되는가? 이상하다. 하지만 일본어로 보면 이해가 간다. 사무라이 즉 무사가 군의 중추 역할을 한 일본은 무사(武士)에게 벼슬을 준다는 의미인 관(官)을 더해서 사관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올해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지만 아직도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많다. 군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면 언젠가 큰 것도 바뀔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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