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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Apr 26. 2023

조선의 아버지들

백승종 저 | 사우

요즘은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아버지들이 정말 많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버지의 무관심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3가지 조건 중 하나에 꼽힐 정도였지만, 최근엔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


학원 설명회에도 아버지가 와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학교 학부모회 등에도 아버지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곤 한다. 소위 '바짓바람' 열풍이다. 언론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다룬 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난리법석이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나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현상이 아주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아버지가 자식 교육을 책임졌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아버지 12명의 자녀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12명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약용, 이황, 이순신 등이 있는데, 이들이 자식들에게 쓴 편지와 기록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 그들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1_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편지를 자녀교육에 적극 활용했다. 다산은 천주교 신앙을 이유로 유배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두 아들과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녀 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편지를 통해 자녀들에게 훈계한 내용은 첫째, 서울 부근에 살며 높은 문화 수준을 유지할 것, 두 번째는 독서에 힘쓸 것, 세 번째는 재물은 나눠줄 것, 네 번째는 근(勤)과 검(儉), 이 두 글자를 유산으로 삼을 것 등이다.


또한 언제나 명랑하고 밝은 마음을 가질 것도 주문했다. 폐족이 되어 어깨가 축 처진 두 아들에게 늘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강조하며 당당해지라는 충고를 보낸 것이다. 유배지에서도 두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며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다산의 마음이 편지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진심으로 너희에게 당부하는데 늘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라. 벼슬길에 오른 사람과 다름없이 당당하여라."

"... 나날이 네 마음씨가 나빠지고 행동이 비루해져 가기 때문에 여기 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다. (중략) 너의 경학이 조잡해지고 식견이 텅 비어 가는 것도 걱정이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 소소한 사정들은 돌아볼 필요도 없다."



#2_이황


일반적인 부모들은 자식이 말이나 행동을 잘못하면 화를 내고 심하게 야단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퇴계 이황은 마구 야단치지 않고 조용히 타이르고 훈계하며 본인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만약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차분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공부를 소홀히 하는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 이황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너는 본래부터 공부에 뜻이 독실하지 못하다. 집에 머물면서 일없이 세월만 보낸다면 더더욱 공부를 망치게 될 것이다. (중략) 지금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유수 같아 한번 흘러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우니라. 내 말을 천만 번 마음에 새겨 소홀히 하지 마라."



#3_박세당


17세기 조선의 대학자 박세당은 젊은 시절 문과에 장원급제했고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지만, 그런 그도 아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과거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고민이 많았던 듯하다.


그리고 궁리 끝에 아버지로서 아들의 낙방한 시험답안을 분석해 가며 글짓기와 글씨를 훈수했다. 지금으로 보면 논술 학원강사처럼 첨삭지도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정성에 보답하듯, 두 아들 모두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


"... 글짓기를 할 때는 문맥이 평이하고도 순조롭게 흘러가도록 힘써야 한다. 특히 글의 앞뒤를 상세히 잘 따져서 귀결점이 있게 해야, 맥락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글짓기의 요체다. 네가 작성한 시권(과거 시험답안)의 글씨도 문제더구나. 비록 아주 거칠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서툰 점이 없지 않다. 글씨를 쓸 때는 크게만 쓰려고 하지 말고, 시권의 크기에 맞게 쓰는 연습을 하기 바란다."



#4_이항복


<오성과 한음>에 등장하는 이항복은 아들에게는 노련한 선배 관리로서 조언을, 손자에게는 교육에 열성인 할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심지어 손자를 데려다가 본인이 직접 지도하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 책은 한 번 쓱 보아 넘기기만 하면 안 되느니라. 숙독하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손자가 그 책을 다 뗐다 해도 다른 책을 펼치게 하지 말고 두고두고 되풀이 읽게 하여라. 50~60번을 반복하여 읽은 뒤라야 다른 책을 봐도 좋다."

"... 여기서 내가 시도 가르치고 글쓰기도 가르칠 것이다. 다른 대가들의 책도 다 가르치고 싶다. 한 가지 책을 끝내면 네게 보내 여기서 배운 것을 숙독하게 하자."




이 책과 함께 읽은, 김성묵의 책 <아버지 사랑합니다>에는 좋은 아버지의 요소 4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왕'. 왕은 백성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고 비전을 제시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둘째는 '전사'. 위기가 닥쳤을 때 보호할 대상을 위해 용감하게 싸워야 합니다.
셋째는 '스승'. 삶으로 모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격려하며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넷째는 '친구'. 친구는 때로는 다정하고 진실하게 삶을 함께 나누며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승'으로서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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