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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Jun 23. 2023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저 | 어크로스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봤던 아래의 신문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인터넷 서핑을 할 때마다 즐겨 찾아 읽었던 권석천 님의 칼럼들은 읽을 맛이 있었다. 내용도 내용이었거니와 내용을 풀어내는 글솜씨가 훌륭했기에 깊이도 있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가끔은 동의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명문이었고 그래서 생각할 거리도 많았었다.


그분께서 갑자기 로펌 고문으로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다. 언론인으로서 계속 남아계실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책은 그런 아쉬운 마음에 찾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행히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신 후에도 꾸준히 칼럼을 쓰고 계신 것을 확인했다. 그분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 책은 기존에 읽었던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책이다. 일단 가벼운 일상을 다루는 에세이가 아니다. 글 하나하나가 그냥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내용들이다.


쉽게 책장을 넘기기 힘든 글의 제목들


글은 주로 기자를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이나 책, 영화, 드라마에서 저자가 발견한 내용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일상의 편견과 악을 꼬집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31p, <아무도 미끼를 물지 않았다> 中) "... '미끼를 물어버린 자의 책임' 논리는 이 땅의 모든 사건과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중략)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음모다. 무고한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모함이다. 인간을 성욕의 제물로 삼은 자의 잘못이고, 독성물질이 들어간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자의 잘못이고, 바다에 떠서는 안 될 배를 띄운 자, 구조하지 않은 자의 잘못이고,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른 자의 잘못이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


(41p, <악의 낙수 효과> 中) "악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다. 위에서 물이 넘치면 아래로 내려가듯이 악은 계속해서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흘러내린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사에게 되돌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부하에게 내려간다. 스트레스 질량보존의 법칙일까.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중략) 거리에서 분노를 풀 용기조차 없는 자들은? 아내와 자녀에게 푼다. 한국 사회에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가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분노를 배설한다."


(49~50p, <의심하라,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中) "우리는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중략)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66p,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中) "두려움은 노예제의 작동 원리입니다. 한없이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노예를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중략) 한번 노예의 마음이 되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는 게 인간입니다."


(73p,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中) "개기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로 보인다. 개겨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개겨서 과연 달라지는 게 없는가. 달라지는 게 분명히 있다. 개기는 사람 자신이다. 개기면서 결심이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다시 싸워야 할 때 웬만한 충격엔 흔들리지 않는다. 실패의 의미도 달라진다. 실패했을지언정 원칙을 지키고 주장함으로써 가치 있는 실패가 된다."


(121p, <좀비 공정> 中>) "조직 안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평판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 평판을 지키기 위해 양심의 눈을 질끈 감아야 할 때도 있다. (중략)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부 평가나 승진과 관련 없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좀비 공정은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 좀비 공정 속에 집어넣으면 제시된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게 된다."


(127p, <그동안 당신은 어디 있었나> 中)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들이 거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중략)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 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라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며.


(167p, <현실의 헌법에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中) "세상을 움직이는 규칙은 자신에게 발맞추라고 가르친다. 발맞추지 못하면 발맞추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한다. 잘못된 규칙에 길들여지면 그 규칙이 정상으로 보인다. 규칙에 맞춰 살려고 안달하게 된다.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느냐"고 남들에게 눈을 흘기게 된다. 그래서 우린 세상에 길들여지고 있지 않은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200p, <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中) "...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차라리 불편한 사람이 되십시오. 불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원칙을 지키다 보면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해고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히려 빛나는 경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해지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들을 돌파해 내리라 믿습니다."


(218~219p, <현실주의의 세 가지 원칙> 中)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됐다고들 한다. 지겨운 변명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괴물이었던 거다. 현실에서 이기기 위해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중략)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진짜 선수들은 안다. 모든 혁명가는 원칙의 방패와 현실의 칼로 무장한 철학자다."


책장을 덮으며,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글 속에 언급되었던 많은 것들이 비겁했던 나의 과거 모습들과 겹쳐져 마음 한 켠이 뜨끔했다.


낯선 나와 마주치며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는 거냐'며 자문하고, 편견과 관습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이제야 비로소 가져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도 이 분처럼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멋진 글을 남겨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에 함께 품어본다.


(16~17p, <프롤로그> 中) "...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살았을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자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다.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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