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를 다루고 있는 기존의행복 관련 책들과는 달리,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하는 걸까'에 초점을 두어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일반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도 본능적인 하나의 동물이라는 시각에서,행복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이야기하는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신선함을 느꼈던 몇 가지 내용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1_의식적인 사고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이 세상의 많은 책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아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라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것들이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한 사람 안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경험이며, 그중 '생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는 분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은 생존에 절대적이지도, 일상의 경험들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도 아니다. 저자는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의 중요성과 역할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의식적인 사고를 이렇게 과대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여러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보이는 부분이 실제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로 든 내용이 재밌다. 세척제에 주로 첨가된 레몬 향을 우연히 맡고 갑자기 청결에 신경 쓴 엄마. 본인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레몬 향과 청결이 연결되었지만, 딸이 왜 갑자기 걸레를 찾냐고 말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녁에 오시는 손님이 먼지 알레르기가 있으시대." 레몬 향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진짜 이유를 엄마도 모르기 때문에. 소개팅에서도 마찬가지다. 만난 지 몇 분만에 체취와 같은 동물적 감각으로 인해 이 사람은 자기와 맞지 않다고 판단내린 한 여자.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게 되고 그러던 중 그가 피우던 담배가 떠오른다. "담배 피우는 남자라서 싫어."
그렇다면, 행복과는 무슨 상관인가. 저자는 말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왜냐하면 보다 중요한 원인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_행복은 생존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최근 심리학계를 뒤흔드는 연구들의 공통점은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가임기에는 딸이 아버지와 통화 빈도와 시간을 줄인다거나, 어릴 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이성친구는 형제로 받아들이고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여성에 비해 남성이 많은 도시의 경우, 짝짓기 경쟁이 치열해진 남자들의 과소비가 많아진다는 등의 연구결과는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말해준다.
그래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목적론적 명제에서 벗어나, 다윈이 진화론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함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나 목적이 아니게 된다. 다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인 정서에 비해 긍정적인 정서의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에 있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그리고 우리의 생존을 결정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욕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인간이 느끼는 쾌락의 감정이 바로 이 보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불쾌의 감정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3_행복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왜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바로 이 이유를 생존에서 찾는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들과 함께 있을 때 높아지기 마련이기에.
그래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는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희로애락의 원천이 사람이 되었고, 사회적인 경험과 행복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되었다.
행복함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사실 앞의 내용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해 긍정하고 타인과 있는 시간을 좋아하며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들. 그들의 성격과 기질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인간의 생존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알맞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 또 자신의 에너지를 사람과 관련된 것들에 많이 쓴다. 이런 친사회적인 행동은 행복감을 유발하고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이며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4_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이 책은 또한 행복은 어떤 '한 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기 때문에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초기화가 필요하다.이것이 어떤 사건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고 나서 그 일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는 이유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becoming'을 위해 살아가지만, 정작 행복이 있는 곳은 'being'이다. 그래서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필요하다.
저자는 행복을 아이스크림에 비유한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기 마련이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행복하기 위해 거창한 일들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남은 선택은 하나다. 모든 아이스크림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밖에.
이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인의 일상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한다.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먹을 때'와 '대화할 때'였다.즉,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이 말하는, 행복을 느끼는 행위는 바로 음식과 사람, 생존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자의 글솜씨도 책 읽기의 기쁨을 더해 주었다. 특히 도치법으로 쓴 문구들은 글을 읽을 때 즐거운 긴장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쓰기를 할 때 참고해 봄직한 스킬인듯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시누이가 너무 얄미워 한 방 날리고 싶지만 이성의 목소리가 겨우 말린다. 이성 신승.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로 살을 빼겠노라 결심하지만, 결국 늦은 밤 라면을 끓여 먹고 잔다. 밥도 좀 말아서. 본능 압승.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했던 배우 탕웨이 님이인터뷰에서 말했던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 책 말미에서 저자가이야기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음식을 먹고 대화하는 행동이 행복의 순간이라고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행복은 어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먹고 대화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