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저 | 어크로스
(31p, <아무도 미끼를 물지 않았다> 中) "... '미끼를 물어버린 자의 책임' 논리는 이 땅의 모든 사건과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중략)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음모다. 무고한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모함이다. 인간을 성욕의 제물로 삼은 자의 잘못이고, 독성물질이 들어간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자의 잘못이고, 바다에 떠서는 안 될 배를 띄운 자, 구조하지 않은 자의 잘못이고,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른 자의 잘못이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
(41p, <악의 낙수 효과> 中) "악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다. 위에서 물이 넘치면 아래로 내려가듯이 악은 계속해서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흘러내린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사에게 되돌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부하에게 내려간다. 스트레스 질량보존의 법칙일까.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중략) 거리에서 분노를 풀 용기조차 없는 자들은? 아내와 자녀에게 푼다. 한국 사회에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가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분노를 배설한다."
(49~50p, <의심하라,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中) "우리는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중략)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66p,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中) "두려움은 노예제의 작동 원리입니다. 한없이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노예를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중략) 한번 노예의 마음이 되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는 게 인간입니다."
(73p,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中) "개기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로 보인다. 개겨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개겨서 과연 달라지는 게 없는가. 달라지는 게 분명히 있다. 개기는 사람 자신이다. 개기면서 결심이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다시 싸워야 할 때 웬만한 충격엔 흔들리지 않는다. 실패의 의미도 달라진다. 실패했을지언정 원칙을 지키고 주장함으로써 가치 있는 실패가 된다."
(121p, <좀비 공정> 中>) "조직 안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평판에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 평판을 지키기 위해 양심의 눈을 질끈 감아야 할 때도 있다. (중략)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부 평가나 승진과 관련 없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좀비 공정은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 좀비 공정 속에 집어넣으면 제시된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게 된다."
(127p, <그동안 당신은 어디 있었나> 中)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들이 거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중략)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 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라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며.
(167p, <현실의 헌법에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中) "세상을 움직이는 규칙은 자신에게 발맞추라고 가르친다. 발맞추지 못하면 발맞추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한다. 잘못된 규칙에 길들여지면 그 규칙이 정상으로 보인다. 규칙에 맞춰 살려고 안달하게 된다. "왜 규칙을 지키지 않느냐"고 남들에게 눈을 흘기게 된다. 그래서 우린 세상에 길들여지고 있지 않은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200p, <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中) "...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차라리 불편한 사람이 되십시오. 불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원칙을 지키다 보면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해고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히려 빛나는 경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해지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들을 돌파해 내리라 믿습니다."
(218~219p, <현실주의의 세 가지 원칙> 中) "괴물과 싸우다 보니 괴물이 됐다고들 한다. 지겨운 변명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괴물이었던 거다. 현실에서 이기기 위해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중략)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진짜 선수들은 안다. 모든 혁명가는 원칙의 방패와 현실의 칼로 무장한 철학자다."
(16~17p, <프롤로그> 中) "...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살았을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자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다.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