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yan Choi
Jul 31. 2023
서로의 세계는 존중받아야 한다.
비판과 논쟁, 상대방의 세계를 부정하는 일
1. 논쟁의 불편함
최근 인터넷상의 여러 논쟁들을 보며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 혹은 본인이 잘 모르고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과 글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는 KAIST 정재승 교수의 '명상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유사과학 비판과, INSEAD 김위찬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에 대한 비경영학자들의 비판이 있었고, 대중적으로는 모 웹툰 작가 아들 관련 사건에 대해 여러 논쟁들이 있었다.
이런 논쟁들을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그 불편함의 감정을 잠시 곱씹어 보니, 아마도 비판을 하는 사람들과 그 비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고 헤아려 보며 불편함이 시작되었던 듯하다.
비판과 그로 인한 논쟁은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서로 간의 앙금과 상처를 남기게 된다. 비판은 비판의 대상인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보다 입장 차이만 확인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데일 카네기의 책 <인간관계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논쟁에서 이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논쟁을 하지 않는 것." 비판은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 사람의 생각'에 대한 것임에도,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비판을 당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인 미움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논쟁을 하고 난 뒤의 효과가 크지 않다면, 오히려 그로 인한 폐해가 더 크다면, 굳이 해야 할 일인가 싶은 것이다.
2.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뇌 가소성'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던 책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의 표제이기도 한 이 문구.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 위에서, 즉 각자가 만든 세계 속에서 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본인의 관점대로 상대방의 말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경험은 각자 다르기에 어떤 사실을 바라보는 생각도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상 내가 만든 세계에서 바라보는 이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로 느껴지는 것이다. 살아온 배경이 서로 다른 상대방과의 대화가 왜곡되기 쉽고, 소통이 어려운 이유이다.
과학에 대한 논쟁에서도,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과학'도 결국 한 사람의 생각의 일부라면,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틀인 '과학'도 결국 사람이 이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도구일 뿐이라면, 하물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야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본인이 잘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과 다른 생각이 있다면,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무지와 겸손함을 바탕으로 나의 다른 생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정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상대방의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이나 경험, 그동안 갈고닦아온 의견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행위는 그 사람이 가진 세계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대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대방도 자신이 만든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의 세계를 부정당하기 싫다면, 나도 상대방의 세계를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의 세계는 각자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