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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Sep 15. 2023

내가 유독 싫어하는 상대방의 모습에서 나를 찾다.

칼 융의 '그림자 투사'

어떤 사람이 몹시 미울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계속 곱씹게 되거나, 하루가 지나도 마음속 분노와 짜증이 잊히지 않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방과 나 사이의 어떤 사건과 그로 인한 대응 때문이겠지만, 만약 이유 없이 그 사람이 밉거나, 유독 그 상대방을 싫어하는 강도가 다른 경우에 비해 특별히 높다면, 그건 상대방에게서 나의 못난 모습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칼 융(Carl G. Jung)이라는 심리학자가 말하는 '그림자 투사'라는 것이다. '그림자'는 쉽게 말해, 내가 의식의 영역에서 알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대비되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내 자아의 어둡고 열등한 면을 말한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부족하고 숨기고 싶은 모습을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서 발견하게 되면, 그 대상에게 자신의 모습을 덮어씌우고 이를 공격하고 비난하며 본인의 죄책감과 불안을 덜어보려는 행동(투사)을 하게 되는 것이다.


The most dangerous psychological mistake is the projection of the shadow on to others; this is the root of almost all conflicts. (가장 위험한 심리적 실수는 자기 안의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분쟁의 근원이다.)


그래서 만약 나의 '그림자'를 미리 알아챌 수 있다면, 잘못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투사되는 것을 막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리 알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투사되는 마음을 보고, 나의 '그림자'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림자 투사는 생활 속 가까이서 자주 마주치는 가족이나 자녀에게 발현되는 경우가 많고, 직장생활과 같이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경우에도 주로 발현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소중한 상대방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 더욱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다. 잘난 척하는 사람을 원체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그리고 스스로의 어두운 모습을 숨기고자 과장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숨기고 싶은 모습이 드러나려 할 때, 굉장한 공격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곤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모습은 나의 숨기고 싶은 내면의 모습과 일부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처음 깨닫게 된 순간,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었다.


전부 상대방의 잘못으로 여겨 왔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그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그 기분은 정말 비참했다. 자괴감이란 바로 이런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칼 융이 말했던 '그림자 투사'였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고 약점이 있다. 본인의 약하고 어두운 모습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앞서 말한 '그림자 투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낮은 자존감을 올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도 꼬아 듣지 않고 순수하게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남에게 화살을 돌리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본인의 내면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나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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