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과정에서 스타트업 경영과 관련된 수업을 들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찾다 보면, 간혹 이거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이고 반드시 성공할 만한 것인데 왜 아무도 안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사람들이 안 하는 이유가 분명 있기 때문이라고.아마도 스타트업은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음을, 그래서 더욱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셨으리라.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인 업무, 절차 같은 것들이 있어 고쳐보려고 내용을 파다 보면, 그렇게 답답하게 해 놓은 이유들이 다 있더라는 이야기다. 뭐든 다 나름의 이유들은 있었고, 그 원인들을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의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누군가가 상대방을 이유 없이 비난하고 헐뜯는 것을 지켜보다 나중에 알고 보면 내가 모르는 그들 나름의 서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물론 이유 없는 비난들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다 어떤 이유들이 존재했다. 내가 좀 더 주의 깊게 보았다면 알았을 것들이다.
금융업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금융업권에서 일하다 보면, 일부 핀테크 기업들이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프레임에 빠져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 말대로 본인들의 방법만 혁신적인 것이고, 기존의 레거시 금융회사들은 다 지금껏 바보짓만 해왔다는 것일까.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기존 금융회사들도 괜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금융 규제의 틀 내에서전통적인 방법을 유지하고 있었던그들에게도다 나름의 이유들이있었다.
뭐든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이제 새로운 것을 비판하고 바꿔보려는 열정은 많이 약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보수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기존에 만들어 놓은 체계들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내 마음이, 그리고 인생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이제는 설익은 패기와 젊음보다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것을 일궈온 과거의 노력들에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과거와 현재의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나의 행동에서도, 내가 경험했던 지나간 어떤 사건들에서도 그때 그랬던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세상 일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속에 다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나의 세계는 지금보다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