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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Dec 05. 2023

유전자 로또

캐스린 페이지 하든 저/이동근 역 | 에코리브르

재능, 계층, 교육 수준, 소득... 이 모든 인생의 결과 결국 유전이 결정하는 것인가? 


이 책은 유전과 공정, 그리고 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생은 어차피 불평등하고, 사회는 불공정한 구석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삶 속에서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이 책에서는 유전으로 인해 결정되는 삶의 시작점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유전적 차이를 과학적 증거들로 보여주면서, 이 차이가 '유전자 로또'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유전을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62) "우리는 각자 모두 70조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만들어진 유일한 사람이다. 70조는 어떤 부모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는 고유한 유전자 조합의 수다."


기막힌 비유들이 몇 가지 나온다. 유전자 조합을 요리 레시피에 비유한 것이라든지, 안 좋은 시력은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유전자 조합을 레시피에 비유한 것은, 정확히 똑같은 레시피로 요리하더라도 사용한 원재료나 환경 변화에 따른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유전자가 실제 단백질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도 조직마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서로 달라질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즉, 사람의 인생도 단순히 유전자만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됨을 말하는 것이다.


안경으로 시력을 교정한다는 비유는 유전이 시력을 나빠지게 만들었지만 안경은 유전이나 환경 원인에 상관없이 모든 시력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본인이 로또처럼 받은 유전적 격차를 '안경'이라는 외부 개입(사회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유전학과 통계학에 대한 사전 지식을 공부하게 한 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는 단계로 지평을 넓혀 나간다. 유전으로 인한 차이는 인정하되 공정함과 평등을 갖춘 사회 시스템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2부 <평등 똑바로 이해하기>' 챕터부터는 좋은 유전자로 인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줄곧 이어진다. 저자의 주장은 아래의 5가지로 요약된다.


(p311-312)
1. 유전자 데이터를 사용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결과의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적인 개입을 발굴하자.
2. 유전 정보로 사람을 분류하지 말고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과 지위에 도달할 기회를 개선하자.
3. 유전정보는 소외가 아닌 공평함을 위해 사용하자.
4. 인생의 결과에 작용하는 운에 유전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능력주의의 논리를 약화시키자.
5. 유전자 로또에서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


그리고 저자는 본인의 주장이 편견이나 오해로 인해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책 말미에 오십여 페이지에 걸쳐 참고문헌을 가득 수록해 놓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 비단 외모나 성격뿐만 아니라, 학력과 재산, 소득도 해당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고 환경에 의해 유전적 요인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칫 유전자에 의해 인생의 결과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비관적 결론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 이 책에 나온 것처럼 - 자기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한편, 사회 시스템에 의한 외부 개입으로 유전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다소 급진적인 주장들의 경우에는 전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유전적 요인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이해하며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나는 삶 속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평소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면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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