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an Choi Dec 28. 2023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저/유혜자 역 | 문예춘추사

'삶을 견딘다'는 것과 '기쁨'이라는 단어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오랜만에 가벼운 에세이 한 편을 읽어보려고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중학교 시절의 추억에 이끌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던 사춘기 그 시절의 감성에 잠시나마 젖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40여 개의 짧은 에세이들을 엮은 모음집인데, 하나하나의 글 속에는 작가가 바라보는 삶의 모습들이 때론 밝고 따뜻하게, 때론 무겁고 어둡게 그려져 있다. 깊은 사색에서부터 비롯된,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난 몇 가지 구절을 뽑으면 다음과 같다.


(67p) "행복과 고통은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잘 이겨 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 (중략)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


(101p)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이미 지나가 버린 날들의 쾌락을 되새기는 것은 그 맛을 다시 곱씹는 일일뿐만 아니라 행복의 모습, 그리움의 기억, 천상의 모습으로 승격한 추억들을 항상 새롭게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삶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따스한 온기,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이 표현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날에 주어지는 선물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픔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104~105p) "...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불만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함과 무질서함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자연의 모습에 맞설 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수 있다."


(151p) "시간은 참으로 묘하다. 그것은 자기 내면으로 고통받으며, 세상을 더 힘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섬세한 발명품이자 정련된 도구다. 인간이 간절히 원하고 소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고약한 발명인 시간에 의해서만 분리되었다. (중략)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면 오늘과 현재를 잃게 되고, 그것과 관련된 현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넉넉한 시간과 관심은 고스란히 오늘에 허락하라."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면, 왜 이 책의 제목이 <삶을 견디는 기쁨>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고통과 슬픔이 함께 하고, 무미건조하며 덧없고 권태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힘겹고 괴로울 때가 많지만, 살면서 느껴지는 이 고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우리네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저자의 생각 역시 그러하다. 삶의 잔혹함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다. 오직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해서만이 삶에서 느껴야 할 소중한 가치와 기쁨을 깨닫고 즐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그 의미를 외면하지 않은 채 용기를 갖고 헤쳐나가야만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은 온전한 기쁨의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올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며, 삶의 용기를 되찾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읽기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전자 로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