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저 | 마티스블루
얼마 전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동네로 이사를 했다. 반가운 마음이 컸는데, 더욱 기뻤던 것은 이사 온 아파트 바로 옆에 예전에는 없었던 구립 도서관이 새롭게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건물도 새로 지어 깔끔한 그곳에서 한동안 분위기에 취해 책을 뒤적거리다가 오랜만에 좋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발견한 책의 제목은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내가 즐겨보던 자기계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된 하지현 교수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그간의 정신과 진료 경험과 본인의 삶을 토대로 '일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에세이를 펴냈다.
오랜만의 나른한 휴일을 맞아, 이 책을 읽으며 책 표지에 적힌 글처럼 '일에 먹히지 않고 나를 지키는 마음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고민했다. 정신 건강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알찬 조언들이 많아 더 좋은 책이었다.
(20~21p) "... 그럼에도 내가 내 삶을 조종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감과 선택의 자유는 나를 지켜내는 힘이 되어준다. 선택권이 없는 삶은 동물원의 코끼리와 같다. 행동의 자유도, 먹을 것을 고를 자유도, 먹지 않을 자유도, 아플 자유도, 움직이지 않을 자유조차도 없다. 그것이 그들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중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계속 망설이거나 후회하기보다 내가 결정한 것을 받아들이자. 이를 반복하고 반복하다 보면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상황에서나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쥐고 있는 것은 '나'이고 그것이 내 삶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다."
간혹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져 무력감을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작고 사소한 모든 일상 속에서, 여러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며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스스로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과 선택의 자유는 나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직장에서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하루를 견뎌낼 수 있다면 분명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순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48~49p)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부분 확실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 잘 모른 채로 모든 상황이 종결될 때가 더 많다. (중략) 인생은 복잡한 방정식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멋진 비유이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방정식'이라는 말은 결국 풀 수 있는 문제이고 내 능력이 없어서 못 푸는 것이라고 오해를 부르는 말이다.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든다."
(122p) "우연이 일어났고 원인도 알 수 없으며, 특별한 의미도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 많다. 한두 번 더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고 해서 맥락을 찾고 디테일의 반복에서 패턴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이다. 원인을 찾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쓰지 말자. 원인을 찾기 어렵다면 그런가 보다 하면서 포기하고 그냥 지내도 된다."
'정확한 원인 찾기의 함정'이라는 내용의 글도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일들은 정확한 원인이 없거나 확실한 원인을 알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하며,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쓰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차라리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조언한다.
마치 저자가 내게 직접 해주는 말 같았다. 나는 늘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의 원인과 논리적인 맥락을 찾아내려 습관처럼 노력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일들이 많음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편하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66p) "단조롭고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소모되고 닳고 있다고 생각하면 흘러가는 나의 시간만 아깝다. 그러나 사실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뭔가 쌓여간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벽돌을 차곡차곡 쌓듯이 눈에 들어오는 확연한 성장으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더디고 또 더디다."
보이지 않는 축적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그 축적의 시간이 내 안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 결국 매일의 일상이 쌓여 내가 성장한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 결국은 나를 지켜주고 기회가 왔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173p) "한계가 어딘지 감을 잡은 사람은 90%까지 갔다가 올 수 있지만,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사람은 50%만 사용하고도 그걸 120%라고 오인할 수도 있다. 너무 무리하다가 뚝 부러지면 문제가 있지만 한계상황까지 한 번쯤 가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중략) 힘을 빼는 것은 처음부터 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는 과정을 거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힘을 주는 요령도 모르는 초보자가 힘부터 뺄 수는 없다. 이미 경지에 오른 사람이 결과적으로 보면 힘을 빼는 것이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힘을 쓰고 노력한 시간이 많았기에 힘 빼기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힘을 빼고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일단 힘을 한 번 쓸 만큼 써본 사람이 만든 여유 공간이다."
예리한 저자의 지적이었다. 한계까지 가본 사람만이 힘을 빼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법이다. 한계치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힘을 주는 요령조차 모르는 초보자라면 한계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조언은 참 값진 것이다.
(195~196p) "모두가 실력이 어중간할 때는 운의 영향력이 적다. 실력이 낮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100%를 만들려면 70~90%를 채워줄 만한 대형 사건이 벌어져야 한다. 그에 반해 모두가 실력이 뛰어나서 딱 5~10%만 메워주기만 하면 될 때, 운이 작동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1~2년에 한 번 오는 대형 태풍이 아니라 평소에 비가 오는 수준의 확률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운이 더 중요하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만들어진다."
왜 성공한 사람들이 운이 좋았다고 했는지 저자의 글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결국 현재의 내 실력이 30%라면 최소한 90%까지, 아니 최소한 70%는 올리려는 노력과 시도를 하는 것이 정답이다. 내 실력을 올려야 운이 제대로 작동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저자의 팩폭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외에도 혼자 있을 때, 회사에서 근무를 할 때, 회의에서 내 의견을 말해야 할 때 등 내게 주어진 상황과 역할에 걸맞는 적당한 감정의 톤을 찾으라는 조언(61p)이나 보상, 의미, 재미, 관계 등 저자가 일을 고르는 4가지 기준(81~83p)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꽤나 공감이 되었다.
또한 좋은 선택을 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최선을 고르려 하다가 진을 빼는 것이 아니라, 최악이 아닌 것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실제로 최선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조언(102~103p)도 일상에서 분명 적용해 볼 만한 것이었다.
그동안 읽은 책들 중에 처음 한번 쓱 읽고 나면 다시 읽어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간혹 몇몇 책은 숙성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 처음 읽고 나서 몇 가지 내용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고 하루 정도 지나 다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다시금 생각이 정리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에서 내면의 단단함을 찾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삶을 꾸준히 나아가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곁에 두고 틈틈이 꺼내 읽으며, 매일의 선택 속에서 나를 지키는 마음의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