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생각이 숙성되는 시간
발효 음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된장, 김치, 요구르트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된 음식들은 단순히 보존을 위한 목적을 넘어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글쓰기나 생각의 정리에도 발효의 원리가 적용된다.
브런치스토리에 쓸 글감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 메모장에 키워드만 써둔다. 그리고 며칠씩 머릿속에서 숙성시키고 가다듬는다. 그러다 생각이 정리되면, 실제로 글로 쓸 때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한을 정해두고 충분히 숙성시킬수록 더욱 감칠맛 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조급하게 쓴 보고서나 거칠게 내린 판단보다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숙성된 생각들이 더 깊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묵혀두는 시간이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머릿속에는 항상 그 생각들이 자리하면서, 전혀 다른 영역에서 얻은 통찰이 연결되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생각들이 모여 새로운 관점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묵혀두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보고서를 쓸 때도 미리 여러 자료를 통해 초안을 완성한 후 시간을 두고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면 아침에는 놓쳤던 중요한 내용이 저녁이 되어서야 눈에 들어오곤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을 쓸 때 당장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정리해 내는 것은 어렵다. 초고를 쓰고, 다시 고치고,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서 비로소 문장 속에 담긴 생각이 선명해진다. 며칠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시간이 지난 후에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쓰는 행위' 못지않게 '머릿속에서 묵히는 시간'이 중요하다. 기한을 무작정 늦추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발효에도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듯, 생각의 숙성에도 적정한 기간이 있다. 너무 오래 묵히면 신선함을 잃고, 너무 성급하면 깊이가 부족해진다.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발효의 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익어가는 생각들은 결국 우리에게 더 나은 판단과 더 좋은 글, 그리고 더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 생각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조급한 생각은 아직 덜 익은 과일처럼 떫고 풍미가 부족하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숙성되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충분히 숙성된 생각이 더 단단하고 설득력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기다림이다. 기다림 속에서 생각은 발효되고 글은 완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깊은 향과 맛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