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사람이 끝내 이기는 사람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내게는 짙은 안개와도 같은,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직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고민과 한계들은 가벼이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차마 내색할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이 오롯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고, 철저히 혼자 감내해야 했던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냈다. 말 한마디 꺼낼 곳 없이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그 침묵의 무게는, 때로는 숨이 막힐 만큼 나를 옥죄어 왔다.
그 쓰라린 감정의 밑바닥에는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깊은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변 동료나 회사 밖 잘 나가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느낀 치기 어린 시샘도 있었고, 나 홀로 모든 짐과 책임을 다 뒤집어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며 고통과 짜증으로 점철된 나날을 만들었다. 이 무거운 짐을 기꺼이 나누어 짊어질 사람이 곁에 없다는 뼈저린 현실과, 상황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향한 말 못 할 섭섭함이 쌓여가던 날들이었다.
그것은 분노이기도 했고, 서러움이기도 했으며,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이렇게 날 선 내면의 감정들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어, 숱한 밤 동안 마음속에서 글을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당장이라도 토로하고 싶은 마음들이 글자들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을 드러낼 용기는 쉬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만 한 가지 바람만은 놓지 않으려 했다. 이 시련을 이겨낸 어느 날, 그때의 고통을 솔직하게 되새기며 이 글을 세상에 내어놓겠다는 생각이었다.
일상의 순간들이 힘들수록, 답답한 마음에 매몰되는 대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나를 성장시키는 방식이 무엇인지, 나를 일깨우는 대화는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흔들리는 중심을 조금씩 다잡으려 했다. 감정과 태도, 자기 관리도 나름대로 붙잡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는 단어라는 말이 내게도 해당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를 집어삼킬 듯했던 그 시기는 곧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삶이 꼬였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 운동하는 것이었다. '일'은 위태로운 나의 일상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고, '운동'은 막혀있던 숨통을 조금씩 틔워 주었다. 내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조용히 일에 몰두했고,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남모를 억울함과 원망을 게워냈다. 그 과정은 결코 우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일하고 운동하며 묵묵히 버티다 보니, 신기하게도 엉킨 매듭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 숱한 밤들이 모여 마침내 2월의 어느 날, 작지만 단단한 결실 하나가 조용히 내 손에 쥐어졌다. 크게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었고,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혹독하고 괴로웠던 그 시기를, 그저 주저앉기 위한 핑계로 남겨두지 않고 나름대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 그리고 나를 더 단단하게 제련하는 연단의 과정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 실제 결과보다 더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과거의 아픔과 옹졸했던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때 남몰래 쓰고 지운 미완의 글을 이렇게 꺼내놓는다. 나를 연단했던 그 지독한 시간은 일단락되었고, 뜨거운 불꽃 속에서 연단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단단해졌다고 느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나는 다시 3월부터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힘차게 달려보려 한다. 앞으로도 분명 시련이 찾아오겠지만, 짙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냈던 이 기억을 작은 밑천 삼아 다시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동안 나를 옥죄고 괴롭혔던 그 짐과 시간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도, 홀로 감내해야 했던 시간도, 원망했던 이들도,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동력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찰도 없었을 것이고, 위기가 없었다면 버티는 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었던 시간과 남몰래 삼킨 감정까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나를 연단해 준 이 시간들에 조용히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