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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Jan 15. 2023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선택

우리가 내린 선택이 우리 자신이다.

We are what we choose.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는 2010년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감히 한 가지 추측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여든 살쯤 돼서 조용히 홀로 사색에 잠겨 살아온 날들을 가장 내밀한 인생 스토리로 스스로에게 들려준다고 해봅시다. 아마 그 순간 가장 간결하고 유의미한 서사는 여러분이 내린 일련의 선택들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내린 선택이 우리 자신입니다."


돌이켜보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결국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반복해 왔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의 수많은 '선택'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물로 인해 나는 '현재의 나'로서 나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크든 작든 어떤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특히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선택을 요구받았을 때는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1_선택에는 '기한'이 있다.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선택이 항상 괴로움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선택에는 기한이 있다는 점이다. 그 기한까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괴로움은 사라진다. 기한은 이미 정해져 있기도 하지만 때론 본인이 직접 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는 '포기'라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기도 하고, 새해 목표로 금연을 결심한 사람은 올해부터는 꼭 담배를 끊겠다는 명확한 목표의 기한이 존재한다.


다만, 그 기한까지는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의 가치관과 주어진 조건에 맞는 가장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만 한다.


나 역시 여느 직장인들과 비슷하게 첫 직장생활 3년을 맞이하며 고민이 많았었다. 이 커리어로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길인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공부도 더 하고 싶은데, 등등. 그리고 과감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MBA 과정이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졸업 후엔 공대생&IT 커리어에서 벗어나 금융업으로의 커리어 전환에 성공했다.


내가 졸업했던 해에 내 나이가 만 30세였는데 커리어 전환을 꿈꾸던 많은 형, 누나들이 많은 나이와 경력으로 인해 커리어 전환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선택의 '기한'에 대해 다시금 실감했다.  



#2_선택에는 '책임'이 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의 결과는 좋든 나쁘든 오롯이 자신만이 감내해야 한다. 본인의 선택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선택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조언과 각종 지원을 해준다 하더라도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본인만의 몫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내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과가 좋다면, 그 결과를 마음껏 즐겨야 하고, 결과가 나쁘다면, 그 결과를 다른 선택에 대한 후회로 채울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게 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참고자료로 쓰면 될 일이다.


내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많은 도전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책임은 아무래도 나의 아이에 대한 것이다. 한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무겁게 누른다. 그리고 나의 그런 좌충우돌 육아의 여정 속에서 나를 키우신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3_선택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선택을 위해서는 '나다움'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기준이 있어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기준점이 없는 결정은 일관성이 없다. 상황에 따라 쉽사리 바뀌는 결정은 '나다움'을 나타낼 수 없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합리적이지만 않다는 것은 행동경제학과 심리학 등의 학문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비합리성을 최소화하면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에서 '나다움'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목표와 기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 내가 소속된 직장은 4번째 직장이다. 사실 이직을 꽤 많이 한 편이다. 이직을 여러 번 하게 되면서 직장을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을 것,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일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일 것.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기준이 남아있다. 그것은 절대 직장 선택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않을 것. 누구는 어떤 직장에 다녀서 연봉이 얼마고, 복지혜택이 어떻고, 어떤 게 좋고... 각자의 사정과 조건, 잘하는 것이 다르다.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 하고만 비교해야 한다. 남의 장점과 나의 단점을 비교해 봤자 남는 것은 낮아진 자존감뿐이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해 '나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 나만의 목표와 기준을 잡아야 한다.  



#4_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선택의 충돌


하지만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는 없다. 내가 태어나는 것, 나의 부모님, 나의 이름, 나의 국적이 대한민국인 것 등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미련을 갖고 후회하던지, 아니면 더는 미련을 갖지 말고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선택을 위해 떠날 다짐을 하던지 말이다.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


때론 나의 선택이 다른 이의 선택과 충돌하는 경우도 생긴다. 학창 시절의 반장선거에서, 대학입시의 경쟁에서, 직장에서의 승진 후보자 간에서, 아파트 청약 추첨 속에서...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선택이 모여 거대한 선택의 탑이 만들어지고, 그중의 누군가의 '선택'이 '선택'된다.


나의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에 '기한'이 있다는 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 선택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선택이 '나다움'을 만든다.


40대로의 진입을 코앞에 둔 나에게 '나다움'을 제대로 확인시켜 주었던 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던 20대 청춘의 내가 보았던 나의 모습은 경계가 흐릿한 동그라미 속의 모습이었다. 아메바가 물속에서 이리저리 유영하듯이, 흐릿한 경계 속에서 아들로서, 회사원으로서, 남자 친구로서 경계를 넘나들며, 그리고 소소한 선택들을 해가며 경계를 넓히고 줄이고 경계선의 벽돌을 쌓아가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던 중 5년의 연애 끝에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을 하겠다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흐릿했던 동그라미의 경계가 조금씩 뚜렷해짐을 느꼈다. 이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는 수만 가지 선택들의 연속이다. 낳는 것을 결심하는 것부터 어떻게 육아를 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선택이 필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나는 내가 속한 동그라미의 경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의 역할, 때론 아들, 때론 아버지, 때론 남편으로서의 내 자아, 그리고 내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속에서 나의 경계와 '나다움'을 재확인한다.



#5_앞으로의 선택, 그리고 새로운 '나다움'을 꿈꾸며


몇 년 전부터는 나의 새로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느라 고생 중이다. 회사에 다니며 어렵사리 박사과정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준비했던 논문도 하나 둘 학회지에 게재되고, 회사 일도 해나가면서 바쁜 나날을 영위 중이다.


학위논문 주제 또한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선택'과 관련된 분야이다. 이 분야는 개인 또는 집단이 어떤 정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Decision Science)이다.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한 것은 계속 마음에 품고 있던 학문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도 '나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작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나의 동그라미가 너무 단단해지기 전에 밖에서 동그라미를 당겨보기도 하고 안에서도 밀어보며 새로운 선택의 설렘을 꿈꾼다. 바닥에 쓰여있는 직진 표시만 보고 움직였는데,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지나온 길이 모두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새로운 선택을 해나가며 나를 나답게 해주는 선택을 위해,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나다움'을 위한 나만의 '선택 매뉴얼'을 차분히 준비해 본다.


+ 몇 년 전, 지금보다 열심히 살았던 어떤 시절에 브런치에 올렸다가 지웠던 글을 다시 편집해 올려본다. 지금은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또 다른 삶의 선택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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