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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욱 May 22. 2019

더 똑똑해질 가능성.

AI, 바이오해킹, 고전철학에 대한 잡담.

“인류는, 진화가 더 나은 두뇌를 제공할때까지 수백만년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누트로픽(Nootropic)의 아버지. 코르넬리우 쥬르지아 박사(Dr. Corneliu E. Giurgea)의 말이다.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더 명확한 인식을 주는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이러한 본능은 인간이라는 종의 기저에 흐르는 근원적인 욕구이다. 지능의 확장을 위한 시도, 시행착오는 진화의 역사이다. 성공한 시도, 돌연변이는 자연선택 되어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각성감을 주고 업무의 생산성을 상승시키는 물질. 대부분의 지식산업 노동자는 커피를 이용해 주의력을 고양시킨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님에도, 커피는 우리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어있다. 카페인이 해롭다는 막연한 인상에도, 커피를 향한 우리의 욕구는 사그러들줄 모른다. (사실, 적절한 사용은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


이 진화의 방향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진화압은 지능적인 개체에 대한 짝짓기, 사회위계의 자연선택과, 고양되고 각성된 정신에 대한 본능적인 선호로 표현된다.


마치, 애벌래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될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러한 진화의 방향성과 압력은 항상 우리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AI를 향한 강한 동력은 지금 인간의 발전단계를 특징짓는 현상일지 모른다. 인간은 도구를 만든다. AI 기술은 도구인 기계가 감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지니는 것을 향한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AI의 발달이 대뇌피질 위에 또다른 고등두뇌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게 작용할 것이라 예측한다. 인간을 특징짓는 고등지능의 원천인 대뇌피질. 대뇌피질은 포유류의 본능을 담당하는, 보다 원시적인 기능의 번연계를 따른다. 번연계가 만족되는, 보다 똑똑한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대뇌피질의 근본적인 역할이다.


이 대뇌피질 위에, 대뇌피질의 목적을 돕는, 전 세계의 지식에 연결된, 압도적으로 빠른 연산과 추론이 가능한 기계의 지능인 AI가 연결될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이미 어느 수준으로 경험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인류는 현재 인체 바깥에 확장된 두뇌를 만드는 것에 거대한 규모의 집단적인 작업을 하는 중인 것이다.




인간의 몫.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까? 혹은, 인간의 생각은 더이상 가치가 없게 되진 않을까?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은, 1,2차 산업혁명을 상기해보는 것으로 얼마간 명확한 판단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노동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필요한 일손이 줄어들었다. 어떤 이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무가치하게 되었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노동력에 대한 필요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새로운 지능과 능력에 대한 요구가 새로이 생겨났다. 노동의 형태는 관리, 마케팅, 디자인 등으로 점차 다각화되었다. 더욱 고도화되고 특화된 지능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AI의 발달 또한 그러할 것이다. AI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AI가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설정하고, AI가 연산한 바를 바탕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거대하게 통합된 AI가 몇 세대동안 존속되어, 한 개체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를 축적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더 길고 전체적인 시간성에서 AI가 판단하는 바가, 인간의 원초적 욕구에 기반한 판단과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은 있다. 마치, 대뇌피질의 이성적인 판단을 거부하는 번연계의 본능적인 욕구처럼. 하지만, 이 먼 미래의 상상속 시나리오 또한 우리의 의도와 노력의 결과물로 탄생할 것이다. 현재로선 기계가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숙제이다.



균형잡힌 사람은 대뇌피질이 목적하는 바와 번연계가 욕망하는 바가 크게 불화하지 않는다. 균형잡힌 인간이라면, AI의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존중하고, 보다 인간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맥락. 인간 지능의 역할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막대하게 커진다. 더 깊게 사고하며, 더 다양한 정보를 다루며, 더 창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더더욱 요구될 것이다. 감정적인 안정성과 협업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요구 또한 늘어나는 중이다. 지능에 대한, 사회의 막대한 요구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직업과 부의 분배를 통해 점진적으로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다.



더 똑똑해질 가능성.


기존에 우리가 지녔던 지능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믿음.

노력과 능력의 발달이 비례한다는 믿음.


교육 시스템은 이를 반영한다. 모두에게 같은 것을 가르치고, 같은 것을 평가한다. 좋은 자질과 스스로의 노력이 받침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이다. (과외학습 등으로, 이러한 기본적 변인에 추가적인 이점을 얻고자하는 것이 대단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평한 기회를 주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다원적인 지능을 억압한다는 점, 두뇌의 성장을 결정하는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경시한다는 점으로 인해 사회 지능의 총량을 제한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능력)*(노력)=결과.


지능의 조건은 이 단순한 공식보다는 심대하게 다층적이다.


우선, 영양, 운동, 수면은 지능의 발현에 결정적인 영향이 있다. 이러한 개선 가능한 요인을 등한시한채, 자신의 한정된 능력을 막연히 타고난 것으로 여기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양, 운동, 수면이 지능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낸 방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기각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 본래의 동작법을 무시하고, 재능이나 노력만을 강조하며, 열정을 강요하는 가치체계. 위계를 통해 가능성을 억압하고, 구성원의 성장을 가로막는 조직의 일관된 특성이다.


더 높은 밀도의 영양, 더 효과적인 운동, 더 깊은 수면을 통해 두뇌의 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이러한 시도는 바이오해킹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자신의 체질에 최적인 식단.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운동법. 수면의 방해요소를 분별해 제거하는 시도. 모두 두뇌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실천 위에, 테크놀로지, 심리학, 약학 등의 접근을 통해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밈(Meme)으로 유명한 레이 커즈와일(Ray Kurtweil)은 이러한 적극적인 모든 시도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목소리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는 중이며, 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에 의해 인간의 모든 바램. 영생, 우주로의 확장, 무한한 지능이 달성되는 특이점이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 지능의 가속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의 블로그 이름은 지능을 가속하기 : Accelerating Intelligence이다.)


그는 하루에 150종이 넘는 보충제를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열성적인 바이오해커인 내게도 좀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느껴지긴 한다.) 수명을 연장하고, 지능을 확대하는 모든 시도에 대한 최대치의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겠다.

Ray Kurtweil's Supplements Stack


중도. 탁월함에 대하여.


현재까지 알려진, 지능을 확장하기 위한 모든 시도들. 이를 모두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1=100%라 상정해보자.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충분한 영양, 적절한 운동, 깊은 수면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결과는 70% 즈음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충분하게 여겨질 두뇌의 성능일 것이다. 다른 복잡한 시도들에 주위가 분산되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달성할 가능성 또한 있다.


*(장수와 퍼포먼스 향상을 연구하는 의사인 Peter Attia 박사의 언급이다.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진단에 어느정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양, 운동, 수면이 이롭다고 해더라도, 과식, 운동 중독, 늦잠의 나태함이 길은 아닐 것이다. 적절히,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동서양의 고전철학을 가로지르는 ‘중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탁월함은 적절함 안에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것이 바로 탁월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깨어있는 주의력으로, 경험을 얻어가며,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실천들을 다듬어나가는 길. 이러한 길에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할 수 있다. 앞서 먼저 경험한자, 스승의 역할은 탐구의 길잡이로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이러한, 인간에게 올바른 생활습관을 제시하는 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정보는 상품의 광고가 되어버렸다. 이 시장경제의 질서 속, 무한의 소비를 추동하는 방종과 즉각적인 쾌락은 암묵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누구도 탁월함을, 충만하고 책임있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스스로의 삶을 가꿔나가야 할 이유. 더 나아져야할 이유. 삶의 의미를 밝혀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의 발견은 성장의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추구하면 누구에게나 충만한 삶이 찾아온다. 참된 행복은 충만한 삶의 부산물과 같다.


삶의 의미. AI는 결코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미는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한정된 삶을 초월하는 거대한 의미, 대의를 향한 열정이 된다. 기계는 이러한 시간의 유한성을 인지할 수 있을까? 자신의 한계 바깥으로 향하는 열정을, 인간이 기계에 심어놓으려 시도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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