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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욱 Apr 11. 2019

단식에 대하여.

모든 종교에는 단식의 전통이 있다. 


 단식은 몸을 정화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 더 나아가 더 높은 차원의 의식(Altered State of Consiousness)을 향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명을 가로질러, 모든 전통적인 종교에는 단식의 제의들이 존재한다.


 종교는, 역사를 거치며 축적된 집단적 지식이 인코딩/부호화된 문화의 체계이다. 서로 다른 종교가 서로 다른 형태를 띄더라도, 서로 다른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믿더라도. 종교가 권하는 가치체계는 한 문명의 경험, 그에서 비롯된 축적된 지혜라는 점은 동일하다. 


 진화의 과정에서 기근은 다반사였다. 기근에서 살아남은 일은 어떤 경험을 남겼을 것이다. 부족했던 음식을 다른 이에게 양보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은 생존을 위한 수단을 벼리는 진화의 압력으로 동작했을 것이다. 많은 추측과 상상이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단식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음락 9월, 라마단 기간동안에는 해가 떠있는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모든 쾌락의 추구를 금한다. 유대교에는, 욤 키푸르라 불리는 속죄일이 있다. 이 날은 하루종일 음식을 먹지 않는 전통이 있다. 이 외에도, 유대민족 역사에 뼈아픈 사건이 있었던 날을 기리며, 저녁을 먹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제의를 함께 경험하는 문화 공동체는, 문화적인 결속력이 강해진다. 같은 사건을 겪고 같은 것을 행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공감하고 신뢰감을 느낀다.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 시간을 보내며 금욕을 위한 정신력과 배고픔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은, 한 문화 공동체에게 무척이나 강렬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방종함, 나태함, 낭비, 사치. 악덕과 타락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며, 가지지 못하고 굶주린 자들에 대한 공감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계급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사회의 안정을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미있는 도덕의 가치를 퍼트리고, 결속을 굳건히 하여 사회를 건강하게 할 방법을 궁리했던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집단적 실천의 장점을 바로 알아보았을 것이다.


 깨달음이라 통칭되는, 도덕적으로 완성을 이룩하기 위한 과정인 수행에서도 단식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힌두교 전통사회에서 성장해, 독립된 종교를 탄생시킨 고타마 붓다. 그는 인도 사회의 종교적 열망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 수많은 수행법이 난립하며 다투던 시기에 활동했다. 그는 수행기간동안, 당시 사회에 존재하던 모든 수행법을 섭렵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수행법이 단식이다. 목숨의 경계까지 단식 고행 밀고나간 싯다르타는 다시 먹고,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다시 밥을 먹은 그 자리에서 명상에 잠겨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었다.


Fasting Buddha


 그는 후에 현악기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나태함과 방종이 느슨하게 풀려있는 줄과 같다면, 단식과 같은 고행은 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과 같다. 느슨하게 풀려있는 줄은 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지나치게 당겨진 줄은 끊어져버리고 만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적절히 당겨진 줄과 같아야한다.’ 중도의 가르침이다.


 그는 이후의 삶에서, 하루 한 번 식사하는 ‘간헐적 단식’법을 실천했다.

 기독교 전통에서도, 단식의 전통은 깊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사탄과의 씨름을 이겨내고, 선지자로 거듭난 전설이 있다. 이러한 40일 단식의 전통은, 모세와 예레미아도 겪어낸, 선지자의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Christ in the Desert

 이러한 장기간의 단식은, 속세의 일상과는 다른, 높은 차원의 의식을 경험하는 통로가 된다고 한다. 신의 말씀을 체현하기 위해서는 속세의 물질을 비워내야 했던 것일까? 이러한 의식의 변화에는 어떠한 원리가 있을까?



단식의 정신적 효과.


신경전달물질 중, GABA라는 물질이 있다. 평온함, 안정의 신호이다.

 

GABA (γ-aminobutyric acid)



 많은 약물이 이 가바를 겨냥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흔한 약물인 알콜은 바로 이 가바 수용체를 민감하게 만드는 작용기전을 지닌다. 대표적인 진정기능의 정신과 처방약 중 하나인 벤조디아제핀은 가바의 활동을 증가시킨다. ‘물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성범죄에 악용되기도 하여 악명을 떨치는 약물 GHB는 가바 수용체에 직접 작용해, 용량에 비례하는 안정효과를 가져온다. 고용량을 섭취하면 의식을 잃는다.


 이처럼 GABA의 활동을 조작하는 약물이 흔한 이유는, 아마도 너무도 많은 자극이 펼쳐져있는 현대사회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주의를 끌어야 살아남는 시장경제와 미디어. 그 자극의 경쟁은 현대인의 정신을 쉴 수 없게 만든다. 밤낮을 잃은 조명으로 인해, 밤의 휴식은 더이상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현대인은 안정감, 휴식에 굶주려있는 것이 아닐까? 


 단식이 이틀을 넘어가면, 몸은 지방을 잘게 쪼갠 것을 포도당을 대신하는 에너지로 사용한다. 이 잘게 쪼갠 지방이 케톤(Ketone)이다. 이 케톤의 대표적인 형태는 BHB(Beta-Hydroxybutyrate)이다. 이 BHB는 GABA로 전환되기 쉽다. 케톤을 주된 에너지로 사용하는 케토시스 상태가 되면, GABA의 양이 크게 늘어난다. 정신이 안정되고 집중이 쉬워진다.


BHB (β-Hydroxybutyric acid)

 저하된 당분대사의 효율로 인해, 대사의 부산물로 인해, 염증으로 인해 저하되어 있던 두뇌의 기능이 리부트 되는 효과 또한 있다. ‘브레인 포그’라 하는, 두뇌에 안개가 낀 듯한 성능 저하는, 두뇌 세포가 당분을 사용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신호이다. 세포에서 쓰지 못한 당분은 두뇌에 손상을 가하는 요인이 된다. 단식은 쌓여있던 대사의 부산물과 염증을 제거하고, 당분대사의 효율을 정상화시킨다. 단식이 끝나도, 깨끗해진 두뇌는 남는다.


 배고픔을 참아냈다는,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을 자발적인 의지로 해내는 것. 이 또한 단식의 중요한 정신적 효과일 것이다. 몸의 근본 욕구인 식욕을 이겨내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신체의 욕구를 극복하는 체험이다. 이러한 체험은 환경과 조건에서 자유로운, 굳은 의지력이 자라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단식의 의료적 효과


 박테리아, 쥐, 인간.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가장 고도로 진화한 생명체까지. 종을 가로지르는 실험을 통해, 칼로리를 제한하는 시기를 겪은 개체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관측된다. 다른 수명연장을 위한 다른 어떤 시도도, 이런 분명하고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다.


 현대인이 겪는 대부분의 질병은 과섭취에서 비롯된다. 만병의 근원이라 지목되는 대사증후군. 이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몸이 에너지를 지나치게 저장하고, 제대로 쓰지는 못하는 증상이다. 마치, 연료만 많이먹고 잔고장이 끊이질 않는 낡아버린 자동차처럼, 먹는 것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 그 에너지 생성의 부산물이 엉뚱한 곳에 쌓인 것.


 몸은 적응의 물체이다. 음식을 먹지 않을 때 일어나는 적응의 현상이 바로 단식의 효과이다.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감지한 몸은, 먼저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동작하던 기능이 떨어진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교체한다. 필요없이 쌓여있던 것들을 태워 에너지로 쓴다. 쓸모가 없는 것은 버린다. 그리고, 다시 음식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새로운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 계획을 세운다.


 서양 철학의 기초를 세운 철학자 플라톤은 단식을 예찬하며, ‘나는 더 효율적인 신체와 정신을 위해 단식한다’는 말을 남겼다. 단식을 통해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플라톤의 말에 잘 담겨있다. 단식은 나태하고 느슨해진 신체를 바짝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수많은 질병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과학적 연구에 근거를 둔 현대의학은 단식의 효과를 발견하고 있다.


 암 예방효과를 강조한 토마스 세이프리드 박사(Dr. Thomas Seyfried). 대사질환의 획기적 치료책임을 역설하는 제이슨 펑 박사(Dr. Jason Fung). 탁월한 수명연장 효과를 말하는 발터 롱고 박사(Dr. Valter Longo). 치매의 원인을 극복하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말하는 데이빗 펄머터 박사(Dr. David Perlmutter).


 그들은, 현대인의 만성질환에 어떠한 처방약보다 효과적인 것이 단식이라 입을 모은다.



단식을 시작하면.


단식은 크게 간헐적 단식과 긴 단식으로 나뉜다.

 16시간~20시간동안 공복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은, 몸이 지방을 연소하는 능력을 높히고, 음식이 모두 소화되는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 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두는 실천이다. 생활의 습관으로 삼으면 일상의 에너지가 늘어나고, 체중이 조절되고, 신진대사가 개선되는 이점이 있다. 


 보다 긴 단식은, 생활 습관이 아닌 개인적인 의식(ritual)의 성격을 띈다. 긴 단식만이 지닌 효과가 있다. 단식이 3일 이상 지속되면, 면역세포가 새롭게 갱신되기 시작한다. 필요없는 세포와 조직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줄기세포와 성장호르몬이 들어선다.


 단식은, 첫 날과 이틀째가 가장 힘들다. 배고픔을 이겨내야한다. 단식이 처음이라면 두통을 경험할 수 있다. 몸은 독소를 지방에 저장해두는데, 쌓아놓기만 하던 지방이 대사되면서 독소또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배고픔과 두통은 이틀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3일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진다. 몸이 저장된 지방을 안정적으로 에너지로 사용하는, 케토시스가 찾아오며, 배고픔이나 식욕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은 어느때보다 맑고, 사고에 명징함이 생긴다. 이러한 상태는 단식이 마무리될 때 까지 이어지는데, 7일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단식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21일까지 단식을 연장하기도 한다. 그 이상의 단식은 분명한 목적이 있거나, 의료적인 도움이 있는 경우에 시도하길 바란다.


 단식을 시도하기 전에, 이미 영양부족이거나, 아직 성장기에 있거나, 임신중이라면 단식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방을 에너지로 연소하는 신진대사를 위한 미량영양소가 부족하다면, 단식 전에 가득 채워두는 것이 좋다. 최대한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으며, 마그네슘과 비타민 D3를 따로 보충해주는 것을 권한다.



단식 후에.


 다시 음식을 먹게 될 때, 자신이 평소에 먹는 음식 중 소화가 어렵지 않은 음식으로 식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단식의 경험은, 자신이 음식과 맺고있는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쾌락을 위해, 습관에 의해, 몸에 해롭거나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을 먹고있진 않았는지.


 가장 몸에 이로운 것을 정성을 들여 준비해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하여 먹도록 하자.



음식에 대한 첨언.


 몸에 이로운 식품보다 더 감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음식이 살아남도록, 현대의 식품환경이 짜여져있다. 가장 값싼 재료로 가장 중독적인 맛을 내는 음식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긴다. 이에 길들여지면, 멈출 수 없이 먹게되어 필요없는 것들이 몸에 가득하게된다.


 식용유와 정제된 탄수화물을 최대한 피하도록 하자. 신진대사에 손상을 가하는 재료들이다. 특히 식물의 씨앗에서 화학적으로 추출된 식용유는 두뇌기능에 치명적이고, 세포의 기능을 파괴한다.


 동물성 지방, 올리브유, 코코넛유, 오메가-3와 같은 자연적인, ‘좋은’ 지방을 식생활의 뼈대로 삼도록 하자. (20세기의 편견과는 달리) 자연적인 지방은 인체에 필수적인 구성요소이자, 깨끗하게 대사되는 주요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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