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좋아해요?"
"네!"
"아니오!"
'네!"와 "아니오!"는 모두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이다. "네!'라고 대답한 사람은 '현재의 나'이고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은 "과거의 나'다. 과거의 나는 노래방의 '노'자만 들어도 소리 없이 도망가던 사람이었다. 반대로 현재의 나는 노래방을 사랑해서 툭하면 '노래방 가자!'라고 외치는 사람이다.
노래방 그리고 과거의 나
내가 초등학교 다녔을 때 친구들이 노래방을 외치면 난 미친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 초등학교 생활을 다룬 에피소드를 읽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필리핀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에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 충격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노래방은 내게 즐거운 장소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가게 되면 탬버린을 치거나 노래하는 친구들을 위해 관객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노래방에 가기 꺼렸다. 뒤늦게 목소리를 내고 다녔는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르게 되면 무조건 친구와 함께 불러야 했다. 주변 친구들은 나의 노래방 공포증을 잘 알고 있어서 노래방 모임이 생기면 내게 미리 알려주었다. 그러면 나는 안도하면서 '응, 너희끼리 잘 놀아!'하고 응원한다.
'난 왜 노래방 가기 싫었지?'
노래방 공포증이 있었던 시절을 떠오르고 스스로 했던 질문이다. 외국인 어린이였을 때는 충분히 이해 갔다. 죽어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아서 이유가 명확했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은 아니다. 그때부터 이미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노래방을 싫어할 이유가 사라진다. 고민 끝에 짧은 대답을 찾았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데 미숙해서 그랬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외국인이라는 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아가는 단계였다. 그리고 '차미화'라는 한국 이름에서 '라일라'라는 본명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소심하고 예민했던 외국인 어린이가 '나 자신'을 찾는 청소년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찾아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노래하기 힘들었다. 노래는 그냥 목소리를 내어 부르는 행위지만 나에게 노래란,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긴 시간 동안 나를 표현하지 않고 나를 억누르기만 해서 노래와 같은 표현 활동이 낯설었다. 노래방에 가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부른다. 현재의 나는 두 가지의 이유로 좋아하는 곡이 생긴다. 첫 번째는 좋은 멜로디, 두 번째는 가사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곡의 멜로디 위주로 좋아하는 곡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가사 생각을 잘 안 한다. 멜로디가 좋으면 된다.
노래 가사는 사랑 이야기, 슬픈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등 인간이 흔히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가사가 사람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보지 않았다. 내가 내 인생을 잘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외국인의 삶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가 입을 열면 그 현실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중학교 때부터 난 그 현실을 인정했기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아직도 목소리를 안 내는 습관이 남아있었다. 말을 하기 시작해도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잘 안 하는 이유도 과거의 습관 때문이다.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그 현실을 안 보고 무시하는 습관이 남아있었다.
노래방에서 노래하기까지의 과정
방대한 계획을 세워서 노력하는 일은 없었다. 난 단순한 방법으로 노래방 공포증을 극복했다. 대화를 하면 목소리 볼륨을 높였고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면 도망가지 않았다. 용기를 내고 마이크를 잡을 때가 있지만 아쉽게도 단독 공연이 아닌 합동 공연일 때가 많다.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큰 발전으로 여겼다.
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목소리를 자주 내서 그런지 좋아하는 곡의 기준도 달라졌다. 이젠 가사를 보기 시작했다. 내면의 충돌에 알맞은 곡과 가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아 충돌과 내적 갈등 위주의 음악을 찾다 보니 록 또는 판타지 호러에 가까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젠 좋아하는 곡을 선정하는 기준에서 가사가 포함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라는 인간을 노래로 표현할 줄 몰라서 용기가 없었다. 노래방과 노래를 깊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고 '그냥 노래인데 왜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하고 웃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라는 인간이 그런 사람인데.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그냥 받아들이자.
노래방 그리고 현재의 나
대학교 때부터 마이크 잡고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업 시작하기까지 1시간 남았는데 뭐 할까?"
"노래방!"
"야, 진정해."
대학 때 내 모습이다. 시간만 나면 친구에게 코인 노래방 가자고 졸랐다.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이크를 받으면 그것을 던지려는 외국인이 현재 마이크를 먼저 잡았다. 노래방을 싫어했던 외국인이 어쩌다가 노래방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수 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일이다. 어려운 수업과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고 친구는 그런 스트레스를 노래로 푸는 것이 최고라고 설득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친구 따라 주변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갔다. 예전에는 박수만 치고 나왔지만, 그때는 스트레스가 심각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결과는 만족. 한국 사람들이 왜 노래방을 자주 가는지 뒤늦게 이해했다. 마음껏 부르고 나니 내 목과 영혼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노래방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트레스가 심각했던 나 자신을 표현했다.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면 노래방에 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목적이었다. 나중에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슬픈 일, 기쁜 일, 답답한 일이 생기면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 노래 선곡은 내가 느꼈던 기분에 따라 다르다. 친구들은 내가 미친 듯이 부르는 모습을 영상에 담겼다. 나는 마이크를 든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릴 때 무서웠던 노래방이 현재 나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고마운 공간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