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국인의 마지막 교복 생활

한국생활 2n년 차 외국인의 추억

by 라일라 메이

'우리 학교 경사 높잖아. 눈이 엄청나게 오는 날에, 학교에서 밧줄을 내려준다는 전설이 있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런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가 있다. 바로 대원여자고등학교다. 외국인의 삶을 강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비교적 예민하게 보냈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다르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유쾌했다.


대원여자고등학교, 그리고 나의 과거

KakaoTalk_20201201_063320333.jpg '헤어스타일에 신경 더 쓸 걸 그랬나'하는 생각을 들게 한 신입생 사진입니다.

이름을 되찾은 외국인


"10번 라일라."


'차미화'라는 한국 이름으로 살아온 외국인이 드디어 본명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1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내 본명을 밝힌 후에 일어난 일이다. 선생님은 본명을 쓸 생각 없는지 내게 질문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나는 차미화가 아닌 라일라로 살기 시작했다.


"라일라 어디가?"

"일라야! 같이 가!"

"메이야 어딨어?"


어색했지만 좋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차미화라는 이름으로 살았는지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어떤 친구는 라일라를 그대로 불렀고, 어떤 친구들은 별명처럼 '일라'라고 불렀다. 나를 '메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다. 필리핀은 first name(첫 이름), middle name(가운데 이름: 주로 엄마의 성), Last name(아빠의 성)으로 나뉜다. 내 첫 이름은 '라일라 메이'이다. '메이'라는 이름은 첫 이름의 두 번째 단어에서 나왔다. 본명으로 살아온 소감을 말하자면 '기분 최고'다. 나 자신을 되돌린 기분이라서 중학교 때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고등학교 추억이라면 빠질 수 없는 '야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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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율학습, 일명 '야자 시간'은 한국의 외국인 고등학생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는 야자 시간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지내야 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싫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가 밤늦게까지 오래 있고 싶은가. 운명을 받아들인 나는 체념한 상태로 야자를 했다. 그럼 외국인 학생은 야자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공부를 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부는 하긴 했다. 그런데 공부만 하지 않았다. 중간에 쪽지를 가지고 친구와 장난치고, 공부하고 있는 친구의 가방을 몰래 숨기기도 하고, 야자를 하다가 친구들과 함께 학교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공부하라고 만들어진 야자인데 내가 딴짓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해야 하는가.'


야자 시간은 성적 오르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중 하나다. 독서실에 가기 힘들거나 집에서 공부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 야자 시간이 주는 공부 효과를 인정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전교생이 필수적으로 야자를 해야 하는 규칙이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나는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이런 대화를 했다. 그때 야자 시간의 개념을 몰라서 친구들이 설명했다.


"우리 고등학생 되면 야자 시간을 하게 돼."

"그게 뭔데?"

"밤늦게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야."

"다 하는 거야?"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필수일걸?"


공부해야 성공한다. 지식을 쌓아야 성공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꼭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성공의 열쇠일까. 누군가에게 공부란 밖에 나가서 영감을 얻고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공부란 몸을 움직여서 세상을 느끼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법일 수 있다. 내 꿈도 마찬가지다. 나는 문학과 예술에 관심 있어서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는 것보다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는 것이 훨씬 낫다.


다시 언급하겠다. 나는 야자 시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야자 시간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야자 시간을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야자는 필수'라는 흔적이 남아 있다. 야자 시간이 전교생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다. 나에게 도움이 안 됐다.



외국인 고등학생, 동화책을 제작하다.

중학교 편에서 작가의 꿈을 키운 이야기를 언급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소설 쓰기가 공책 7권을 완성하는 기적을 낳았고 그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교외 동아리에 들어가서 두 권의 동화책을 제작했다. 동화책 제작에 참여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난 정말 글밖에 없구나.'


공부하면 힘들다. 글쓰기도 공부처럼 힘들다. 똑같이 힘든데 다른 점이 있다.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기만 하고 억지로 하는 기분이 든다. 글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지만 성장하는 기분이 들고 뿌듯함이 생긴다. 글쓰기를 향한 내 끈기와 열정을 보고 '난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교외 동아리도 동화책을 완성할 기회가 있어서 들어간 것이다. 다른 일을 하면 나는 만사가 귀찮은데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면 없던 열정과 끈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글쓰기를 향한 끈기와 열정을 자세히 보면 '내 세상을 표현하는 욕구'와 연결된다. 글쓰기가 나만의 세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했다. 내가 중학교 때 썼던 소설과 고등학교 때 제작했던 동화책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 '나의 세상'이 들어가 있다. 각각 내용이 달라도 그 속에 나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나의 세상이 담긴 글을 보고 이해하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좋아해 주면 나라는 인간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무의식으로 모든 작품 속에 내 세상을 담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공감해주면 소설 속 인물이 아닌 작가인 나를 공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런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끝까지 작가의 꿈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대원여자고등학교, 그리고 나의 현재

오랜만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보면 피식 웃고 지나가게 된다. 학창 시절 추억 중에 고등학교가 제일 즐거웠다. 물론 언제나 즐거운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 준비 때문에 방학과 휴일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가만 보면 그런 시간을 재밌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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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시간도 마찬가지다. 야자 시간이 시작될 때마다 괴로웠지만 그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좋아하는 책도 읽고,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이외 공부도 했다. 선생님들이 안 계실 때 친구의 가방을 숨기고 재밌는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나에게 고등학교란 재밌는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내 본명을 되찾아준 고마운 장소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학창 시절 관련해서 내게 질문하면 난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중에 어떤 시절이 재밌었나요?"

"고등학교 시절이요. 최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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