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국인의 인생 테마파크

한국 생활 2n년 차 외국인의 추억

by 라일라 메이

난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친구 만나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 설레는 사람이다. 그저 낯선 사람이 많은 공간에 있으면 쉽게 힘 빠진다. 과거의 나는 낯선 사람 3명만 모여도 쉽게 예민해지는 사람이었다. 이랬던 나에게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좋아하는 예외의 공간이 있다. 바로 테마파크, 롯데월드다.


롯데월드 그리고 나의 과거

롯데월드를 떠오르면 이상하게 짜릿하고 두근거린다. 롯데월드 도착할 때마다 늘 설레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뇌가 '롯데월드=설렘'이라는 감정 공식을 저장했다. 롯데월드는 설레는 공간인 동시에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음향 연출만 잘 되면 과몰입을 하는 외국인 어린이여서 사람들이 안 무섭다고 하는 어트랙션이나 효과를 보면 쉽게 움찔해진다. 그래서 롯데월드는 사람이 많아야 안정적인 기분이 든다. 혼자서 그런 좋은 효과를 맛보고 싶지 않다.


롯데월드에 가면 주로 다크라이트를 타게 된다. 다크라이드는 정해진 이동 수단을 타고 눈 앞에 펼쳐지는 모험을 경험하는 어트랙션이다. 내가 롯데월드를 방문하면 늘 타는 다크라이드들이 있다. 바로 신밧드의 모험, 파라오의 분노다.

신밧드의 모험

롯데월드에 가면 늘 첫 번째로 타야 할 다크라이드가 있다. 바로 신밧드의 모험이다. 신밧드의 모험은 내 인생의 첫 번째 다크라이드다. 스토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신밧드와 함께 모험을 떠나 아리아나 공주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배를 타게 되면 무서운 동굴, 음침한 숲 속, 그리고 감옥을 지나 공주가 납치된 곳까지 도착하게 된다. 한마디로 신밧드가 고생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밌는 어트랙션이다. 무서운 동굴을 지나면 외눈박이 괴물을 볼 수 있고, 더 가면 머리가 3개 이상인 드래곤을 구경할 수 있다. 난 어릴 때 신밧드의 모험이 무서웠고 엄마가 '신밧드의 모험을 타러 가야지.'라고 말하면 움찔했다. 나를 움찔하게 만든 것은 외눈박이 괴물과 드래곤이 아니다. 바로 배를 타자마자 두 번 정도 아래로 떨어지는 부분이다.


'신밧드의 모험'의 신밧드와 아리아나 공주(2002년 사진)


부모님과 함께 처음 신밧드의 모험을 탔을 때 나는 3살 혹은 4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배를 타고 어둠 속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고 그 후유증으로 아빠를 꽉 잡고 울었다. 어둠 속에 두 번이나 떨어진 외국인 아기가 겁을 먹었으니 이어서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과 드래곤을 보고 울었으리라 확신했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신밧드의 모험을 타러 갈까?'라는 말을 내뱉으면 싫다고 울었다. 다행히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신밧드 모험에 대한 공포심이 떨어졌다.


파라오의 분노

내 인생의 두 번째 다크라이드는 파라오의 분노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또는 5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아직도 신밧드의 모험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은 새로운 다크라이드가 생겼다. 심지어 테마는 영화, 미이라를 떠오르게 하는 피라미드 탐험이다. 파라오의 분노는 입장하는 순간부터 고난이었다. 대기줄 건물부터 내 안의 겁쟁이를 깨웠다. 안에서 이집트 미라를 연출하는 소품과 음향 효과가 설치되었다. 중간에 나타나는 바람 소리와 미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 때문에 당당하게 걸어갈 수 없었다. 당당하게 걸어가려는데 미라가 튀어나올 것 같은 웅장한 소리를 듣자마자 멈칫하게 된다. 현실은 그저 재밌는 효과와 연출인데 그러한 연출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상상 속의 나는 피라미드 속에 갇혀서 미라에게 도망 다니고 있다.


파라오의 분노를 타기 전에 신밧드의 모험보다 두 배의 공포심을 느꼈는데 막상 타보니 재밌었다. 지프를 타기 전에 '중간에 미라가 내 머리카락 잡는 연출은 없겠지?'하고 벌벌 떨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도 무서운 부분은 있었다. 중반 정도 벌레가 나타나는데 벌레가 내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두 다리를 올렸다. 그때 처음 보는 부모님의 손님 무릎 위에 다리를 올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럽다.



롯데월드 그리고 현재의 나

롯데월드의 연출 때문에 내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것이 내 안의 겁쟁이를 깨웠다. 조금이라도 웅장한 효과음이 나면 쉽게 움찔해지기 때문에 롯데월드에 사람이 많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난 강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눈앞에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가짜임을 인식한다.


과거의 나는 겁이 많아서 다양한 놀이기구를 탈 수 없었다. 반대로 현재의 나는 롯데월드 가면 남들처럼 즐길 수 있다. 물론 귀신의 집과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놀이기구를 제외하고 다 괜찮다. 누군가가 '신밧드의 모험을 타자!' 아니면 '파라오의 분노를 타자!'라고 하면 난 '응!'하고 앞장설 수 있게 되었다.


인생 첫 롤러코스터

마지막으로 롯데월드를 방문했던 때가 2년 전이었다. 그때는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놀이기구를 탔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벤트까지 겪었다. 난 그때까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았다. 무서워서. 그런데 대학 동기가 내게 같이 타자고 설득한 바람에 내가 그의 설득을 듣고 정신 차리기도 전에 놀이기구에 타버렸다. 이번에 즐기자는 마음으로 탔다. 롤러코스터를 타본 소감은 이렇다.


'와,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네.'


처음에 무서웠지만, 나중에 롤러코스터가 주는 스피드를 즐겼다. 롤러코스터처럼 스릴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탈 때 무조건 소리를 질러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소리를 안 지르고 침묵하면 내 안의 겁쟁이가 나타나서 '우린 지금 죽고 있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즐긴다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소리 지르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린 기분이었다.


인생 첫 좀비를 만나다.

다크라이드 타고, 롤러코스터를 타서 새로운 경험을 맞이한 후 매직 아일랜드로 향했다. 매직 아일랜드는 롤러코스터처럼 시원한 비명을 질러야 재밌는 놀이기구 위주로 구성된 곳이다. 그때는 핼러윈 시즌이어서 밤이 되면 좀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비 아일랜드

좀비 아일랜드로 변한 매직 아일랜드로 가기 전에 경고판을 보고 움찔했다. '심장 약한 사람들'을 언급하자마자 대충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상했다. 그래서 일행과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서우니까. 매직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여기저기 하얀 연기가 일어났고 몇 명의 좀비들이 돌아다녔다. 함께 온 일행은 부모님과 친구들이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기념으로 사진 찍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아빠가 사진을 찍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내 옆을 가리켰다. 난 '설마'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우어어억!'하고 소리 내는 좀비와 마주쳤다. 그리고 '아, 이런 식으로 좀비 이벤트가 흘러가는구나.'하고 깨달았다. 나는 처음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데 나중에 좀비 분장이 눈에 띄어서 뒤늦게 감탄했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 롯데월드를 방문하지 못했다. 그래서 롯데월드가 그리울 때마다 다크라이드 영상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는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신밧드의 모험을 보는데 화면 속의 지하수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영상 말고 직접 그 냄새를 맡고 타고 싶은데. 코로나 사태 끝나면 무조건 롯데월드 가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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