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때 반 친구들과 함께 몸빼 바지와 '구수'라는 단어가 적힌 빅 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멋을 냈다. 참고로 액세서리는 하트 모양의 핑크 선글라스였다. 우리 반이 돌아다니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옷 예쁘네!'라는 말을 하면서 웃는다. 여기까지 좋았다. 어른들이 '어머, 어디 학교니?'라고 하면 우린 서로 눈치를 보면서 3초 동안 고민하게 된다.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이라고 말해? 아니면 줄여서 동대부여중이라고 해야 돼?'
이름이 길어서 학생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이 학교는 바로 내가 졸업한 중학교다. 중학교 추억은 초등학교보다 유쾌했다. 초등학교 때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서 내적 갈등을 안고 살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난 어느 정도 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 그리고 나의 과거
중학교 입학식 끝나고.초등학교를 졸업한 외국인 어린이는 절망에 빠졌다. 남들은 교복 입는다는 생각에 설렘을 느꼈지만 난 설렘보단 소름을 느꼈다. 교복 입으면 뭐해. 초등학교보다 무서운 곳인데. 텔레비전에 나온 중학생들의 삶을 보고 기겁했다. 학생이 지각하면 운동장을 뛰거나 더 엄한 벌을 받았고 선생님들은 몽둥이를 들고 수업했다. 사실 몽둥이는 아니고 그냥 칠판에 적힌 핵심 단어를 가리키는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데 그 당시 내 눈에는 그냥 몽둥이로 보였다. 청소년이라는 존재가 반항의 아이콘이라서 그런지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중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더 엄격하게 대하는 모습이 많았다. 난 화면 속의 중학교 생활이 내 미래가 될 거라는 확신에 중학교 입학식이 될 때까지 속으로 벌벌 떨었다. 나에게 첫 등교는 죽음의 D-day와 같았다.
어두운 과거로부터 해방
내 이전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면 제목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외국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6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어떻게 말을 안 했는지 다시 설명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전 글의 역할이 사라지기 때문에 설명은 여기까지 하겠다.
6년의 침묵 생활이 지친 나는 내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식 때 용기를 내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된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안녕?"
"헐, 미화가 말을 했어!"
친구들은 내 변화를 보고 충격과 감탄을 했다. 그들은 처음에 내게 간단한 질문을 해서 대화를 시도했고 난 종이가 아닌 목소리를 사용해서 대답했다. 처음에는 낮은 목소리로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두 번 정도 대답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가 익숙해져서 내 목소리가 어느새 일반 볼륨으로 설정되었다. 종이가 아닌 말로 대화하니까 편했다. 따로 종이와 펜을 준비해서 친구들과 소통할 필요가 없다.
6년 동안 말을 안 했으니 남들보다 대화하는 것에 약했다. 만약 아는 지인이 그 말을 들었다면 "아닌데? 너 그때 한국말 되게 잘했는데?'하고 부정할 수 있다. 난 그때 말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입 다물고 고집을 부린 경력이 있어서 그 고집이 말로 옮길 때가 있었다. 원래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의견이 갈라지면 대화로 협상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한 의사소통이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 때 좀 모난 외국인이어서 말로 고집을 부릴 때가 많다. 이런 내 모습 때문에 주변 친구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화하는 법을 배웠으면 친구들을 덜 피곤하게 만들었을 텐데, 그것을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말을 잘하지 못했다.
제2의 가짜 이름 생활
"차미화."
선생님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도 가짜 이름을 달고 3년 동안 등교했다. 차미화라는 이름으로 오래 살았는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부정과 익숙함의 재밌는 조합이었다.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불리기 싫었지만 막상 친구들이 내 본명을 부르면 어색한 기분이 들고 내 본모습이 들통 난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라일라의 세상이 희미해지고 차미화의 세상이 짙어졌다. 차미화의 세상이 커졌지만 난 여전히 차미화로 불리기 싫었다. 더 웃긴 사실은 라일라로 불리면 어색하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를 '미화야'라고 부르면 내 반응이 빨리지는 동시에 거부감이 들었고 누군가가 나를 '라일라'라고 부르면 반응이 늦어지면서 어색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라일라 소리 들으면 이상하게 숨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나 보다. 누군가가 내 본명을 부르면 그런 소리로 들렸다.
'있잖아. 넌 사실 차미화가 아니라 라일라잖아. 차미화가 거짓말하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
내 안에 약해진 라일라는 차미화를 싫어했다. 차미화가 라일라의 모든 것을 뺏고 억지로 존재감을 드러나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면 라일라가 얼마나 차미화를 싫어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성격과 모든 것은 분명 라일라인데 사람들은 그 존재를 차미화로 인식했다. 과거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차미화와 친밀하게 지냈다. 괜히 미안해져서 이 글을 쓰자마자 나 자신에게 말했다.
"라일라, 미안해. 그때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지금보다 잘해줄게."
외국인이 외국인을 만나다
초등학교 때 '나 혼자 외국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딜 가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마자 '나 혼자 외국인'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졌다. 입학식이 되었을 때 일본,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을 보게 되었다. 그들을 본 순간 안도했다.
'아, 나 이제 혼자가 아니야.'
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입학식 때 보았던 외국인 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다. 프로그램은 학교생활 적응과 한국어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6년 이상 한국에 살았기 때문에 사실 그 프로그램에서 제외될 수 있다. 그런데 늘 혼자였던 내가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그들과 함께 한국어 수업 듣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년 동안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외국 학생들과 함께 친하게 지냈다. 난 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난 완벽한 외국인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얼굴만 외국인이고 마음은 한국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나처럼 한국에 오래 살지 않아서 그들이 문화 충돌과 문화 충격을 얻은 모습을 목격했다. 난 그때 그들이 왜 학교 생활과 한국 문화에 적응 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들었던 기분은 이랬다. 외국인을 처음 보았다고 생각하자. 언어도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태도에서 '다름'을 느끼게 된다. 그런 외국인이 현지 문화를 적응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다. 왜 적응을 못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 분명 초등학교 때 내가 외국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랬던 내가 한국의 학교 문화를 적응하기 힘든 외국인 친구들을 보고 '왜 그러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같은 외국인이면 서로 이해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 난 반대로 이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냥 외국인에서 한국인 같은 외국인으로
초등학교 때 내 세상이라는 울타리 속에 살았다면 중학교는 잠시 동안 내 세상을 떠나는 모험이었다. 자신의 별을 떠난 어린 왕자처럼. 그동안 낯선 세상을 무시했다면 이제는 한국이라는 낯선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그곳에 사는 낯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들과 비슷해진 것이다. 나는 외국인에서 한국인 같은 외국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난 외국인의 삶이 싫어!'라고 미친 듯이 속으로 외쳤지만 내 시선은 한국 문화에 적응한 상태였다. 이미 한국인처럼 말하고 있었고 한국인처럼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를 한국의 중학생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어릴 때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아동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을 시청했고 청소년이 되어 한국 예능을 즐겨보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닭강정, 떡볶이, 피카추 돈가스와 토스트를 먹고 집으로 갔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유행어를 자주 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한국 사람들과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 같은 외국인의 삶을 살았다.
"맞다. 너 외국인이었지."
친구들 사이에서 듣기 시작한 말이다. 내가 필리핀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들이 갸우뚱거리다가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한 나머지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내가 영어를 하거나 고향을 언급해야 친구들은 내 본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난 그런 현상이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한국인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그들과 같아진다. 그럼 내가 외국인들 사이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냥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성격도 살짝 변한다. 한국인 같은 모습이 사라지고 최면에서 깨어나듯이 '그냥 외국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런 내 모습이 카멜레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 다가가면
외국인이 다가가서 말을 하면 현지인의 특성에 따라 1번과 2번으로 나눠진다. 1번은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2번은 도망간다. 대부분 2번을 선택했을 거다. 2번은 다가가는 외국인이 서운하게 만들 수 있는 답이지만 난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 영어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 다가가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상대방은 내 친구였다. 친구는 내가 다가오자마자 바로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나고 친해졌을 때 첫 대화의 심정을 내게 말했다.
'너 다가갈 때 살짝 긴장했어. 영어 할까 봐. 그래서 'Hello' 단어 말하려고 용기를 냈는데 네가 먼저 '안녕? 너 000 친구지? 나도 000 친구야.'라는 말을 내뱉은 바람에 그 이후로 안도했어. 그리고 신기했지.'
그 말을 듣자마자 빵 터졌다. 한국인 같은 외국인 생활에 익숙해서 나를 처음 본 친구들이 외국인 공포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참고했다. 그 이후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외국인 공포증부터 깨뜨리고 대화를 이으려고 노력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외국인
초등학교 때 글쓰기는 나의 소통 방식이었다. 말없이 살았기 때문에 채팅하듯이 글을 쓰면서 친구들과 소통했다. 중학생이 된 후, 나는 드디어 말을 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소통의 방식에서 꿈을 쓰는 행위로 이어졌다. 어쩌다가 글쓰기가 꿈을 쓰는 행위로 이어졌는가. 그건 중학교 1학년 때 반 친구의 취미로 시작되었다. 나는 공책으로 무언가 적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뭐해?"
"나 소설 쓰고 있어."
신기하고 재밌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출판 작가들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을 반에서 목격한 것이다. 나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문구점에서 노트 하나 사버렸다. 처음에는 음악 관련 소설을 쓰다가 나중에 동화 판타지 소설을 썼다. 친구들이 동화 판타지를 읽고 재밌다고 할 때 이유 모를 희열을 느꼈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반에서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생겼을 때 내가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에서 소설 쓰는 외국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 글로 소통한 내공이 있어서 매일 새로운 에피소드를 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미친 듯이 글을 쓴 결과, 7권의 공책 가지고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때 미친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 반응이 좋은 장편 소설 하나 완성한 이후 초등학교 때의 꿈을 떠올랐다. 나는 원래 머릿속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상상하던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즐거워서 화가라는 꿈을 선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상상 속의 세상이 복잡해졌다. 인내심이 별로 없던 나는 그 세상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화가가 되기를 포기했다. 나는 완성된 장편 소설을 보고 다시 희망을 얻었다. 내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아직도 존재한다.
그림 그리기는 내 세계를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런데 글은 복잡하고 이야기가 많은 내 세상을 담을 수 있다. 나는 그때부터 작가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화가의 꿈을 잃은 이후로 장래 희망 없이 살아갔는데 소설 쓰기 덕분에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 그리고 현재의 나
밤 산책하다가 동대부여중을 지나갈 때가 많다. 중학교를 보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추억을 떠오르게 된다.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중학교, 줄여서 동대부여중. 차미화가 마지막으로 이름을 날렸던 공간이다.
차미화로 살았던 추억을 떠오르며
과거의 내가 '차미화' 이름표를 달고 하교하는 모습을 떠올랐다.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내가 본명을 되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졸업까지 '차미화'로 살아가기로 했다. 2년 동안 차미화로 살아왔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그 라일라보다 차미화가 익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바꾸기 애매했다. 바꾸려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바꿨어야 했다. 그래서 아쉬웠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기에 중학교 시절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그래도 내가 말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보지 못했던 인연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다. 그런 질문을 직접 듣지 않았지만, 그들이 속으로 그런 의문을 가능성이 높다.
'차미화가 말을 했더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학교의 나 자신을 그것을 보여주었다. 말을 하는 차미화는 어딘가 모난 외국인 청소년이다. 그녀는 가끔 재밌는 말도 하고 웃을 때가 있지만 여전히 차갑고 조용할 때가 많다. 말을 하는 차미화는 감정 기복이 심각했고 우유부단했다. 말을 하는 차미화는 생각보다 한국인보다 한국인 같은 외국인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놀랄 때가 있다. 한국 입맛이 주변 친구들보다 강하고 다른 한국 친구들처럼 비슷한 초등학교 추억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말을 하는 차미화는 생각보다 말이 많다.
초등학교 때 말 없는 외국인으로 살았는지 그때 즐기지 못했던 대화를 많이 했고 친구들이 그런 나를 보고 "너 생각보다 말이 많구나?"하고 깨달았다. 나도 내가 말이 많은 인간 중 한 명임을 그때 알았다. 반대로 내가 말을 안 하면 정말 끝까지 말 안 할 때가 있어서 친구들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나는 조용할 땐 조용하고 말할 땐 시끄러웠다. 중간이 없어서 친구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외국인의 중학교 시절은 이런 것
누군가가 이런 재밌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교복 입고 중학교에 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 그 정답을 알고 있다. 그 외국인이 누구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설정은 다른 학생들처럼 똑같다. 똑같이 교복 입고 똑같이 등교한다. 물론 외국인 학생 중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내 친구들처럼 연속적으로 충격과 감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