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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Sep 02. 2019

꼰대여, 그 '결혼부심'  넣어두오

결혼을 하거나 안하거나 삶은 원래 만만치 않다

내가 35살이었을 때, 가깝게 지내는 39살 여자 부장님이 청첩장을 건네며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그맘 때에는 거의 두어달에 한번씩 청첩장을 받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수많은 청첩장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날짜와 장소를 보고, 참석 여부를 고민하고, 축의금을 미리 출금해야겠다, 정도의 생각만 잠깐 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후, 친하지도 않았던 그 부장님이 자꾸 나에게 다가와, 개인적인 말을 걸어왔다. 뭔가 묘한, 승리감이 감도는 미소와 억양을 띤 채로.


"근데 니나씨는, 결혼 생각 없어요?"


"네? 저요?? 뭐.. 언젠간 하겠죠. 지금은 아직 계획 없어요."


"아이고 그렇구나..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안하나보죠?"


"네? 아, 저희는 아직.. 그런 얘기까지는 안해봤어요. 암튼 결혼 축하드려요~"


나는 황급히 축하의 인사로 얼버무린채 대화를 마무리했다. 35살 정도 되면 결혼에 대한 압박에 대처하는 일에 꽤 노련해진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훅 들어오는 예상치못한 멘트에 당황할 때가 있었다.


특히 그 뭔지 모를 우월감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졌던, '니나씨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안해요?' 라는 질문은 너무나 예상 밖의 질문이라 마음에 꽤 오래 남았다.


예상 밖이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내가, '(결혼하길 원하는데) 아직 청혼을 받지 못해서 결혼 '못'한 여자'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하나는 결혼은 나의 아주 '개인적인' 결정인데 그것이 마치, 결혼 여부의 결정권이 '내'가 아닌 '타인(남자친구)'에게 있다는 전제가 느껴지는 질문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나는 그때 한창 재미있게 연애하며 지낼 때라, 누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럽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이상 결혼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부러워한적은 있어도 결혼생활 자체를 동경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니었기에 언젠가는 해야지, 라는 생각 정도였다.


나이 많은 미혼에게는 별로 친하지 않아도, 아주 사적인 질문을 마구 던져도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것 같다. '결혼 안해? 왜 (아직도) 결혼 안했어? 남자친구 없어? 그 정도 연애했으면 결혼얘기 나와야 되는거 아니야?' 라는 식의 사적인 질문과 더불어, '눈이 너무 높은거 아냐? 세상에 별 남자 없어~ (단지 나이가 비슷한 미혼인, 나와 아무 관련도 없는 직장동료 이름을 대며) oo씨 어때? oo씨도 여자친구 없대' 라는 식의, 제발 마음 속으로만 생각해줬으면 하는 지레짐작까지도 아주 쉽게 내뱉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낫다. 결혼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성숙해졌고 행복해졌는지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마치 결혼을 해야만 철이 들고 진짜 '어른'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정말 최악이다.


그리고 끝 마무리는 항상 이렇다.


"니나 씨도 결혼해서 애 낳아봐~ '진짜' 행복이 뭔지 알게 될거야^^"


그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전 이미 '진짜' 행복한데요. 그리고 '진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남에게 행복하다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구요.'  


물론 입 밖으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갑자기 '결혼 부심'을 부리는 사람을,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꼰대'라고 생각한다. 그 자랑의 이면에는, 나는 결혼을 했고 너는 안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이상한 우월감, 나는 소위 정상적인 범주이고 너는 아직 결혼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잘못된 비교에서 나오는 전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변에는 결혼생활이 정말로 행복하고 좋아서, 진심으로 나에게 결혼을 추천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 좋았고 도움도 많이 되었다. 듣는 사람도 당연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진심에서 나오는 이야기인지, 자랑을 하고 싶어서 '부심'을 부리는 것인지.


나도 조금 늦게 결혼을 한 편이라, 주변의 압박과 오지랖과 별의별 말들에 엄청나게 시달려봤기 때문에, 지금도 미혼인 친구들에게 결혼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거나, 그 어떤 얘기도 하지 않는 편이다.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싱글이라서 마냥 행복하고 좋은 것만도 없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고 좋은 것만도 없는 것 같다. 늘 좋기만 한 것은 없다. 연애가 끝난 후 한참 시간이 지나 추억할 때, '아 그때 참 좋았구나' 라고 떠올릴 수는 있어도, 연애를 하고 있을 당시에 우리는 그저 '일상'을 보낸다. 인생사가 다 그렇지 않을까.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도 있다. 너무나 잘 맞는 것 같은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오해나 갈등도 있기 마련이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괴로워하며 보낸 날들도 있었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충만하던 날들도 있었다.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해서 그 사랑이 처음 그대로 박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연인에서 부부로, 그리고 베스트 프렌드로, 육아 파트너로, 때로는 못잡아먹어 안달인 원수(?)로, 인생의 든든한 동지로,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리고 성숙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결혼 전에도 배려심 있고 성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 대부분의 부부들은, 기본적으로 조금은 미성숙한 두 사람이 만나서 뾰족했던 부분이 조금씩 닳아가고, 조금씩 서로 양보해가며,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사람이 곁에 있음에 안도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맞춰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결혼 생활의 모습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던, 외모가 아무리 특출나던, 또는 아무리 부부금슬이 좋(아보이)건, 또는 아무리 혼자서 여유롭고 멋지게 살아가는 싱글이건, 결국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외로움을 느끼고, 누구나 사랑과 인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결혼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결혼'식'까지는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일상을, 나의 매일 매일을,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또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공부나 일적인 부분에서는 똑소리 나고 야무진데,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내 기준에서는) 이상한(?) 남자만 골라서 만날까 싶은 친구가 있었다.


20대 때는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남자 좀 만나지 말라고 함부로 조언도 하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친구와 사이만 나빠질 뿐이었다. 그 친구는 계속 그런 류(?)의 남자만 만났고, 즐겁고 행복하게 연애를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조언을 하는 것도 나의 오만함이었다.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그 친구의 취향이었을 뿐이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그 관계 속에서 친구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껄렁한(?) 겉모습만 보고 그 남자를 함부로 판단했던 나의 '꼰대스러운' 민낯을 확인한 후에야, 그 친구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랑의 영역까지는 절친조차도 모두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너무나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친구는, 자신의 취향에 온전히 집중할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조건들 - 외모, 학벌, 돈, 직업 - 이런 것들이 그 친구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그 친구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자기의 취향이 확고하니,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상처입고 힘들어 할지언정 자신이 선택한 연애에 후회나 미련도 덜한 편이었다.


결국 연애나 결혼도, 비혼이나 이혼도, 또는 남들보다 더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는 것도,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한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해봐야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좋다'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일관된 취향의 내 친구처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좋으면 ' 개썅 마이웨이' 할 수 있는 정신이, 때로는 꼭 필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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