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있는 1초’가 필요한 이유

8. 무질서 속에 질서 ... 수많은 오토바이 물결에도 사고 거의 없어

by 류진환

오토바이로 가득 찬 도심. 차량과 엉켜 도로는 말 그대로 무질서함의 극치를 보인다. 중앙선을 넘는 불법 유턴은 일상. 사람이 지나가도 좀처럼 서지 않는 자동차들. 달리는 차 앞으로 아무러치도 않게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순간 내가 탄 차량이 사고를 내지 않을까 간담이 서늘해 진다. 길을 건널 때도 서두르면 절대 안 된다. 무조건 천천히 건너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오토바이들이 따라 움직인다. 사고를 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렇듯 복잡한 호찌민에 체류 한 지 3개월. 그 복잡함으로 말하자면 있어야 할 광경인데, 보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교통사고다. 보았다면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 오토바이 고무바퀴가 차에 살짝 부딪힌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물론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곳에 온지 5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사고 현장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오토바이 행렬 111.jpg 차와 엉켜 무질서 해 보이는 오토바이 행렬. 무질서 속에 질서가 이루어져 사고는 잘 나지 않는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차와 엉켜진 오토바이, 그것도 수천 아니 수 만대의 오토바이와 차량이 함께 이동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물결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질서하게 보이는 속에 나름 질서가 있다. 차들은 절대 과속을 하지 않는다. 항상 좌우와 전후방을 면밀히 살핀다.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끼어들기나 다른 차들의 불법운전이 내게 다소 불편을 주더라도, 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라 가벼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차 안에서 욕 한마다 내뱉곤 그냥 간다. 운전자 간 실랑이로 인한 체증은 없다.


지난 주 한인들이 많이 사는 푸미홍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이공 강 옆 도로를 지나오는데 트럭 한대가 다소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6차선 대로를 건너는 사람이 보였다. 적어도 중상에 이르는 사고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다. 그런데 눈앞에서 본 광경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 행인은 천천히 길을 건너고, 차는 사고를 딱 면할 만큼 브레이크를 밟은 후 지나가 버렸다. 내가 느끼기에 딱 1초의 시간이었다. 피하려는 뜀박질도, 왜 위험하게 길을 건너냐는 욕설도 없었다. 돌아와서 지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이곳에서는 그 1초의 시간으로 수없이 많이 일어날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 1초에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타인을 해(害)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깔린 1초다. 그리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마음 또한 들어 있어야 한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바로 그것으로 인해 타인을 해하지 않고 다른 이를 이해하게 만든다.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1초’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비록 가난하고 생활수준이 높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이곳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난 그 1초를 ‘여유 있는 1초’라고 말하고 싶다.


오토바이 행렬 2.jpg 출근 시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이곳에 내가 온 이유도 국제 행사 성공을 위해 서다. 시간은 가고 마음은 촉박하다. 시차에 적응할 시간인데도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하는 호찌민 시와의 협의가 지지부진하다. 행사를 보다 많이 알려야 한다는 강박감 또한 어깨를 짓누른다. 한국과 시차는 2시간이지만 일의 시작은 같다. 현지 시간 새벽 6시가 좀 지나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 6시, 7시에 일을 끝내면 벌써 한국은 8시, 9시다. 늘 피곤하다. 그래서 인지 요즘 여유를 찾기가 힘들 때가 많다.


정도가 심해지는 날은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베트남 인들의 1초’를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브레이크로 사람을 지킬 수도 있는 ‘여유 있는 1초’ 말이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그 1초’는 불안정한 마음을 누그린다. 마음이 안정되면 머리는 맑아진다.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벽암록(중국 당나라 때부터 불교 선승들의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에서 옛 선사가 말하시지 않았는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 나 또한 날마다 좋은 날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매일 ‘여유 있는 1초’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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