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많은 외세 침략과 굴곡진 시간 이겨낸 한국의 역사 닮아
호찌민에 만나는 휴일. 무척 이른 아침인데 사이공 강이 보이는 창가에 햇살이 든다. 여기 시간으론 새벽 5시. 한국 시간으론 7시. 늦잠을 청하려 해도 시차와 이른 햇살이 몸을 그냥 두지 않는다. 대화 할 사람도 없고, TV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한심하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떠 오른 것은 ‘베트남 알기’였다.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역사. 발길을 옮긴 곳은 모두 두 곳이었다. 한 곳은 베트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베트남 역사박물관. 그리고 또 한 곳은 베트남 여성들의 날렵한 맵시를 돋보이게 해주는 아오자이 박물관.
내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무소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역사박물관은 한 눈에도 고풍스러운 건물의 모습에 마음이 당긴다. 총 16개의 전시실과 수상쇼 공연장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베트남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베트남의 축소판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물을 전시해 놓고 있다. 특히 이곳은 주변 국가인 중국과 앙코르왓트 문명의 캄보디아(크메르) 등의 문명과 교류를 통한 문화의 변천사도 볼 수 있다.
내겐 솔직히 말하면 박물관이 너무 크면 이내 지쳐 버린다. 동양의 문화는 선사 시대의 마제 석기, 청동기·철기 등 유물의 모습은 문명의 교류를 통해 닮은 것이 많다. 그래서 많은 박물관을 본 내겐 너무 많은 유물은 지루함을 자아낸다. 다행이라고 할 건 없지만 이곳의 유물은 그 수가 많지 않기에 지루함이 없다. 대신 기억도 남는다. 전시관을 돌면서 만나는 크메르 문명과의 교류는 인상적이다. 시바 신의 모습의 석상은 물론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메콩강 근처에서 발견된 나무로 된 석가모니와 시바신의 상(像)에는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참 많이 닮았다. 지정학적인 영향 탓으로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굴곡진 시간을 보냈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닮아 있다. 기원전 2천 년 전 반랑국의 흥왕을 건국의 아버지로 역사에 등장한 베트남은 독자적인 토착문화를 이루며 긴 역사의 여정을 이어 온다. 물론 그 시간의 여정은 베트남인들에겐 흥망성쇠의 시간들이었다. 1000년 이상을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근대에 와서는 프랑스의 지배 그리고 1960년대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 까지. 그렇지만 우리도 그랬듯이 베트남 또한 끊임없는 항전으로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키고 그들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켜냈다.
중국이 지배한 안남 시대의 압제를 뚫고 최초 독립 왕조를 세운 응오 왕조부터, 딩, 레 왕조, 리 왕조를 거쳐 동아시아의 강국 쩐 왕조와 리 왕조에 이러선 200여 년 이상 부국강병을 이루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1127년과 1226년 고려로 넘어와 정선 이씨,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이양흔, 이용상 등은 리 왕조의 왕손으로 지금도 한국과 베트남 교류에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
박물관을 돌면서 이제는 일반적인 말이 된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국력이 쇠하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간다. 위정자들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다. 근대에 와서도 베트남은 힘의 논리에서 기울면서, 프랑스의 지배를 거쳐 중국과의 전쟁 그리고 1967년 일명 통킹만 사건으로 미군이 본격 개입하면서 시작 된 7여 년의 전쟁을 겪는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사망으로 전체 인구의 70% 가까이가 30대 이하인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북 베트남의 점령에서 피해 바다로 도망을 가다 수장된 수많은 보트 피플, 보이지 않는 남북지역 간의 갈등 등 전쟁의 상흔도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제 변하고 있다. 예전의 침략과 고통을 받았던 민족이 아니라 세계에 당당한 국가로. 우리 한국이 그런 것처럼. 근면함과 끈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과 함께 강한 나라를 향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전쟁 후 세대인 젊은 인구가 베트남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만들고 있기에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박물관을 나서니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근처에 있는 놀이 공원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선 아이들의 함성이 요란하다. 즐거움은 생각이 많이 없을 때 만끽할 수 있다. 생각을 줄이는 방법을 배워야 겠다. 하지만 요란한 소리 속에 파묻혀 나오면서도 또 생각에 빠진다. 참 어쩔 수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