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터널 그리고 평화(호아빈-Hobin)의 소중함

4. 20세기 베트남 최고 건축물 "조국과 결혼한 호찌민의 뇌세포"

by 류진환

파견 근무 중 한국에서 찾아 온 손님 요청으로 나선 곳은 차로 1시간 여 떨어진 구찌터널. 초등학교 시절 베트남 전(戰)에 참전하셨다는 선생님으로부터 말로만 들었었던 현장에 섰다. 짙게 드리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그림자가 그를 이곳으로 안내하게 했다. 나 또한 그와 한마음이었다. 한 때는 전쟁의 현장이었고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평화의 소중함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 중 한 곳인 이곳을 보고 싶었다.


구찌터널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난 64년에 발발해 75년까지 10여년의 내전으로 이어진 베트남 전쟁의 산물 중 한 곳이다. 1940년대 프랑스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은 베트남전쟁 때였다. 물자와 군대, 화력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었던 북베트남(월맹)은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낮엔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기습공격을 펼쳤다. 터널은 구찌 인근은 물론 인근의 과수원, 논 아래 곳곳에 광범위하게 지어졌다. 심지어 미군기지 아래에도 있었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 전쟁의 흔적 속에서 (1).jpg 챗 GPT가 그린 베트남 구찌 터널을 배경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상징하는 그림.

가이드를 따라 들어서니 한 눈엔 그저 넓은 밀림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곳엔 정말 이야기로만 들었던 땅굴이 있었다. 좁은 길은 그냥 이어진 길이 아니다.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진 미로였다. 높이 80cm, 폭 50cm 정도의 길은 짧은 곳은 수 km지만 긴 터널은 무려 200km가 넘어 사이공 강변까지 이른다고 한다. 전쟁에서 기습 공격을 하고 미로와 같은 길을 따라 사라지면, 덩치 큰 미군들은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더 있다. 그들은 개미굴처럼 굴 아래 또 굴을 팠다는 것이다. 땅 속에 구조는 3층 구조로 터널을 만들고, 그속에서 수많은 군인과 일부 가족들은 함께 생활하며 전쟁을 치렀다. 부엌, 침실, 회의실 등과 심지어 병원도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밥 짓는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 한끼 밖에 먹지 않았다. 그 마저도 들킬까, 새벽안개가 짙은 시간을 이용해 연기가 여러 층에 걸쳐 새어 나가도록 했다. 그 치밀함이 놀랍다.


순간 ‘구찌터널은 조국과 결혼한 호찌민의 뇌세포다. 그리고 이 땅굴은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닌 20C 베트남 민족의 최고 건축물이다’ 라는 ‘길을 걷는 디자이너’의 저자 정수하씨의 표현이 떠올랐다. 그의 표현대로 구찌 터널은 그들이 생존을 위해 만든 최고의 구조물로 부족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의 안내로 거의 기다시피 빠져나와야 하는 좁은 터널을 잠시 경험했다. 전쟁 당시 이들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정말 궁금증이 마구 샘솟는다. 그리고 다시 전쟁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평화를 생각했다. 무더운 날씨와 겹쳐 온 몸이 땀범벅이었지만 그마저 뒷전이었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모르진 않는다. 어른들로부터 한국전쟁 당시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사는 만큼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무시로 접한다. 그래서 전쟁은 두렵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의 발발하는 내전을 보면서, 그와 같은 전쟁이 우리에겐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군대에 가있는 아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호찌민에 지내면서 호아빈(Hobin)이라는 단어가 참 많음을 본다. 평화라는 의미다. 나 또한 살면서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평화다. 전쟁과 평화라는 대비되는 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잡다단한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의 위안을 찾고,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평화의 시간이다. 하물며 전쟁이 없는 시간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위정자들만의 판단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불행을 가져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정을 이뤄 자녀를 키우고, 이웃과 도란도란 정겹게 지내며 소소한 행복는 삶이 풍전등화처럼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멀리 이국땅에서 바라보는 내 조국에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고, 영원토록 평화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길 기원한다.

이전 03화아오자이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