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에서 드물게 여성박물관이 있는 나라... 여성들 위상 높아
어린 시절 아버지는 당시 대부분의 남자들보다 덜 권위적이셨다. 연세가 많은 까닭에 일찍 정년을 맞으시고, 어머니를 일터로 내보낸 것을 늘 미안해 하셨다. 늦은 저녁 퇴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부엌일도 하시고, 때로는 마중도 나가셨다.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의 일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전기 쓰는 것이 아까워 대부분 빨래는 손으로 하시고, 아침에 등교하는 자식들의 도식락 반찬 준비에 늘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베트남에 와서도 놀란 것은 여성들의 일에 강도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어머니로서 자식을 키우면서 가장의 역할까지 맡아 가정을 꾸려가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았다. 남성의 무능함 보다는 오랜 전통과 관습에 따른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여성의 삶이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이들을 보면서 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베트남의 여성들에게 다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오래전 내 어머니의 시간에는 여성들의 위상은 그리 높지 못했다. 노동은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최선의 방편이었다. 물론 베트남도 그런 경우가 많다. 높은 교육열에 자식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여성들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갖는 위상은 상당하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드물게 여성박물관이 있는 나라다. 하노이에 한 곳 그리고 호찌민에 한 곳. 그리고 여성의 날도 두 번이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과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사회 통념상 두 날 모두 같은 날처럼 여기며, 정부나 사회에서도 크고 작은 기념행사로 여성들을 챙긴다. 이날에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꽃을 주거나 외식을 하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여성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호찌민 3군에 있는 남부 베트남 여성박물관은 여성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여성들은 1985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여성 스스로 전국을 돌며 모금을 하고 자료를 찾아 1990년 완공했다. 이곳에는 프랑스와 미국의 지배 하에서 독립을 위해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투쟁한 여성들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많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하고 있는 진정한 여성박물관이다. 더욱이 이 박물관은 전쟁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우고 투쟁한 여성들을 기록한 첫 박물관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2층에서 4층까지로 나누어 베를 짜고, 면직물을 만들던 베틀과 수공예품 등 노동의 산물과 의상에서부터 조국을 위한 헌신적 투쟁의 기록과 여성의 권리 찾기 운동 등에 대한 역사가 담겨져 있다. 3층에 들어서면 한 손에 아이를 안고, 다른 손에 총을 잡은 여성상이 눈길을 끈다. 가정을 지키면서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전쟁터로 나가 싸웠던 강인한 베트남 여성의 모습이 압축되어 그려진다. 프랑스 신민지 시절 독립군의 연락책 역할을 하던 13세 소녀를 사형시킨 프랑스 군의 만행 앞에선 일제의 압정에 고난을 받던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 졌다.
베트남에는 2016년말 통계로 전체 노동자의 51%가 여성이다.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도 27%가 넘는다. 여성인 응웬 티 킴 응안이 국회의장을 맡는 등 여성의 정치 참여 비율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베트남은 또한 거리의 이름을 나라의 영웅들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그 중 AD 40년 중국에 항거한 쯩작과 쯩니 자매는 왕으로 추앙받았으며, 하노이와 호찌민의 중심거리를 하이바 쯩 도로로 명명하는 등 13명의 여성 이름이 도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베트남 여성들의 위상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높고, 존중되고 있다. 학자들은 베트남 여성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오랜 역사와 함께 사회 구조 속에 뿌리 내린 관습으로 설명한다. 그 예로 베트남어 가운데 생존, 번영, 안전 그리고 사회적인 위상에 관련되는 중요한 단어는 아버지(bo)가 아닌 어머니를 뜻하는 까이(cai)가 널리 쓰이는 것을 꼽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위상을 갖거나 존중받았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랜 전통 사회인 촌락 공동사회를 통해 이미 오래 전에 남편이 있어도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있고, 재산과 토지를 상속을 받아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재 베트남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는 견해도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일자리. 물론 전체 기업 CEO의 상당수가 여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에서는 채용부터 급여, 교육, 승진 등 많은 부분에서 남성 근로자와 비교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다양한 이유로 일하지 않는 많은 가장을 대신해 고생하는 여성들 상당수가 대우가 낮은 일자리로 인해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곳이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 하지만 이곳의 여성들은 늘 당당하다.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모두 그 당당함을 스스로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다.
■ 용어 해설
까이’의 사용 용례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고사성어에서도 가족에 대한 책임을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우선 con dai cai mang(꼰 자이 까이 망)이라는 고사성어를 보면 그렇다. 자녀가 문제가 생기면 엄마(cai)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역시 다른 고사성어인 Con hu tai me, chau hu tai ba (꼰 흐 따이 메, 짜우 흐 따이 바)에서도 그렇다. ‘자녀가 버릇이 없으면 엄마의 책임이고 손주가 버릇이 없으면 할머니의 책임’이다. 이처럼 여성의 가정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은 “적이 오면 여성도 나가 싸운다”(Giac den nha, ba cung danh), 라든지 혹은 "날씨가 추우면 아내는 느윽 랑(촌락의 물: 사회적인 일)을 걱정한다“(Ret thi mac ret, nuoc lang em lo), 라는 성어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집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확대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