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뭐하지?!
퇴사한 뒤 보통 아침 8-9시쯤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10분 정도 요가를 하고, 10분 정도 목, 어깨 스트레칭을 한다. 그 뒤에 짧게 명상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보통은 안 하는 날이 많다.
10시쯤부터 씻고 아침을 여유롭게 먹었다.
노트북을 가지고 집 앞 카페에 갔다.
노트북으로 신혼여행 준비나 채용 정보 등을 둘러본다. 지금까지 1군데 서류를 넣고 1군데 면접을 봤으나 입사로 이어지진 않았다.
다시 집으로 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를 연남동에서 만났다.
둘 다 고등학교 때 말했던 장래희망과 같거나 비슷한 직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멋있었다.
전문직인 친구에게 안 힘들냐고 물으니 마감을 앞두고는 하루에 2시간밖에 못 잘 때도 있고 눈앞에 쌓인 너무 많은 일더미를 보며 막막해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고시 공부를 해서 그런가 멘탈이 강해져서 웬만한 일엔 쓰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만 멘탈이 약한가?!
나만 너무 쉽게 지치고, 나만 너무 자주 직장을 바꾸고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온 것인데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오후에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딱 내 마음을 대변하는 제목이었다.
에세이일 줄 알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번아웃에 대한 인문서적이다.
책 앞쪽에 번아웃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퇴사할 때의 마음으로 해봤는데 63점.
42점 이상은 번아웃 위험이 있는 상태. 60점 이상은 번아웃 위험이 높아 스트레스 환경에 대한 점검과 정신건강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한다.
역시 나는 번아웃으로 퇴사한 거였다. 그렇다면 제목처럼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 싶었다. 다들 주 40시간 근무에 일 많을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야근하는 것은 다들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책에서는 번아웃 자가진단지의 평균점수가 40점으로 번아웃이 사회에 만연해있으며,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제일 긴 편에 속함에도 퇴근 후에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계속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해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야말로 과로사회라는 것이다. 즉 이미 번아웃인데도 연료를 다 태웠음에도 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 번아웃의 여러 원인이 나오는데 나의 경우는 아래와 같았다.
1. 감정노동
고객응대가 주요 업무가 아니기에 내가 감정노동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일반 사무직도 회사 내 대인관계로 감정노동을 한다고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상담 전화나 클라이언트들과 몇십분씹 통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하소연을 들으며 많이 지쳤던 것 같다.
2. 책임 범위
내가 어떤 일을 맡아야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책임지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책임범위가 모호한 경우도 번아웃이 온다고 했다. 늘 일을 하면서 책임은 너무 큰데 보상은 적어서 힘들다고 동기와 한탄했던 것이 기억난다.
3. 과도하게 넓은 작업범위
넓은 작업범위도 번아웃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쪽 업무를 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업무 범위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 일 저 일에 투입되기만 하고 업무를 내 것으로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도의 철학자 지도 크이슈나무르티는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건강의 척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50p참고)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회사와 조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번아웃을 예방하고 치료해야 할 주된 주체는 직장이고 조직이라고 한다. (58p 참고)
이렇게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ㅠㅠ 어쩐지 매일 아침 명상하고 감사일기를 쓰며 출근해도 전혀 스트레스가 줄어들지를 않아서 더 힘들었다.
보통은 3-6개월은 직장 적응시기라고 해서 힘들다 치지만 1년이 지났음에도 힘듦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져서 괴로웠다.
‘당신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당장의 실적만 중요하구나. 구성원의 건강이나 마음은 신경 쓰지 않는구나. 그러나 나는 내 건강과 행복이 더욱 중요하다!’ 아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챙겨야 합니다.
동시에 사람이 회복력을 잃을 때까지 무리하게 일하도록 압박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는 비판, 지금처럼 무리하게 일하도록 압박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는 비판, 지금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지속 가능한 효율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직장과 사회에 전달하면 좋겠습니다.
어릴 때 배운 대로 직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됩니다.
-55p
책을 읽으며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내부 사람들은 모두 좋았지만 그래도 회사와 나는 여러모로 맡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회사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해주는 컨설팅 회사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설팅이 그나마 나와 잘 맞는 업무영역인 것 같다. ( 물론 야근은 많겠지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