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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캔디 / 비기너스

가을을 닮은 사랑영화

by 피스타치 유

공기가 차가워지고 옷을 하나 둘 껴입게 되는 날씨가 되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등장인물이 적고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인물의 세세한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사랑 영화들. <캔디>와 <비기너스> 같은. 마치 청춘과 중년의 사랑에 대한 섬세한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어떨 땐 자조적이기도 하고 어떨 땐 냉철한 감각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img.jpg 출처 - 네이버영화


1. < 캔 디 >


영화의 첫 장면에 근거하자면 댄(히스 레저)과 캔디(애비 코니쉬)의 사랑은 구심력(원 중심으로 향하는 힘)보다는 원심력(원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힘)에 가깝다. 원통이 회전하면서 생기는 원심력을 이용한 놀이기구 속에서 둘은 땅에서 발을 떼고 그 힘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구심력이 없는 원심력은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뿐이다. 중력이 있기에 달이 지구의 주변을 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엔 구심력(중력)이 없고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기에 언젠가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원통 안에 있는 그들 혹은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common-3.jpeg 출처 - 네이버영화


'멈출 수 있을 땐 멈추기 싫고, 멈추고 싶을 땐 멈출 수 없지.'



댄은 시인이 되고자 한다. 그의 꿈은 인질이 되어 수많은 일탈을 정당화시킨다. 마약과 매춘, 남의 돈을 훔치는 범죄까지. 영화에서 이런 장면들은 순간순간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원통 안에 있는 그들에겐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한 것은 진짜 사랑이라 불릴 수 있을까. 사랑의 한 종류로 구분될 수 있을까. 아니면 쾌락에 불구했던 것일까.



'나중에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떠올릴 수 있을 거 같아.
참 공허했다고.'


img.jpg 출처 - 네이버영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한순간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자 이성적 결단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시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서로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의 반영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사랑에서 감정은 일부분이지 절대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댄과 캔디는 매 순간 뜨겁게 사랑했다. 그들이 뜨겁게 사랑한 순간의 합은 지속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의 합보다 결코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약에 빠지고 아이를 잃고 서로를 병들게 하는 순간들을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너무 뜨거웠고 너무 사랑했지만 참 공허했다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 댄은 캔디를 거절하고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입에 남아있는 달콤했던 캔디의 맛을 차가운 물을 마시며 씻어낸다. 그들이 언제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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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비기너스 >


<캔디>와 같은 청춘의 뜨거운 사랑이 한참 지난 뒤, 돌아보면 남은 것은 공허함과 상처다. 분명 그땐 행복했었는데 사랑했었는데 왜 남은 건 상처뿐 일까.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비기너스>는 다시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중 누군가는 두려워하지만 누군가는 기적을 믿는다. 반반의 전쟁이다.

img.jpg 출처 - 네이버영화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올리버(이완 맥그리거)는 파티에서 애너(멜라니 로랑)를 만난다. 올리버는 프로이트 분장을 하고 있고 사람들을 상담해주는 놀이를 하고 있다. 애너는 말을 못 하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그들의 역할과 반대로 애너가 올리버의 무의식을 이끌어낸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애너는 올리버에게 뭐든 물어봐도 괜찮다고 하지만 올리버는 뭐든 물어보는 것이 두렵다. 모든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자신이 두렵기 때문이다.

'저건 건물이고... 안엔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 있어... 그중에 반은 절대 잘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반은... 기적을 믿지... 그 둘 사이의 전쟁이야.'


img.jpg 출처 - 네이버영화

올리버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45년의 결혼생활이 끝난 뒤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게이였고 어머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올리버는 그런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항상 채워지지 않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모든 걸 알면서도 시작하려고 했다고. 그걸 알고 아버지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보았다고. 아버지는 결국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새로운 사랑에 대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도 아버지도 서로에게 충실했고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작을 위해선 기적이 필요하다. 잘 될 것이라는 어리석고 무조건적인 믿음 같은 거 말이다. 올리버는 애너가 그의 집에서 떠날 때 잡지 못한 이유는 ‘잘 될 거라고 믿지 못해서’였다. 그들은 뜨겁고 감정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지나 지속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둘은 다시 만난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글쎄.’

글쎄, 용감한 시작 이후는 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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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즈음이었던가...
이제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게. 삶에서 크게 아프고 크게 기쁜 일을 이미 다 겪은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게. (매우 가소로운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젠 그저 아는 것에서 더하거나 모자라게 느끼고 알 게 될 것이다. 모르는 지식은 많겠지만 단지 정보로만 기능하는 지식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처음 보는 숫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1부터 10까지만 알아도 18375라는 숫자가 그리 놀랍지 않은 것처럼.
그때 이후로 목적 없고 지루한 그리고 쓸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과 내일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에게도 기적을 믿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까.
이런 우울한 생각들은 내 지성의 부산물로서 매우 활발하게 기능한다. 하지만 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결국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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