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글감은 많아 배가 부른데 인큐베이터 안에서 나올 생각을 못 하고 초조함만 흐르고 있다. 누가 억지로 글을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쓰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딱히 없는데 스스로가 몰아넣은 우리 안에서 미친 척 머리를 들이박고 있다. '참 즐거운 글쓰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괴롭다.
처음에는 그냥 좋았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단지 나만의 개인 기록이라도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 해우소라도 되는지, 하고 싶은 얘기 거침없이 쓰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면서 시원하기도 했다. 그것이 언제부터 부담으로 다가왔을까. 잘 쓰고 싶다는,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커져서였을까. 아니면 작가라는 꿈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브런치 팀에서 처음 '에세이 크리에이터'로 선정될 때는 기분이 묘하면서도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연재할 자격을 줬으니 연재 작가가 되라고 브런치 팀에서 메일이 오니 은근히 부담스럽다. 마치 "크리에이터로 선정해 줬으니 일을 해야지, 글 쓰라구!"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연재 작가를 요일마다 띄워주니 마치 나도 매주 연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나 올리는 작가도 있었다.
그럼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글의 분량이 한 장에서 한 장 반은 돼야 한다던데 과연 그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해도 누가 내 글을 응원할까. 괜히 아는 사람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INFJ 답게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매주 1편은 쓰니까 일요일에 연재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한 콘셉트 없이 단순한 에세이로 연재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아직 나는 연재 작가가 될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1년이 넘었다. 이 정도 되니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도 자꾸만 검열하게 된다. 나는 어떤 글을, 왜 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 자꾸만 의식의 표면으로 미끄러진다. 어느 정도 답이 내려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절망하며 '내가 왜 글을 쓴다고 설쳤을까? 미쳤지.' 이렇게 되뇌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것이다.
신변잡기 같은 가벼운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솔직히 너무 무거운 글은 싫다. 그렇다고 또 너무 가벼운 것도 싫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풀어내는 것이 가벼운 것을 무겁게 풀어내는 것보다 나을까. 삶의 무게와 애환을 풀어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나는 과연 그런 글을 쓰고 있는가. 무거움에 함몰될 것 같아 가벼운 소재를 찾아 쓰기도 하면서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작가의 길일까. 그러면서도 쓰지 않을 수 없는 마음.
좀 더 내공을 쌓고 장르를 넓히기 위해 책을 많이 빌려왔다. 책을 열심히 읽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글감은 자꾸 튀어나온다. 그런데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도망가 버린다. 독서를 많이 하면 글 쓰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이 책을 읽을수록 입은 꽁 다물어지고 글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마치 달변가를 앞에 둔 내성적인 사람처럼 말문이 콱 막힌다. '이 정도 수준으로 쓰지 못할 바에야 독자로 남는 게 낫지 않을까?'하고 자신감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좌절감만 남는다. 평생 읽어도 만 권은커녕 천 권도 다 못 읽을 정도로 좋은 책이 세상에 널렸는데, 왜 나는 어쭙잖은 글을 쓴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글을 쓸 땐 책은 읽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책을 덮었다. 그렇게 내키는 대로 글을 막 쓰다가 뭔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글이 잘 이어지지 않고 짧다, 묘사력이 부족하고 글의 구성도 엉성하다. 지식이 없으니 재치 있는 말도 나오지 않고 글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 신선한 아이디어도 부족하다. 그래서 또 책을 찾게 된다. 이런 식의 되풀이.
어쩌면 나는 초심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아마추어 작가 누구나 겪는 과정일까. 오늘도 글과 씨름을 하다가 원하는 글은 생산해 내지 못하고 글 쓰는 마음을 토로해 보았다. 괴로워하고 고민하면서도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쓰고자 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해서일 것이다. 비록 부족하나마 내 속에서 차오르는 글을 쓰는 것이 나로 사는 일이요, 진짜 인생이다. 나는 오늘도 미숙한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쓰며 조금 더 진실한 나에 가까워진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글을 쓰는 마음으로 내 안의 문장들을 꺼내어 닦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