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무한도전
어쩌다가 단편 소설을 쓴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작년에 에세이 수업을 들은 글벗 몇몇이 소설 창작반 수업을 들을 때 사실 조금 마음이 있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만으로 그쳤다. 글벗들이 쓰는 습작을 읽고 나는 저 정도도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설이란 장르는 마음에서 멀어졌다. 시나 소설이나 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그것도 30년간이나 소설을 쓰신 작가님)에게 무료 코칭을 받게 되었다. 무슨 용기로 그런 도전을 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에세이만 계속 쓸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소설가가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소설 한 편 안 쓰고 만화책만 보면서 그런 꿈을 떠들어댔었다.
에세이를 쓰면서 소설로 쓰면 좋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몇 가지 메모해 놓았다. 주로 주변 사람들이나 그들의 지인 이야기였는데, 사는 모습이 특이해서 그 자체가 소설 같았다. 소설보다 더 꾸며낸 이야기 같은 현실계의 사연들을 아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재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소설과 시와 에세이는 모두 다르다. 한 장르의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모든 장르를 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쓰는 데는 특별히 더 풍부한 상상력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야기꾼의 재질이 필요하다. 글감과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고 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노력하면 할수록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고, 특히 도입부에 흥미를 끄는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어떤 인물과 사건을 어떤 시점으로 쓸 것인가 결정하고, 미리 플롯을 짜고 집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구성 단계를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에세이처럼 잔잔하게 물 흐르듯이 쓰면 실패다. 어떤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넣고 어떻게 결말을 맺을 것인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소설 쓰기는 고도의 집중력과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단편 소설 작법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고 여러 단편집을 빌려왔는데,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신기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역량에 입이 떡 벌어진다.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이 없으면서 그들과 비교하다니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스스로 소설감이라고 생각했던 기구하거나 특이한 삶의 장면들이 갑자기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생동감을 잃었다.
한동안 '내가 단편 소설을 쓴다고 선언한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라는 후회가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짧은 에세이만 써온 내가 최소한의 단편소설 분량을 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되는 것이 한국 아줌마의 근성 아니던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선언해 놓으면 함량 미달의 글이라도 일단 완성은 할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소설 습작은 한 문단도 완성하지 못하고 가녀린 숨을 헐떡이고 있다.
조금만 가벼운 마음으로 도입부를 써 보자. 뛰어난 소설가도 초고의 90%를 고친다고 하지 않던가. 일단 쓰고 고치자고 마음먹었다. 마치 어릴 때 인형놀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 듯 나만의 소설을 써보자. 놀 거리가 없던 옛날에는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칭얼대던 밤이면, 언니는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세상에 하나뿐인 얘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무섭거나 따뜻하거나 웃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의 씨앗이 어딘가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겠지? 나의 무모한 도전은 글쓰기에 대한 무한도전으로 이어지기를.
* 그래서 언제 그 소설이 올라오냐구요? 12월은 되어야 첫 화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연재는 아니고 띄엄띄엄 올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