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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Sep 22. 2022

저녁 9시, 우리 동네는...





저녁 상을 치우고 좀 쉬려다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게 없다는게 떠올라 빵을 사러 슬리퍼를 끌고 나선다. 9월이라도 낮에는 아직 덥지만, 저녁으로는 반팔 아래 맨살이 살짝 춥게 느껴진다. 바람막이 점퍼라도 입고 올 것을 잠깐 후회하다가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풀벌레 소리, 팔짝 뛰는 작은 귀뚜라미, 가로등 아래로 큰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번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귀뚜라미 소리가 위에서 들렸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신기했는데 그 귀뚜라미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불이 켜진 부동산을 지나 왁자지껄 옛날 통닭집을 지난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통닭집은 다른 가게들보다 손님이 많다. 길 건너 호프집 두 곳도 늘 붐비는 것 같다. 코로나 시국이라도 잘 되는 곳은 술집과 카페 뿐인가. 


환하게 불 밝힌 편의점에는 학원을 마친 듯한 여학생 한 명이 컵라면을 먹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 애랑 같은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어서 친근감이 든다. 공부하고 집에 가기 전에 배가 고파서 들렀나보다. 무거운 가방에는 책들이 가득하겠지.


그 옆 나란히 붉은 등을 내건 초밥집. 좁은 수족관에는 언제가 자기 차례인지 모르는 크고 작은 생선들이 휘젓고 다니고있다. 오렌지빛 조명의 실내에는 여자 손님 두 명이 보인다. 퇴근하고 들러서 늦은 저녁과 반주를 즐기는 것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불 꺼진 약국을 지나 자주 가는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를 지나간다. 길 건너 경쟁 카페가 생긴 뒤로는 일찍 문 닫던 여기도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구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카페에는 손님 하나 없고 아르바이트생은 의자에 앉아 노곤한 몸을 쉬며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문득 커피향이 그리워졌지만 많이 마신터라 애써 참아본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 드디어 빵집에 도착했다. 식빵만 하나 살려고 가방도 없이 갔는데 평소에는 저녁까지 남아있지 않던 빵들이 나를 반긴다. 먹물 치아바타, 옥수수 캄파뉴, 통밀 베이글까지. 부자가 된 기분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서는데 편의점에 있던 소녀는 벌써 라면을 먹고 집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내일 아침엔 무화과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겠지? 소녀와 같은 체육복을 입고, 주말이 다가왔다고 즐겁게 아침을 맞이할 우리 아이들과 함께.


덧. 밤호수님(글쓰기 선생님)을 알게 된 후, 밤의 산책은 더욱 그윽한 그리움을 담고 흐른다. 신비스러운 밤 풍경은 아닐지라도 내게도 어디선가 소중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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