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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Nov 15. 2022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내 가족이 아플 때조차도 내 몸처럼 아프지는 않은데 말이다.


  어릴 적 내가 열이 나고 아픈데 엄마는 이마에 손 한번 짚어주시고는 안방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며 다른 가족들과 하하호호 웃으시던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고 서러웠다. 물론 병원도 다녀왔고 약도 먹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나는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웃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몸도 더 아픈 것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 유난히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 하여 '다정이 병인 양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형 친구도 있지만, 나는 그런 유형은 아닌 것 같다.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개인적인 폐쇄적 은둔형 스타일이다. 좀 더 외부에 관심을 갖자고 다짐해 보지만 타고난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문제나 정치, 경제, 이런 부분에 많이 무관심한 편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듣고 나도 놀랐고 마음이 아팠고 무사안일한 경찰의 대처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계속 떠오르면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힐 정도로 타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TV를 보고 관련 영상이나 뉴스를 계속 접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뉴스를 잘 보지 않고 큰 사건도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 극히 쉬운 일만은 아니다.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분명 억장이 무너지겠지만 솔직히 그것이 내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이런 사실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집단 망각에 빠져도 되는가'라는 이웃님의 글을 읽고 나서 마음이 더 불편해진 것 같다.


  왜 나는 마음 깊이 아파하지 못하는 것일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는 것일까. 공감 능력이 부족한 개인적인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는 사람들 얘기 잘 들어준다는 소리도 곧잘 들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기자신에만 골몰하게 된다.


 이런 나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가? 모두가 공분하는 이때, 웃는 것마저 삼갈 정도로 슬퍼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들은 참사에 대해 처음 며칠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일상의 대화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나 혼자 이상한 것은 아닐 거라고 본다. 어쩌면 사고가 일어난 곳과 먼 지방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사회문제에 이렇듯 담담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자문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작가는 시대의 양심이고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오늘도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한다. 아무래도 나의 브런치 매거진 하나의 제목을 ‘글이 취미가 되지 않게’에서 ‘취미로서의 글쓰기’로 바꿔야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유행하던 레크리에이션이 떠올랐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아니요... "

  "그럼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


  "저요. 그리고 우리 가족요."


순간 부끄러움이 파고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일 처음 들어온 책은 '인간실격'이었다.  


덧. 내가 제때 대학에 갔어도 운동권은 아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연대의식 부족.

충격은 항상 뒤늦게 온다. 

내가 아는 사람과 그 가족이 어쩌면 그 시간에 그 근처에 있었을수도 있었다는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해졌다.그런 후에야 참사가 좀 더 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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