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붙들린 영혼에게
소설을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예술 작품의 생산자로서 자기를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문화 욕구가 보편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생살이에 도움을 주는 자기계발서도, 지친 삶에 위로를 주는 에세이도 아닌, 요즘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소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라는 대중에게 주목받는 이야기 매체가 있는데도 왜 소설이라는 계속 명맥을 유지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영상매체보다 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자적인 해석의 권한을 부여받기 때문은 아닐까.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소설을 쓰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지상에 견고한 집이 있는 사람은 상상 속의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만의 절실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 절실함은 작가의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것, 온전히 나에게 속해 있고, 내 존재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다.
소설은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시각에 포착되고 해석된 현실이다. 세계와 경험의 충실한 베끼기가 아니라 적절히 편집해야 한다. 구질구질할 만큼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야 비로소 소설이 된다.
훌륭한 소설 작품은 ‘정교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고 심오한 정신의 산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순간까지의 작가의 삶의 총체’다. 인생을 살면서 흘린 눈물과 피땀과 웃음과 사랑이, 그가 겪고 추구한 모든 의미가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작가는 그의 작품과 책을 통해서 한 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과 그의 작품이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잘 쓸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배 작가들의 좋은 소설을 여러 번 베껴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어와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꼼꼼하게 책을 읽는 것, 소설 쓰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흥분시키는 책이나 작가가 있기 마련인데 그 작가의 작품을 섭렵함으로써 문학적 체질을 강화해 가는 것이 습작 단계에서 필요하다. 반복적으로 읽고 배우되 스승을 벗어나 자기 날개로 날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상상력, 지속적인 독서와 사유를 유지해야 한다. 좋은 소설을 얻기 위해서는 늘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을 읽고 소설 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소설을 생각하고 읽고 쓰다 보면 어느새 소설거리가 나를 찾아온다.
소설은 정교한 조형물이기 때문에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난 다음에 소설을 쓰라고 작가는 권한다. 소설의 착상이 떠올랐을 때 곧바로 책상에 앉아 쓰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생각을 만지작거리며 조형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누구보다 치밀하게 소설의 유기적 결합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밑그림을 그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하는 것이다. ‘왜'와 '어떻게'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연쇄를 통해 스스로 길을 터 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좋다.
밑그림을 그리며 플롯을 만들어 갈 때, 감추기와 드러내기라는 교묘한 게임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일어날 사건은 그 앞에서 어떤 기미를 보여주어야 한다. 복선과 힌트를 적절히 활용하여 한 편의 소설을 구성해야 재미있는 소설이 된다. 드러내되 감추면서 드러내는 전술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궁금증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다.
자, 그러면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는가? 지금부터 밑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자. (144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