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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Mar 22. 2023

글쓰기와 주변인의 반응에 관하여

내게 진실은 너무 써





  이순(耳順)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아직 예순이 되려면 멀었지만, 세상을 예순 해쯤 돌아보면 천지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하게 될까? 구도자(求道者)나 철학자가 아닌 범인(凡人)으로서, 듣는 대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현자(賢者)가 되려면 얼마나 수련을 해야 될까. 아마 그것은 환갑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공부를 하고 혼자 산티아고를 몇 번 순례를 한다고 해서 이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닐 것이다. 



 조금 다른 의미로 귀에 달콤한 말, 약간 과장을 한 것일지라도 좋은 말만 듣고 싶어지는 속마음을 속일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아첨에 약해진다고 했던가. 쓴소리는 내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정서적인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귀에, 마음에 스며들지 않고 독약이라도 머금은 듯 뱉어내게 된다. 설령 그것이 진짜인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도 말이다.





  얼마 전 오랜 블로그 이웃이 내 글을 읽고 칭찬을 하셨다.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세요." 


  이 말이 어찌나 듣기 좋은지 마치 내 귀에 음악처럼 들렸다.  너무 감동적이라  몇 번이고 곱씹어 보기도 했다. 블로그에서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은연중에 그렇게 믿고 있었나 보다.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만나서 교류를 하니 아는 사람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셨다. 나를 북돋우는 블로그 이웃들. 비슷한 감성의,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다정한 말들은 계속 글을 쓰게 만든다. 



  얼마 전 친언니에게 브런치 글을 공개했다. 언니는 나의 다른 블로그에 올린 여행 글을 좋아한다. 국문과 출신인 언니는 왠지 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해서 비밀로 간직했었다. 나름 잘 썼다고 생각이 되는 글이 있어서 그 글을 수정해서 에세이 공모전에 보내면서 언니에게도 살며시 공개를 해 보았다. 처음엔 코멘트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느낌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언니가 나의 다른 블로그 글은 재미가 있지만 브런치에 쓴 글은 재미가 없다고 했다. 아마 이것도 최대한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에둘러서 말한 것이리라. 


  브런치에 쓴 글이 재미를 위해 쓴 글은 아니지만, 나를 고백하는 글이니 진정한 나를 드러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고 같은 가족사를 공유하다 보니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 왜 이런 걸 쓰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객관적인 평을 바라면서도 칭찬을 듣고 싶은 솔직한 마음의 이율배반이라니.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데 언니의 말을 듣고 한동안 몹시 의기소침해졌다.



  이왕 가족에게 오픈했는데 싶어서 책 좀 읽었다는 남편에게도 객관적인 감상을 물어보았다. 예전에 남편은 내가 글은 좀 쓰는 것 같은데 자기 스타일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을 언제 보긴 했던가? 이번에 브런치 글을 공유했더니 기대 이상이라면서, 왜 지금까지 자기한테는 연애편지 한 장 안 썼냐고 묻는다. 역시 남자는 자기중심적? 

  다소나마의 위안은 되었지만, 남편의 평은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일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취향이라는 게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 있다. 내 글을 읽고 좋은 평을 내려준 사람은 내 글이 자신의 기호에 맞았거나 나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어서 글도 좋게 평가해 준 것이겠지. 


  그렇다고 해서 솔직하게 얘기한 언니가 나를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집 사람의 특성상 빈말을 못하는 것이라는 걸 이해한다. 언니는 무거운 글을 싫어한다. 내 글이 칙칙하고 구닥다리 같고 비문학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매혹시키지 못한 나의 글. 마음이 조금 쓰렸다.



  브런치에서만 봐도 내가 추가한 '관심 작가'는 많고 내 글을 구독하는 '구독자'는 적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부분 인기 있는 작가들은 구독자가 많고 본인이 추가한 관심 작가는 아주 적은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글쓰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남의 글을 다 읽고 있겠는가. 그것도 아마추어 작가의 글을 말이다.



  읽히는 글, 그러면서 나도 즐겁게 쓸 수 있는 글만 계속 써야 할까 한동안 고민도 되기도 했다. 여행에 관련된 블로그 포스팅은 나도 즐겁게 쓰고 남들도 즐겁게 보는 것이니 이런 글만 쓸까? 여행 일기 같기도 하고 정보성 기사 글 같기도 한 그런 글만 쓸 작정이었다면 '류다의 정원'이라는 블로그를 만들고 브런치 작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 어디서부터인가 나만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기에 에세이 수업을 들었고 많은 메모를 끄적였을 것이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늘 뭔가 놓치고 있는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잘 써서가 아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이다. 나를 위로하는, 나만을 위한 글이라고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를 땐 쓰고 싶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가벼운 여행 일기든 내면의 독백이든, 경수필이든 중수필이든 구분하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누구나 작가가 되고 크리에이터가 되기 좋은 시대가 아닌가 말이다. 처음 출사표를 던질 때, '글이 취미가 되지 않게'라고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 쓴 적이 있는데, 이제는 제목을 바꿔야 할 때인가 보다. 

  취미로서의 글쓰기, 아마추어적인 글쓰기로 돌아간다. 욕심은 버리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이다. 글도 매력이 있어야 사람을 유혹하는데, 내 글에는 많은 대중의 마음을 유혹할 능력은 부족한 듯하다. 많은 구독자 수나 진심을 담은 사람들의 인정, 외적으로 드러나는 인기, 출판 권유 등 외적인 동기를 뛰어넘어 글을 쓴다는 것,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내 마음을 소리쳐 쓰고 싶다는 데 누가 말리겠는가. 좋아서 하는 일은, 내적인 동기 부여로 시작되는 일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그래도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읽히는글   #글쓰기단상  #내가좋아서쓰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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