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한강

by 전우 호떡

지난주 서울로 출장을 다녀왔다. 회의를 마친 뒤, 몇 년 전 살았던 동네가 문득 떠올라 버스를 탔다. 살았던 아파트 앞을 지나 한강 다리를 건너는 동안, 예전에 달리며 익숙해졌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강과 그를 둘러싼 풍경은 여전히 같아 보였지만, 그 앞에 선 나는 이미 다른 시간을 지나와 있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각, 잠수교 위로 차량들이 느릿하게 오갔고 사람들의 발길은 드물었다. 도심의 단정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햇볕을 받아 잔잔히 흐르는 한강의 물결은 예전과 다름없이 고요했다. 변하지 않은 풍경 앞에서, 한강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님을 느꼈다.


나는 한강 근처에서 두 차례 살았다. 두 번째로 그곳에 머물던 시절, 한강을 벗 삼아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거주 당시에는 바쁜 일상 탓에 토요일 하루쯤 아이들과 산책 삼아 찾는 정도였지만, 두 번째에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상 속에서 주말마다 한강을 달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겉으로는 한가해 보였으나,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성장에 대한 확신이 흐릿해지던 시기였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그렇게 달리기와 한강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혼자 달리는 길에서 한강은 말없이 곁을 내주었다. 적막 속에서도 옆에서 유유히 흐르는 물결을 느낄 때면, 혼자라는 감각은 옅어졌다. 달리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인상 깊었다. 여유롭고 밝은 얼굴들은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무뎌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반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는 이들의 모습 앞에서는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배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는 마라톤 복장으로 달리던 백발의 어르신이다. 군살 없는 체형과 마른 팔다리에 밴 단단한 근육, 구부정한 허리에도 흐트러지지 않던 걸음. 그분의 달리기에는 체력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힘겨움을 이겨내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묵묵한 자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모습은 지금도 하나의 실루엣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같은 시간대에 무리를 지어 달리던 젊은이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하나, 둘’ 구호를 맞추며 달리는 그들의 함성은 한강의 풍경과 어우러져 주변까지 밝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나는 함께 배우고, 함께 준비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에너지를 느꼈다.


한강은 주로 주말의 벗이었다. 적어도 한 번은 꼭 달렸고, 여유가 되면 두 번을 채우려 했다. 늦은 오후의 달리기도, 이른 아침 공복에 나서는 달리기도 모두 나를 단련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무거울수록, 나는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웠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언젠가를 대비하는 시간이라 여기며, 몸과 마음을 차분히 다듬었다.


돌이켜보면 한강은 단순한 달리기 코스가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에너지를 품은 공간이었고, 지난한 시절의 나를 묵묵히 받아준 동반자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통해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여유를 배웠다.


몇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바라본 한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십 년의 시간을 지나 한강처럼 흘러왔고, 변함없는 한강 앞에서 그 시간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듯, 한강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자태를 잃지 않은 한강을 바라보며, 그때의 호흡과 향수를 떠올린다. 변함없는 한강에게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4년 7월 대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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