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이지 않아도, 난 늘 여기 있을께

by 유혜빈

할머니와 아빠는 자주 부딪혔다.

서로를 챙기려는 마음은 분명했지만,

그 마음이 언제나 부드럽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할머니의 행동들을 제지하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빠의 불만과 날 선 말에도

아무 말 없이 받아내셨다.


저녁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어느 날,

할머니는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을

조심스레 아빠 앞에 두셨다.

그 작은 정성조차

아빠에겐 부담스러웠던 걸까.


“어머니! 그냥 어머니 드세요!

저도 이 집안의 어른이라고요!”

아빠는 아이들과 아내 앞에서

여전히 어린 아들로만 보는 할머니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날 아빠는 반찬 하나 손대지 않은 채,

그릇을 우리 앞으로 밀어내셨다.

그건 아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마저도

고생하는 내 하나뿐인 아들의

안쓰러운 투정으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아마도 가족들 앞에서 드러나는

할머니의 애정이

아빠에겐 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는 아내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인 자신을,

여전히 ‘아들’로만 바라보는 그 시선이

버거웠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잔소리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시던 할머니는

아들에게는 그 어떤 역정도 내지 않으셨다.


모진 말에도, 서운한 행동에도

마음속으로 눌러 담으시며

“그래, 알았다. 미안하다.”

조용히, 애써 웃어 보이셨다.

아들에게만큼은

상처 하나 남기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빠도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화를 내고 돌아선 후에도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할머니 곁에 다가가 말을 건네던 모습이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뱉어낸 말들이,

아빠의 마음으로

다시 가시처럼 돌아왔을 것이다.

그 말들이 마음에 걸렸고,

그 미안함을 덜고 싶어

다시 다정한 말로 다가가셨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들의 말 한마디에 금세 웃으셨다.

마치 다툼이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화를 내도,

함께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를 위한 한마디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랑.

멀리 떨어져 지내던 그 긴 기다림에 비하면,

그깟 말 한마디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아들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결국 마음을 다시 열게 되는 사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 곁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가 되어 있다


말수는 줄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어느새 내 곁을 슬그머니 피해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문득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 나를 따라다니며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사진을 꺼내 본다.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던,

아무 이유 없이 내 품에 안기며 웃던 그 순간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때의 추억은 지금도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그래,

그 기억 하나하나가

나를 버티게 해주는 사랑이라는 것을,

언젠가 아이들도 알게 되겠지.


지금의 나처럼.

그때의 우리 할머니처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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