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희수 Mar 20. 2019

한 그릇의 건강한 요리

몸인지 마음인지 모를 저 안쪽에서

   나는 정말로 모든 종류의 면 요리와 햄버거∙샌드위치 류의 음식을 사랑해 마지않지만, 단일 식재료로써 가장 좋아하는 건 다름 아닌 두부다. 생두부든 건두부든 유부(튀긴 두부)든 유바(두부껍질)든 두부 과자든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그중 자주 먹게 되는 건 아무래도 생두부 쪽인데, 통째로 데워먹어도 맛있고, 양념에 졸여먹어도 맛있고, 찌개에 넣어먹어도 맛있다. 어디에 넣더라도 내게는 두부가 주인공이다. 단순히 식재료라고 말해버리기에는(이미 그렇게 말해버리기는 했지만) 두부를 만드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내게 두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음식이다. 때문에 가까운 슈퍼나 마트에 들를 때, 두부는 웬만해서는 내 장바구니 안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항목이다. 평소에는 주로 각종 찌게에 넣거나 조림을 해 먹는 정도이지만, 내가 두부를 사용해 만드는 가장 회심의 요리는 아무래도 ‘버섯 미나리 두부찌개’라고 할 수 있다.

   검색해보니 두부찌개에는 여러 가지 변형이 존재하는 듯하다. 대부분은 시뻘건 국물에 얼큰한 두부찌개들이다. ‘버섯 미나리 두부찌개’라는 대충 붙인 듯한 이름(실제로 방금 급하게 지었다)으로 짐작해 볼 수 있듯, 이 찌개는 내 나름의 오리지널 요리 중 하나다. 몇 년 전 어느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두부 찌개를 집에서 그대로 만들어 본 후에 내가 흔히 하는 일(창작)의 원리대로 선택과 강조를 감행하여 차츰 내 방식대로 변형시켜 온 것이다.

   내가 이 찌개를 만들어 먹는 순간은 대개 몸과 마음, 어느 쪽이든 상당히 지쳐있다고 생각될 때다. 그러니까 나는 이 찌개를 일종의 회복 요리로써 만들어 먹는 셈이다. 효과를 보지 못한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나는 모처럼 버섯 미나리 두부 찌개를 만들었다.

   나름 거창한 소개와는 다르게 이 찌개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필요한 재료 역시 두부, 양배추(배추로 대체 가능), 미나리, 표고버섯(을 포함한 각종 버섯)이 전부로 단출한 편이다. 먼저 재료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모두 손질하고 냄비 바닥에서부터 양배추→버섯→미나리→두부 순으로 쌓는다. 그리고 재료들이 잠길 정도로 물을 채워 넣은 후 불에 올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적당량의 소금을 넣고, 양배추가 투명해질 때 즈음 적당량의 국간장을 넣는다. 그 상태로 간장이 재료들에 배어들 때까지 조금만 더 끓여내면 그걸로 완성이다. 마지막에 미량의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그대로 먹을 때가 더 많다. 실제로 생김새는 찌게라기보다는 국에 가깝다. 뭐 아무래도 어떠랴.

   먹어보지 않는 이상 맛을 상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고작해야 두부와 양배추, 미나리, 버섯만으로 얼마나 대단한 맛이 나겠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육수 같은 걸 전혀 넣지 않았음에도 찌개는 놀라울 정도로 깊고 속까지 따뜻한 맛을 낸다. 지인에게 뭔가 다른 걸 더 넣지 않았냐는 식의 진지한 추궁을 심심치 않게 받을 정도로 말이다.

   찌개는 막 지은 밥에 끼얹거나, 충분히 삶아 잘 씻어낸 소면에 말아도 잘 어울린다. 그대로 한 술(또는 한 젓가락) 떠서 입안에 넣으면 먼저 미나리와 표고버섯의 향이 기분 좋게 어우러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내 시원하고 고소한 국물이 입안 구석구석을 간지럽힌다. 그것들을 행복하게 씹는 동안 마지막까지도 조각나지 않은 온전한 두부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둔다. 먼저 먹은 걸 삼킨 후에 두부를 한 입 크게 베어 먹으면 몸인지 마음인지 모를 저 안쪽에서부터 가볍고 따뜻한 온기가 슬며시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어떤 때는 한 그릇의 건강한 요리가 몸과 마음을 되살리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사비의 습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