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돌아오자마자 느낀 피로감.
여러모로 피곤한 세상이다.
할말은 많지만 주제가 없다.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없다.
시원한 바람을 따라 걷다보니,
고층빌딩 옥상 난간 위를 걷고 있는 기분.
사랑의 마음을 담은 쪽지를 눈뭉치에 넣어
그대에게 장난스럽게 던져보고 싶은데
폭염에, 열대야에, 비마저도 오지 않는 날들이
반복되는 말뿐인 겨울을 나는 듯 하다.
간단한 말론 ‘답답함’ 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예쁘네.’ 한 마디로 저녁노을을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형용은 많고 내용은 없는, 언저리만 빙빙 도는 말로
눈만 홀리고 마음 앞에서 스러지는 신기루같은 활자의 군집이
나의 마음이고, 뜻이고, 삶인 것이 슬플 뿐이다.
어둠을 쫓는 태양이 뜨면 달라지고
그림자를 덮는 달이 뜨면 또 변하겠지.
변함없이 변하는 나의 변화를 다시 겪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