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this waltz. 2010.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읽는 글]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 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두 번 반복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쭉 만나왔던 남자와 나에게 '우리도 사랑일까' 묻는 것이고 , 하나는 새로운 남자와 나에게 묻는 '우리도 사랑일까' 일이다. 전자의 질문은 오래된 만남에도 개선되지 않는 상대의 문제점에서 발화된 것이고, 후자의 질문은 상대를 잘 모르는 만큼의 설렘과 걱정에서 발화된 질문이다. 마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동안 우선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로 한다.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여 휠체어에 탔던 그녀처럼 새로운 남자를 잃어버릴까 그녀는 우선 그의 인력거에 타버린 것이다.
항상 닭 요리만 만들며 집에 붙어있는 남자와 달리, 이 새로운 남자에게는 인력거라는 운동성이 있다. 마고가 요리하는 남편에게 스킨십을 원하는 것은 단순히 섹스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운동성을 바랐는지 모른다. 새로운 남자는 여행지에서 만났으며, 인력거를 끌고, 매일 아침 집 '밖'으로 나가는 인물이다. 집에만 있는 남편을 보던 마고에게 이 새로운 남자는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판 제목은 <우리도 사랑일까>이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Take this waltz'이다. 번역하자면 '이 왈츠를 춰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왈츠라는 것은 '남편과 의 왈츠'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남자와의 왈츠'를 뜻하는 것일까. 전자의 뜻을 빌리자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라는 것일 테고, 후자의 뜻을 빌리자면 지금 다가온 사랑에 충실하라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누구에게도 힘들것이지만 영화는 여러 장면들을 통해서 하나의 대답을 하고 있다. '새로운 남자를 멀리하라'라고 말이다.
첫 번째 사진부터 보자. 음주운전을 하고 경찰에게 연행되기 전 전 남편의 언니는 마고에게 말한다.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인데, 미친놈처럼 그걸 일일이 다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이 말은 남편에게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행위를 뜻 할 것이다.
두 번째 사진. 수영을 마치고 아주머니들은 마고 쪽의 얘기를 듣다가 어깨너머로 한마디 한다. '새것도 헌 게 된다오'라고, 결국은 지금의 사랑이 가진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 시작한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빈틈을 가질 거란 이야기 일 것이다.
세 번째 사진. 웃고 즐기며 운동하던 마고는 수영장에서 실례를 하고 만다. 아마도 이 장면은 운동성과 카타르시스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달리고, 수영하고, 음탕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새로운 남자와 하는 일이었다. 이 실례 장면(오줌을 누는)을 대니얼(새로운 남자)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은 은근한 성적 암시이기도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수영장의 물이 파란색으로 변하자. 수영 강사는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어르신들도 좋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대니얼과의 만남을 비유적으로 부정하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서 마고는 요리를 하고 있다. 요리하는 남편과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났으니 이제 요리는 마고의 담당이 된 듯하다. 요리를 하는 남편은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정지성'을 가졌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이 불만으로 '움직이는' 남자 대니얼과 만났지만, 그로 인해 마고 자신 스스로가 '정지된(요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 마고는 혼자 놀이기구를 타러 간다. 이제 자신이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운동성에 대한 욕망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리하는 남자를 만나도, 그렇지 않은 남자를 만나도 마고는 '정지성'이라는 같은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떤 사랑에도 빈틈이 있으며,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영화의 나지막한 메시지가 여운을 오래 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