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오브 웨일스 4 홍채虹彩

우리와 반대되는 색을 타고난 자가 왕의 종 아니겠냐 하면서.

by 류인환

신하들은 왕족의 조건으로 검은 체모, 황색 눈동자를 꼽았어. 반대로 신하들은 대체로 금색 체모, 검은 눈을 가졌어. 광장에서 신하들은 비꼬는 듯 백성에게 떠들곤 했어. 우리와 반대되는 색을 타고난 자가 왕의 종 아니겠냐 하면서.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왕족의 우아한 자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




왕자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어머니가 버려진 날 때문이야.


마지막으로 그가 왕비를 본 날. 신하들은 그녀를 잡아갔어. 왕자는 보았어! 자신을 품에 안고 잠든 어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대여섯의 신하. 귀가 무척이나 밝았던 어머니는 기척에 눈을 떴어. 그들의 세밀한 윤곽이 드러나고 신하들 손아귀에 들린 밧줄과 두건을 보았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벽으로 뒷걸음쳤어.


포식자 같은 신하들은 어머니를 포위했어. 그들은 스스로 그물이 되려는 듯 넓게 두른 밧줄을 이어 잡았지. 한 신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어. “여왕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황색 눈. 그때 유난히도 붉었어.


여린 어머니. 그 순간만큼은 포효하듯이 신하들에게 달려들었어. 손톱을 드러내고 짐승들의 얼굴을 할퀴려는 그녀 모습은 용맹스러웠지만, 그래서 더욱 생의 끝에 선 피식자 같아. 신하들은 어머니의 팔목을 낚아챘어. 그리고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리꽂아버렸지. 어머니의 치아에서 붉은 피가 흘러! 지면을 울리는 충격에, 숨어있던 왕자의 눈동자도 피 흐르듯 요동쳐. 신하들은 엎드린 그녀 등 위로 달려들어 사지를 밧줄로 결박했어.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자 그들은 서둘러 왕비의 입을 두건으로 휘감아.


비명을 듣고 벌거벗은 왕이 달려왔어!

아버지는 분노했어.


그리고 어머니처럼 신하들에게 달려들었지. 하지만, 한 신하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내어 보이자 아버지는 몸이 굳어버리고 이내 머리를 숙이는 거야! 신하들은 왕의 반응을 보고 입술을 실룩거렸지. 기세를 내세워 다가갔어. 뒷걸음치는 아버지의 등이 벽에 부딪히고, 걸어오는 신하들의 흰 얼굴과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렸지. 어디선가 새는 달빛에 아버지의 노란 눈동자가 비췄어.


홍채를 이루는 방사형 근육은 마치 날 심장처럼 움츠렸다 펴짐을 반복하며 태양처럼 타는 듯 이글거려. 마침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진 아버지는, 배와 아랫도리를 드러내다시피 몸이 펼쳐졌어! 왕은 수치심에 이를 악물었어. 드러난 이는 황색 눈동자만큼 싯누렇게 닳아 있었고, 치아 사이로 들이치는 거친 숨은 연신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


왕자는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 늘 악물어 닳아버린 흉한 치아. 몸에 새겨진 수많은 칼자국. 신하들은 그 작은 칼로 거대한 아버지를 훈련시키곤 했으니까. 그렇게 아버지는 신하들과 어머니를 방관해버렸어.




얼마 후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았어.


새어머니는 왕자 만큼이나 어렸고 아름다워. 왕자는 의문이 들었어. 그녀는 처음 보는 털과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왕자는 그녀의 백색 체모,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았어. 생각했지. 자신과 아버지가 칠흑같은 밤 그리고 어두운 흙바닥이라면, 그녀는 새벽의 안개라고. 같이 선 왕과 왕비는 흑과 백의 대비처럼 무척이나 다른 존재였어.


성대한 결혼식에서, 술에 취한 신하들은 이제야 말로 진일보된 아름다운 왕손이 태어날 것이라고 왕을 조롱했어. 한 신하는 다른 이에게 푸른 눈에 백발을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며 서로를 치켜세웠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왕자는 아버지를 흘깃 바라보았어.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닳은 치아를 드러내며 신이 났는지 웃고 있을 뿐이야. 연회 이후로 한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어.




몇 달 뒤 아버지가 왕자를 찾아왔어. 왕자의 황색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왕은 말했어.


“신하들이 너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은 종자를 구했다. 어쩌면 너보다 건강한 왕자가 나올지 모르지. 그들은 이제 새로운 눈이 필요하단다. 새로 점령한 지역의 노예들이 온통 황색 눈이라 하는구나. 이제 너는 후손으로서 가치가 없단다. 너와 나는 곧 노예들의 상징이 될 테니까.”


왕자는 용도가 사라졌어. 선택해야 했지. 궁전에서 버려질 것인가, 지금 궁전을 버릴 것인가. 왕자는 결론을 내렸어. 왕이 빼앗겼던,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는 산의 삶을 자신이 빼앗아 살기로. 왕자가 궁전을 탈출한 이유야. 아버지 그리고 신하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어머니와 달리 살아남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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