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송이 장미 25 두 개의 장미

샛별은 일그러지는 딸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어.

by 류인환

장미는 휘둥그런 눈망울로 쓰러지는 목성을 보았어.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지. 장미의 다리에 머리를 겨우 기댄 채. 샛별 역시 눈을 크게 떴어. 두 개의 장미. 그들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지. 장미의 눈이 붉어졌어.


구슬처럼 두터운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지.


샛별은 붉은 입술이 벌어진 채 아무 말 못 했어. 방금 자신이 했던 짓. 내가 한 게 아니야. 누군가 시켰단 말이야. 검게 그을린 그녀가 한 짓이야. 샛별은 일그러지는 딸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어. 샛별 역시 숨이 떨리고 울음이 새어 나왔지. 딸에게 말하려고 했어. 그가 누구인지,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 아이처럼 우는 널 보며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고.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단다. 얘야. 날 미워하지 말아 줘. 제발 날 떠나지 말아 줘.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입 속에선 공기 대신 걸쭉한 액체가 게걸스레 흘러나오고 있었지. 샛별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어. 딸의 손이 파고들었어. 딸은 손가락을 힘껏 뽑아냈어. 날 선 샛별의 뼛조각에 장미의 손은 부러지고 뒤틀렸어. 샛별은 자신의 가슴보다 딸의 손이 아팠어.


장미는 여전히 샛별을 노려본 채 새어 나오는 울음을 헐떡일 뿐이야. 곧 장미는 식은땀을 쏟으며 무릎을 꿇었어. 그럼에도 고개를 떨구진 않았어. 장미가 이를 악물며 말했어.


“실패한 년.”


샛별이 보기에 그 말투는 어린 딸의 원망일 뿐이었지.

하지만 그녀 머릿속에 사는 검게 그을린 여자는 발악했어!


샛별은 또 한 번 자신도 모르게 손톱으로 그녀 목을 그어버려!

뼈를 살짝 스쳤어. 샛별이 힘껏 검은 그녀의 의지를 막아낸 거야. 그리고 다급히 엘리베이터로 달려갔어. 구두 굽이 부러지고 발목을 접질렸어. 기어가 버튼은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열리지 않아. 그녀는 황급히 문을 치며 소리를 질렀어.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해. 더는 딸에게 해를 가하지 않게.




목성이 눈을 떴어.


무척이나 더웠지. 그는 쓰린 가슴을 보았어. 구멍이 뚫려있었지. 그럼에도 정신은 또렷해. 부서진 갈비뼈는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제 길이를 연장하고 있어. 히헤- 하는 허파 새는 웃음이 나와. 장미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는 방금 전 별안간 나타났다 숨 멎어 버린 유리의 목소리를 떠올렸어. 그래 나 역시 그녀와 다를 바 없는 복제품이었던 거야.


이마에 뜨거운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장미의 목에서 흘러나왔지.


그녀는 목성의 머리를 무릎에 올려두었어. 만신창이가 된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밝은 얼굴로, 반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 “당신도 금방 나을 거예요. 우리는 결국 같은 존재였군요.” 곧 장미는 그의 얼굴 위로 힘없이 고개를 묻었어.


그는 혈관 속에 쇳물이 끓는 기분이야.

“음, 음!” 비명을 간신히 질렀지.


이곳 진회색의 거대한 공간.

수 십 층의 지면이 들썩이기 시작해.


천장에서는 비와 바람이 쏟아지듯 내렸어. 장미와 목성이 쓰러진 지면 바닥이 뜯겨나가 공중에 솟아올랐어! 목성은 겨우 몸을 일으켜 지상을 내려다보았어. 백색 코트를 입은 그녀가 작은 인형처럼 보였지.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어. 마치 동상처럼. 그러다 고개를 번쩍 들어 피를 뿜듯 소리를 질러. “내려와! 다 죽여버릴 거야!”


목성은 두 손을 천장으로 뻗었어.

곧 수십 개의 지면이 목성 주위로 떠 올랐어. 마치 위성처럼.


그가 두 손을 샛별을 향해 겨누자 빗물을 품은 무거운 지면들은 그녀를 향해 돌진했어! 쾅- 쾅- 쾅- 쾅 지면은 하나씩 그녀를 들이받았어. 자욱한 흙과 돌 사이 그녀 형체가 보여. 충돌이 더해질수록 그녀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더는 보이지 않았지. 그녀가 서 있던 곳은 이제 공기 샐 곳 없이 메워졌어. 빌딩 벽에 균열이 일어! 화훼 빌딩은 단숨에 무너져버렸어. 목성과 장미를 태운 지면은 서둘러 빌딩 틈 사이를 빠져나와 도시를 항해해.




검은 밤하늘. 대낮 같은 거리.


무너져내리는 빌딩 아래 알 수 없는 기계들의 무덤. 백발의 사람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는 중이야. 목성은 장미를 보았어. 공중에 뜬 지층 위로 힘없이 드러누운 장미. 휘날리는 검은 머릿결 아래 창백한 얼굴은 숨을 쉬지 않는 듯했어. 목성은 서둘러 그녀 가슴에 귀를 갖다 대었어. 숨이 느껴지지 않아.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야 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지면에서 울렸어. “사회는 죽었어. 이제 도시는 안전하단다. 그녀의 집 지하실에 장미를 살려낼 장비가 있어.”


목성이 뭐라 할 틈 없이 지면은 순식간에 그녀 집을 향해 날아갔어. 목성은 온 힘을 짜내 그녀를 업고 지하실로 내려갔어. 계단을 구르기도 했지. 그녀와 그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어. 목성은 입술을 베어 물듯 깨물고 억척스레 그녀를 철제 욕조에 눕혔어.


철제 조개는 단숨에 그녀를 삼켰어. 그리고 닫힌 주둥이 사이로 빛과 어둠을 바코드처럼 뱉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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