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송이 장미 26 두 개의 장미

그렇게 장미의 삶을 가늠해보았어.

by 류인환

목성은 그녀의 집을 청소하는 중이야.


삐걱거리던 원목마루를 덜어내고 벽을 뒤덮은 그을음을 닦아냈지. 뜯겨나간 검은 소파의 살갗을 새것으로 덮고 뜨거운 물이 흐르는 욕실에서 샤워를 했어. 그녀가 잠들었던 작은 침대에서 아침을 맞고 널브러진 그녀 옷가지를 빨아 널었어. 정원에 꽃을 심었고. 밤이 되면 소파에 앉아 가로등 불이 비추는 액자를 바라보곤 했지. 테이블에 놓인 위스키를 홀짝이며. 그렇게 장미의 삶을 가늠해보았어. 그동안 그녀가 목성에게 했던 말과 표정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사흘째 밤.

지하실 욕조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어렸을 적 내가 시달릴 때면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나를 위로해 주었지. 그럴 때 어머니는 미소를 띄워 속삭여주었다네. 마리냐는 딸에게 인생을 주었지만 행복을 주는 것을 잊었어. 시간은 흘러 더 이상 어머니는 없네. 지금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래서 외로움에 물리면 어머니를 떠올려. 어머니와 똑같이 중얼거리는 한 사람 바로 내가 있다네.


욕실 벽에 기댄 채 잠들었던 목성이 눈을 떴어.


빛과 구름이 지하실을 가득 메웠어. 그녀가 욕조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턱을 괴고 그를 빤히 바라봐. 목성도 옅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는 중이야. 그는 입을 열려다가, 닫았어. 그리고 다시 미소를 지은 채 하염없이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았지. 다시 입을 열었다가 또 한 번 머뭇거려.


여전히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짓다가.

결국 목성은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어.

“너는 장미이니, 미지이니.”

숨죽여 대답을 기다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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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히 욕조 난간에 팔을 걸치고 그를 바라보았어.

그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그러다 붉은 입술을 열었어.


“알잖아요. 나는 장미도, 미지도 아니라는 걸. 그녀들을 원한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건 피 한 방울이예요.”


목성은 고개를 숙였어.




그녀는 흐느끼는 목성을 바라보다 욕조를 나왔어.

젖은 몸 그대로 그를 안아주며 말했지.


“내 머릿속에 있는 장미가 말해요. 장미는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고. 장미가 된 순간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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