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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Apr 26. 2022

이응의 우주

5. 뒷모습


자신의 모에게 지난 2년 간 모진 말을 해오던 이응은 이번에도 역시 눈물을 훔쳐가며 모진 글을 올리고 싶다고 다시 한번 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쉽게 기분이 가라앉아. 끌어올릴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해.” 과거의 이응처럼 이야기를 하는 자신의 모에게 이응은 모진 부탁을 했다. 두 달 전, A4로 180장의 모진 글을 모에게 대뜸 건넨 것으로도 모자라 이응은 모진 내용의 모진 말들이 담긴 그 글들을 다시 정리해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고 모에게 말했다.

“…. 생각을 좀 해 보자.”


밥상을 다 치운 후, 이응의 모는 옆으로 쓰러져 누워 있던 딸을 불렀다.

“이응~. 이제 엄마는 히포 수프를 끓일 거야. 엄마랑 얘기하고 싶으면 부엌으로 와아~?”

“네.”

별 뜻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행동을 그만두고 이응은 몸을 일으켜 모의 말을 따라 부엌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등을 보이고 히포 수프를 끓일 재료를 손질하는 모의 뒤에 앉아, 니은 자로 꺾인 싱크대 옆 모서리를 의미 없이 응시하던 이응에게 이응의 모는 여전히 등을 보이며 말을 꺼냈다.

“예전에 너희들 어릴 때, 미술치료 워크숍에 가서 가족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어.”

이응의 모는 그때 가족 그림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을 하다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엄마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금처럼 싱크대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로 쌓여있던 설거지를 하거나 저녁에 먹을, 때로는  주를 먹을 음식을 만들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모습을 그려야겠다 생각을 했어. 그래서 먼저 싱크대에  있는 뒷모습을 그렸어. 부엌과 거실 사이에서  놀고 있는 너희들을  그림에 같이 담아야 하니까 나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을 하다가 부엌 싱크대 앞에  있는  뒷모습을 그렸어. 그리고  뒤로 너희들이 앉아서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지. 그렇게 너희는  알아서  놀곤 했으니까.”

“맞어. 그랬지. 나도 어릴 때 생각하면 엄마나 아빠나 그 뒷모습밖에 기억이 안 나.”

이응은 벌써 재작년이 되어버린 2020년의 초, 상담치료를 시작하기 전 자신이 그렸던 가족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모의 말을 들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등을 보이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다 그렸는데 워크숍을 해주신 선생님이 그러니까, 빨리 말해서 엄마의 그림을 보고 ‘어라?’ 한 거야. ‘어라? 여기, 응. 문제가 있다.’ 하신 거야. 그런데 그때 엄마는 몰랐어. 이게 왜?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했지.”

“응.”

“근데, 그렇잖아. 가족의 모습을 그리라고 했는데 그림을 보면, 아빠의 모습은 없고, 엄마는 등을 돌리고 있고,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있어. 그러니까 ‘이상한데?’ 하신 거지. 그래서 종종 이렇게 엄마가 싱크대에서 일을 할 때 너가 뒤에 앉아 있으면 그 일이, 그 그림이 다시 떠올라. 이제는 아아 그래,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해.”

“그렇지.”

“그러니까, 글을 올리고 말고를 떠나서 글은, 글은…. 계속 써 봐.”

“갑자기?”

“어…. 그러니까 그게 너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인 거잖아.”

“응….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한나절 생각을 한 이응의 모는 이응에게 글을 계속 써보라고 했다. 글은 계속 써 보라고 했다.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체력이 좋아서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다른 사람이면 그렇게 못했지. 그리고 이게 다 상대적인 거야. 엄마는 외할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어. ‘그래, 엄마는 오 남매를 키워내면서, 집안일도 하고, 외할아버지 따라서 농사일도 하시는데 내가 하는 건 일도 아니야.’ 했던 거지. 내가 하는 일은 농사일보다는 훨씬 힘이 덜 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외할머니는 다섯 명이나 키워내야 했는데 나는 너희 둘만 키워내면 됐었으니까. 근데 참 돌아보면 엄마도 엄마 나름 고생을 하고 살았어?”

“고생했지. 당연히 고생했지. 고생했어, 우리 조여사. 근데 엄마, 나는 그래서, 그래서 엄마를 도왔어. 그래서 엄마를 돕는 일을 하고 하나도 뿌듯하지 않았어. 내가 이거라도 해야 엄마가 빨리 쉬지, 빨리 자지 싶어서. 그래서 했었어서. 엄마, 아빠가 모임이 있는 날, 엄마, 아빠 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알아서 밥을 차려서 둘이 먹고, 아침 설거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엄마 돌아오면 먹으라고 방울토마토 닦아서 랩 씌워 놓고 그랬잖아요. 그때,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내 칭찬을 하고 그랬는데 정작 나는, 나는 하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 그저 내가 이렇게라도 해야 엄마가 빨리 자니까. 그래서 했던 거였어서.”

이응은 왜 자신이 그런 걸 하고 있는 건지 이해를 못 하면서도 당연하게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2년 전부터 자신에게 설명이 되기 시작했던 그 일들을 이응은 담담히 꺼내 놓았다. A4로 180장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는지 이응은 자신의 모에게 또 모진 말을 했다.  

“내가 곧잘 하니까 엄마는 나에게 곧잘 시키고 또 동생을 맡겼어. 그 나이에 내 또래 중에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어. 근데 엄마는 엄마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밥을 지었다며 나에게 밥 짓는 법을 가르치고 일이 있다며 늦게 들어왔어. 그땐 압력 밥솥에다 밥을 했지. 위에 딸랑딸랑 거리면 적당한 때에 불을 끄고 뜸을 들이고, 김을 빼줘야 하는.”

“그니까, 그게 다 상대적인 거야.”

“아니지, 엄마. 엄마고 나고 같은 세대를 기준 삼아 상대적이어야지. 나는 내 주변에 전기 압력 밥솥이면 몰라도 불에 하는 그 압력 밥솥으로 밥을 짓는 애는 나 하나밖에 없었어.”

“…. 그래.”

“에휴. 그러니까아.”

“그래, 우리 둘 다 고생하며 살았다.”


서산 집을 나와 서울 집으로 향하며 이응은 전에 자신의 모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 모르고 나머지 단추를 끼워갔던 거야.”

이응은 자신이 잘못 끼워갔던 단추들에 대해 생각했다. 괜히 울적한 기분에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너네가 가니까 또 집안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하네.’ 하고 자신의 모가 보내온 카톡 때문에 이응의 마음은 더 싱숭생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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