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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영 Apr 20. 2022

이응의 우주

3. 나비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응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잠에서 깬 것이 이응은 당황스러웠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응은 일종의 절대자에게 굉장히 이상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느낌이었다. 지난밤 꾼 호랑나비가 나온 꿈을 이응은 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다시 ‘현실’로 깨어난 것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응은 꿈속 호랑나비를 보고 일반 복권을 사야 할까, 연금 복권을 사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더란다.) 이응은 당황스러움을 안고 눈을 꿈뻑꿈뻑거렸다. 생각해보면 그 꿈을 현실로 믿은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때는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고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꿈에서는 커다란 호랑나비가 이응의 앞을 팔랑팔랑 날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응에게도 분명 그것을 현실이라고 느낄만한 핑계 내지 사정이 있었다.


    이응에게 나비는 아주 특별했다. 왜냐하면 이응은 이후 나비가 되고 깊은, 어쩌면 나비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어느 날에 이응의 조모는 말씀하셨다.

    “너희, 그 할아버지는 나비가 되었다고 했었어!”

이응의 조부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응의 조부는 이응의 조모가 그 말씀을 하실 때 그의 곁에 서계셨다. 이응의 조모가 말한 할아버지는 이응의 부의 조부였다. 이응의 조모는 이응의 부의 조부가 나비가 되셨다고 했다. 이응의 부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이응의 부는 전에도 나비가 거실 창 너머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꼭 TV를 보며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우리 할머니 오셨네, 우리 할아버지 놀러 오셨네.” 하곤 했다.

    해가 따사로운 날이었다. 이응의 부는 텃밭에서 바람을 맞으며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이응의 백부가 주목을 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이응의 조모는 두 아들 옆 연두색 펜스 너머로 한 껏 신이 난 이응의 집 두 똥강아지들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적당한 해와 살살 부는 바람에 묘한 샘이 난 이응은 슬리퍼에 발을 욱여넣고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응이 조모의 곁으로 가자 어디선가 나비가 날아들었다.

    “어? 나비다!”

일전에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났던, 이응의 발 옆에서 쉬어 가던 검고 파란 나비는 아니었다.

    “호랑나비네?”

    “아이고, 또 우리 할아버지 오셨네?”

몸을 숙이고 일을 하던 이응의 부는 몸을 반쯤 일으켜 호랑나비를 보곤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하하하! 그래 맞다! 너네 할아버지 오셨네! 참 신기해. 고게 진짜 꼭, 꼭 나비 모양이었어. 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흰 종이 우에 쌀을 이렇게 파악! 응, 그리고 쓱쓱 고르고 펼치고, 이렇게 이렇게.”

한껏 상기된 이응의 조모는 같은 손짓을 반복하면서 신나서 말을 하셨다.

    “치니까?”

    “으응 치니까! 꼭 모양이 저거 뭐여, 그거.”

    “아아~ 나비?”

    “으응 그렇지, 나비! 꼭 그 나아비 모양이었어. 너희, 그 할아버지는 나비가 되었다고 했었어!”

그 말을 들은 이응의 백부와 부의 얼굴엔 옅게 웃음이 퍼졌다. 이응의 모가 부엌 창 너머로 커피와 과일을 드시라고 외쳐 불렀다. 따가워진 햇살에 미간을 찌푸리던 이들은 빙그레 볼을 올려 눈가를 펴고 집으로 향했다. 이응은 조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나의 할머니도 나중엔 나비가 될까? 나의 할아버지도, 아빠도. 나는, 나는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이응이 자신의 조모로부터 나비가  부의 조부 이야기를 들은  나흘  되는 날이었다. 이응은 시내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와 마을 갈래길에서 내려, 걸어서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응은 호랑나비를 만났다. 아주  호랑나비였다. 마을  저수지를 도는 길에서 그날 이응은 이응이 살며 만난 호랑나비 중에 가장  호랑나비를 만났다.  크기가 하도 크고, 날개 끝이 유독 뾰족한 것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폼이 영락없는 나비였다. 팔랑팔랑 팔랑팔랑. 이응의 오른쪽으로 나타났던 나비는 이응을 돌아 왼쪽으로 날았다. 그렇게  10미터를 이응은 나비와 함께 걸었다.

    그때 문득 이응은 난 지 일주일 만에 패혈증으로 죽었다던 오빠를 떠올렸다.

    ‘오빠도 죽어서 나비가 되었을까.’

이응은 생각했다.

    ‘나의 오빠가 나비가 된 후 내가 태어났을까. 내가 태어난 후 죽은 오빠가 나비가 되었을까. 나비가 되지 않았다면 나의 오빠는 무엇이 되었을까.’

    걸어걸어 저수지가 끝났을 즈음 커다란 호랑나비는 저 멀리 날아갔다. 나비가 날아간 곳 너머로 저 멀리 이응의 눈에 이응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초롱이, 아우디 두 똥강아지들이 깡깡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집에 다 도착해 이응은 “요 녀석들아! 나 왔다니까!” 하며 두 강아지를 불렀다. 강아지 집가 연두색 펜스 옆 주차장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첫 계단에 발을 올리고 이응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저수지를 걸으며 만났던 그 나비가 이응의 머리 위에서 팔랑이고 있었다. 분명 그 나비였다. 날개 끝이 뾰족하고 유난히 큰 그 호랑나비였다.

    ‘어?’

    이응이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초롱이는 인기척에 가늘게 눈을 뜨고 나와 깡깡 짖어댔다. 깡깡 짖어대는 초롱이를 보고 나서야 호랑나비는 팔랑이다 사라졌다. 이응은 집에 들어와 부에게 호랑나비와 함께 걸어서 집에 온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너 심심할까 봐 같이 집에 와주셨나 보다. 심심하지 말라고 놀아주셨나 보다. ”

    “응,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응은 나비와 걸어오며 정작 생각했던 진짜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호랑나비와 걸으며 먼저 죽은 오빠를 생각했는데 부에겐 차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대충 그랬다고 대답했다.


    어린 날 이응은 누군가에게 호랑나비를 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서예 학원에 가는 길에 우체국 주차장 옆을 지나다 우연히 호랑나비를 만날 때면 이응은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서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꼭 모아 ‘오늘 저녁에 꼭 치킨 먹게 해 주새요!’하고 빌었었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집에 돌아가면 저녁으로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이응은 생각했다.

    ‘그 나비는 아빠의 할아버지 나비였을까. 아니면 나의 오빠 나비였을까.’

그 누구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이응의 마음을 들어주었던 나비를 떠올리며 이응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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