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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Jun 24. 2016

Kassel/Deutschland

2016년 6월 23일, 카셀 빌헬름회에에서.

23.06.2016 Kassel, Hessen


며칠 전의 바젤 여행의 끝은 사실 카셀이었어야했다. 하지만 스위스 국경에서 검문만 2시간, 결국 바젤에서 타고 온 버스는 뒤셀도르프에서 카셀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동시에 도착했다. 연휴를 끝내고 가게에 출근하니 시프트에 약간의 변동이 발생, 얼떨결에 목요일 휴일을 얻었다. 당장 카셀의 날씨를 확인하니 마침 목요일 하루만 맑음. 어머 이건 가야해! 라며 당장 버스를 예약했다. 이 휴일을 여행에 쓰면 다음 주의 프랑스 여행 직전까지는 휴일도 없이 6일 근무가 되지만 그래도 이건 가야해. 그렇게 이래서 미루고 저래서 미뤄 온 하루 하루는 넉 달이라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시간으로 남아버렸다.


이른 아침에 타고 떠난 버스는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목적지인 카셀의 빌헬름회에 역에 도착했다. 일단 일찍 일정이 끝나면 시청사와 구시가지까지 가볼 생각으로 1일권(7,00유로)을 구입하고 트램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려 산 정상에 위치한 헤라클레스 상까지 올라갔다. 나의 빌헬름회에 산상공원Bergpark Wilhelmshöhe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3유로를 내면 아직 공사중인 신전 안으로도 들어갈 수가 있다. 옥상인 옥타곤에는 헤라클레스 상을 받치고 있는 피라미드가 있다. 옥상까지는 올라갔지만 피라미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이 내게 행동력과 추진력을 주셨다면, 심한 고소공포증도 한 세트로 함께 주신 것이 분명하다. 발목을 잡아 완급을 조절해야할 필요를 느끼신 게지.

인공폭포를 옆으로 끼고 내려오는 길은 계단공포증도 있는 내겐 꽤나 땀 나는 시간이었다. 왼쪽 다리가 그리도 후덜거릴 수가 없었다.

슈타인회퍼 폭포 Steinhöfer Wasserfall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으라면(은 아무래도 나의 단골 문장인 것 같다) 나는 슈타인회퍼 폭포로 향하는 산길을 꼽고 싶다.


나는 보통 여행-가본 적 없는 동네를 걸을 때에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오감을 모두 활용해 느끼고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맑은 날씨와 기분 좋은 바람의 콜라보레이션. 잎사귀들의 바람에 스치는 소리는 마치 나무들의 대화처럼 들린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집중해 듣다보면 어디선가 소리만으로도 이 물이 얼마나 맑은 지 느껴지는 청량한 폭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피부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과 내 볼을 스치는 산들산들한 기분 좋은 바람. 오늘 하루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당분간 휴일이 없다는 이유로 집 안에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호사다. 기어나오길 잘 했다.

토이펠 다리 Teufelsbrücke

이 산 전체에 조성된 공원은ㅡ 산 위에 인위적으로 공원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산 속에 공원을 숨겨놓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보물찾기 마냥 구조물들을 꽁꽁 감춰두었다. 인간이 자연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닌, 자연 안에 인간이라는 작은 말을 올려둔 것처럼. 작은 다리, 작은 인공 폭포 조차도 주변에 돌들을 장식해놓았는데, 그것들은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하지만 완전한 자연이라고 하기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인상은 그 조화가 무척 아름다워 이 거대한 정원을 만들 때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에 신경을 썼는지 느껴졌다. 그저 '산 위에 만들어진 거대한 정원'일 수도 있는데 이곳이 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수로교 Aquädukt

다리 위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쭉 뻗은을시원한 일직선을 반대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아까 보았던 시원스러움은 어디가고 경건함 마저 느끼게 된다. 사람으로 빗대어보면 머리 위에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낸 것이나 다름 없는데, 학생 주임 선생이 아닌 헤어디자이너가 만진 것인지 예술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

뢰벤성 Löwenburg

어딜 가나 공사중이었다. 뢰벤성 역시 성 안쪽 벽과 뒷부분이 한창 공사 중. 아기자기해서 미니어처 같은 곳이었다. 입구 쪽에 작은 휴게실이 있어 잠시 트롤리 젤리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입구 앞의 작은 정원? 뜨거운 햇볕을 피해 넝굴 밑으로 들어가보았다. 생각보다 시원하진 않았다. 다만 시원해 보이는 상큼한 가득한 사진을 한 장 건질 수 있었다. 여름이구나. 5, 6월 내내 독일을 비롯한 프랑스, 벨기에 등의 서유럽 국가들은 종일 비, 구름의 날씨가 한 달 반 정도 계속 되고 있었다. 봄도 여름도 없이 이곳의 5, 6월은 가을이구나- 라고 느꼈던 한 달 반. 슬슬 귀국 시기와 다음의 마지막 워킹홀리데이가 끝난 이후의 거처 등을 고민하고 있다. 다시는 유럽에 '살러'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조금씩 마음이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내가 좀 더 어렸으면 좋겠다. 이탈리아에서도 살아보고 싶고 프랑스에서도 살아보고 싶고 스페인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경력도 모아놓은 돈도 없이 나이만 먹어버렸다는 현실이 발목은 물론 손목도 붙잡고 목 마저도 졸라온다.

빌헬름회에 궁전 Schloß Wilhelmshöhe

1번 트램을 타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 트램길이 숲속으로 나 있어 마치 숲 속 오솔길을 지나는 기분이다. 미리 알았다면 그 풍경을 담았을텐데. 이렇게 글로 써놓고 언젠가 다시 읽었을 때 영상으로는 남기지 못한 내 기억 속의 풍경이 갑자기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이 많아서 그런지 평소에 올리던 글보다 말이 많아졌다. 예전에 쓰던 여행기의 스타일이 조금 돌아오는 듯한 느낌. 사실 올리려던 글은 아래가 전부.

헤라클레스의 동상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일자로 쭉 뻗은 이 모습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길도 아닌 것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세상 끝까지 쭉 뻗어 있는 기분 마저 든다. 이 산 위에 신전과 동상, 분수, 폭포, 다리, 궁전, 성 등등을 오밀조밀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산을 깎아 정복하여 만든 것이 아닌 산 속의 나무들 사이에 보물찾기 마냥 숨겨놓은 듯 하다. 중심과 신념 만큼은 잃지 않고, 그것들을 위해 오랜 시간 집중하여 이 산을 거대한 정원으로 만들어 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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