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주, 독일 그리고 대만, 워킹홀리데이를 보낸 네 나라에서 병원 가기 클리어. 호주와 대만에선 같은 보험회사를 사용 중이다. 나처럼 워킹홀리데이 보험을 매번 알차게 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분명 'VIP'거나 '블랙리스트'거나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비가 왔다가 개었다 다시 비가 온 그런 한 주였다.
저녁으로 먹은 음식이지만 브런치가 첫 사진을 대표 사진으로 지정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서를 바꾸었다.
한국인들에게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우육면 집'으로 소개되는 '임동방 우육면'. 병원에 갔다가 마침 멀지 않은 곳이길래 찾아가 보았다. 구글 지도를 보며 갔는데 아니, 문이 닫혀있다. 나처럼 구글 지도를 보고 찾아와 똑같이 당황한 가족(일본인 혹은 대만인)도 있었다. 그러나 블로그에 올려진 간판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 큰길로 나와보니 역시 입구는 다른 쪽이었다. 줄을 서 있길래 나도 줄을 섰다. 약 10분이 안 되게 기다려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 우육면을 주문해 먹었다. 아 이런 맛이구나- 옆 테이블의 부녀가 오이 반찬을 먹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오이 반찬이 먹고 싶어 졌다. 어렸을 때부터 오이라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 나다. 결국 점원에게 물어보니 냉장고에서 알아서 꺼내다 먹는 것이라고 알려줘서 나도 먹어보았다. 김치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일본식 절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이 가게만의 혹은 대만의 스타일이려니-하며 먹었다. 오이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채소 중 하나다. 물론 못 먹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은 이런 오이를 사랑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걸.
아, 막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공짜인 것은 아니다. 접시 당 TWD 40이고 계산할 때 접시 개수를 세어 더해서 계산한다.
대만에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건만, 대만의 병원에 다녀왔다. 주말에 보험사에 연락을 해 증상을 말하고 예약을 부탁했고, 보험사로부터 월요일 오전에 예약 확인 전화를 받았다. 워홀 올 때 많은 분들이 돈 아끼려고 보험을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건강 보험에 가입 의무가 있는 나라(일본)가 아닌 이상엔 일단 장기 여행자 보험(워홀 상품)을 들어오는 것이 좋다. 나라의 보험에 가입이 안 된 상태에서 진료를 받게 되면 어느 나라든 병원비 폭탄을 맞기 쉽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한국은 70%가 의료보험 부담이라 30%만 내면 되는 시스템인데(일본도 같음), 한국에서도 의료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으면 100%를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아무튼.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병원 예약 시간이 가까워져 어쩔 수 없이 사 먹은 또 편의점. 편의점 음식은 정말 먹고 싶지 않다. 수년 전에는 그토록 사랑했건만. 일본 생활 4년 내내 '아이 러브 편의점(정확히 말하면 세븐일레븐)'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몸이 갑자기 나빠져 병원에 가보니 서양의학에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라고 하고, 한의학에선 '피가 안 흐른다'라고 했다. 그 이후 한 1년은 계속 편의점, 학교 매점의 냉장 음식에 의존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 빈 강의실에 앉아 매점에서 사 온 차가운 김밥을 먹는데, 도저히 차가운 김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더라. 눈물이 울컥 차오르고 더 이상 씹을 수도 없어 남은 김밥을 버렸다. 일단 '이렇게 내 몸이 맛이 가는구나-'라는 인식이 들 만큼 몸이 나빠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20대 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매일 천 원 남짓의 냉장 음식을 먹으며 지내는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고 갑자기 서러워졌다. 언제 한 번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 식사를 했는데, 인당 2~3만 원 꼴로 식사비를 냈다. 낼 수 없는 돈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내는 학생에겐 다소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아르바이트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고, 학교에서 내가 한 끼 해결하기 위해 쓰던 돈이 3000원이 안 되는데. 직장인들 소비에 쫓아가느라 시급 인생인 내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거라곤 하지만, 20대 후반의 나이에 너무나도 직업을 갖고 일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시기에, 그것도 '그 나이 때에 수행해야 하는 정해진 역할'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늦깎이 학부생으로 지내는 것은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내가 선택한 거야, 어쩔 수 없어, 견뎌'라고 되뇌어왔지만, 결국 그동안의 힘듦은 그 차가운 김밥에 쏟아져 내렸다. 그 이후로는 몇 백 원이라도 더 보태 따뜻한 주먹밥을 먹거나 차라리 라면을 먹거나. 몸에 안 좋은 건 마찬가지겠지만, 차가운 냉장 음식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티끌 같은 위안을 받았다. 하여간, 난 편의점 음식이 싫다. 그래서 지금 대만에서 또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병원 진료는 진료비+엑스레이 촬영비+약 값 해서 TWD 5800 넘게, 한국 돈으로 20 만원 가까이 나왔다. 현재 현금 가진 것이 없어 보험사에 후보상이 아닌 병원에서 직접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막상 금액을 보니 후보상으로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팔이 나을 때까지 일을 잠시 쉬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동네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해서 전에 검색하다 발견했던 음식점에 가보기로 했다. 전에도 이곳에 와봤지만, 오전 6:30~오후 2:30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아 헛걸음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점원이 영어 메뉴를 가져다주었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냉면 이래서 무슨 맛일까 궁금했는데, 위에는 깨로 만든 소스, 아래에는 간장 베이스의 소스, 위에 뿌려진 오이 고명은 일본에서 자주 먹곤 했던 '히야시 츄-카 冷やし中華'가 떠올랐다. 일본에선 간장 소스에 식초가 들어가고, 지단, 햄, 게맛살 등의 고명을 좀 더 올리고 겨자소스를 덧붙여 먹는다.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네~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잠깐만, 이름 자체도 중화면인데, 그럼 이렇게 먹는 게 원조고 일본에서 먹는 건 또 일본 현지화된 것이겠네!'란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라. 지금 찾아보니 큰 관계는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선 일본 음식으로 소개하며, 단순히 면 종류가 중화면이라서 저렇게 표현하는 듯하다. (http://jbpress.ismedia.jp/articles/-/18424)
된장국도 같이 주문해보았다. 손가락으로 찍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고기 완자가 들어간 된장국이 나왔다. 냉면도 '중'사이즈를 주문했음에도 생각보다 양이 많아 먹기에 벅찼는데, 고기 완자라니. 힘겹게 두 요리 모두 다 먹었고, 나의 배는 늘어난 위가 터져버릴 것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날 역시 나갈까 말까를 무척 고민하다가 동네에서 얌전히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는 역의 반대편으로 가보기로 했다. 도시락 체인점인 Formosa Chang이 반대편 동네에 있다고 해서 가봤다.
무얼 시켜야 하는지 모를 땐 무조건 대표 메뉴로 시키면 된다. 일단, 대만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 쌀밥이다.(편의점 음식은 제외한다)
처음 받았을 때 크기에 놀랐다. '보통'의 사이즈인데 내 주먹만 한 작은 그릇에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이걸 누구 코에 갖다 붙여!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지인은 '애피타이저 아니냐, 콧구멍으로 훅 하면 사라질 것 같다'라고 했다. 근데 의외로 배가 차긴 차더라. 내 기준으로 '살짝 덜 부른 정도', 내 위의 약 80% 정도? 소식하는 인간이니까 남들은 50% 정도밖에 안 찰 가능성이 크다. 이것의 1.5배 양으로도 파는 곱빼기(TWD 55)도 있으니 애초에 양이 많은 사람은 곱빼기로 시키거나 보통 크기를 다른 종류로 두 가지로 시키거나 하면 좋을 것 같다.
집 바로 옆에 빵집이 있다. 그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늘 빵 굽는 냄새, 버터 향 등이 진동을 해 이번엔 들어가 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 가기 전에 한국에서 모 빵집 체인점(파란 간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빵을 꽤 좋아하는 '빵순이'다.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걸로(갖고 있는 돈에 맞는 걸로) 하나 골라봤다.
일단 달았다. 옛날엔 단 빵이 좋았는데 이젠 단 건 선뜻 내키지 않는다. 먹으면서도 살찌는 기분이 들어 유쾌한 기분으로 먹질 못하고, 다 먹은 후 입 안에 뭔가 남는(?) 느낌이 드는 것이 싫다. 사람 입맛이란 변하기 마련이야.
편의점 음식이 등장할 때마다 죄책감과 짜증이 함께 몰려온다. 빨리 계산해서 이동하면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구입했는데 몇 발자국 더 가니 세븐일레븐이 나와서 후회했다. 난 기본적으로 패밀리 마트는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대만에서도.
일 끝나고 근무지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고 싶어 검색해 들어간 곳이다. 타이 음식과 운남 음식 등의 음식점이었는데, 사실 가게 앞의 메뉴에 있던 똠양꿍처럼 보이는 수프가 들어간 세트 메뉴를 먹고 싶어 들어간 것이었지만 런치메뉴라고 해서 일단 볶음 국수를 주문했다. 맛은 둘째치고 양이 너무 많아서 정말 힘겹게 먹었다. 하지만 면인 만큼 빨리 꺼지더라. 흐흑.
샌드위치는 그나마 죄책감과 짜증이 덜하다. 역시 찬 밥알에 거부감이 심한 것 같다. 그런데 삼각김밥은 또 거부감이 없다. 한자를 보니 대충 Teriyaki Chicken이라는 것 같다. 비슷한 모양의 샌드위치를 일본에서도 본 것 같다.
이케아에 들러 주문한 국민 선반을 수령했다. 점심 겸 저녁으로 전에 먹었던 지파이를 먹으려고 가게에 들러 똑같이 주문했는데 이번엔 다른 게 등장.
이게 먹기 편하긴 하지만 난 안 잘린 그 큰 치킨이 먹고 싶었어. 바로 튀겨 주다 보니 무척 바삭거렸다. 대신 매우 뜨거워 입천장을 데고 말았지.
나중에 전에 사용했던 주문지를 보니 다른 걸 주문했구나...(이름 수정 완료)
저 치킨으론 뭔가 부족해 빵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이 빵집 올 때마다 가진 현금이 늘 적다. 35원인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날도 가진 돈에 맞춰서 골라야 했다.
뭔지도 모르고 고른 빵. 소시지와 풀때기(?)가 조금 들어가 있고, 콩고물 같은 가루가 양 옆에도 그리고 빵 안에도 가득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이 콩고물이 계속 떨어진다. 먹기가 불편해서 또 사 먹을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한 번으로 족하다.
드디어 대만 아침 식사다운 음식을 아침 식사로!!!
버스 타면 8~10분 거리인 이날의 근무지는 버스 시간 때문에 꽤 일찍 나서는데, 이날도 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문제였다.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할 곳을 찾다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발견.
일단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었으나 말이 안 통하니 메뉴를 사진으로 찍어 손가락으로 알려주었다. '바삭하게 구운 빵에 계란을 넣은 것'이라고 한다. 딴삥(蛋餅)은 아닌 것 같고 샤오빙딴이란다.
다른 사람들은 군만두 같은 것도 먹고, 무슨 음료수도 같이 해서 먹더라. 또우장(豆漿)이라고 하는 두유란다. 확실히 목이 맥힌다. 딸랑 빵 하나가 배가 찰까- 했는데, 소식+아침 식사=배 터짐.
매니저님께서 이런 날씨엔 따뜻한 거 먹고 싶어 진다며 함께 가자고 데려가 주신 1인 훠궈 집. 일단 가격이 싸다. 그리고 밥, 음료수, 디저트(아이스크림)가 포함된 가격이라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 난 최근에 종일 고기만 먹고, 마침 채소를 왕창 먹고 싶었던 차라 채소만 있는 훠궈를 주문했다. 좌석마다 가스가 놓여있어 각자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해 먹으면 된다.
특별하게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맛이니, 나 역시 추운 날엔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 관광으로 오신 분들은 모처럼 비싼 돈 주고 비행기 타고 온 것이니 기왕이면 뛰어난 맛의 훠궈 집에 가셔도 될 듯.
길을 가다 보면 의외로 1인 훠궈를 대만돈 100원 대에 제공하고 있는 가게들이 꽤 보인다. 忠孝敦化역 근처에서도 본 적 있다.
관광객의 입장에선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가게가 아닌, 현지인들이 가는 가게를 체험해보고 싶다고는 하지만, 종종 '일상', '평범함'은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의 '특별함'을 기대하는 마음 앞에서 '기대 이하'로 후려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 지냈던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재래시장인 '원당 시장' 안에는 '고로케'로 유명한 집이 있다. 개당 천 원 정도에 다양한 맛의 고로케를 팔았는데, 싼 가격에 맛있고, 손에 기름도 많이 묻지 않아 학생들과 주민들에겐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인 가게였다. 그러다 이 가게가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외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먹어보고 '생각보다 평범하다', '기대 이하다', '찾아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다'등의 평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 기대치와 입맛이 다르니 있을 수 있는 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 가게를 애용하던 주민으로서는 조금 속상했다. 이 가게가 주민들에게 인기였던 이유는 '싼 가격에 간식거리로 먹기 딱 좋고(특히 학생들. 근처에 학교가 여러 개 있다), 맛도 있음'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차비를 들여와야만 하는 외지인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막상 '후려치기' 당하니 속상한 마음이 더 앞서 따지고 싶어지기도 했다.
현재 그 고로케 집은 서울의 망원시장에도 분점을 열어, 각종 맛집 정보 프로그램에 나오더니 얼마 전 '수요미식회'에도 등장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림치즈 고로케'를 가장 좋아한다. 일부러 찾아가진 말고, 근처에 가실 일 있는 분들은 한 번쯤은 들러서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이날은 시간 여유가 있어 집에서 101 타워까지 걸어서 가봤다. 늘 버스로 순식간에 지나가던 길을 걸어서 가니 야시장만큼이나 북적이는 근처 아침 시장,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가게들 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101 타워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을 보았다. 로마 교황청, 디즈니랜드를 연상케 하는(한국이라면 소풍 시즌의 개장 전 롯데월드?) 인파였는데, 이날 그 앞을 걸으며 지나가 보니 101 타워가 아닌 그 옆 건물에서 국제 게임쇼가 진행 중이었다. 역시 걷는 만큼 보인다.
중간에 몇 번이고 아침을 사 먹을까 했지만 결국 중반부부터는 아침 식사 파는 가게가 보지 않아 결국 근무지 근처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좀 독특하게 빵을 구웠다? 싶었는데,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며 보니 따뜻하게 데워먹으라네. 어쩐지 빵이 질기더라.
아침 식사를 부실하게 했더니 일 끝나고 배가 고프다. 가려던 음식점은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마라 우육면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어 가보았다.
국부기념관 역 근처는 최근 서울에서도 인기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연남동이 연상되는 깔끔하고 모던한 모습이 인상적인 동네였다. 이 가게의 마라 우육면은 가격이 꽤 높았지만,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길래 큰 맘먹고 '마라 우육면'으로 주문했다. 유부(튀긴 두부피) 같은 식감이 나는 것도 들어있었고, 차돌박이 같은 부위도 있었고, 선지도 들어있었다. 나는 평생 선지를 먹어본 적도 먹어보려고 했던 적도 없었는데, 이날 처음 먹어보았다. 못 먹을 맛과 식감은 아니지만 내 취향은 아니더라.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겠지만 음식 안에 들어있다면 빼고 먹을 것 같진 않다.
마라 우육면은 맵다고는 하지만 매운 음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크게 맵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 너 정말 한국인 맞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정도로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한국인들이 참 좋아한다는 청양고추는 아예 못 먹는다. 청양고추 들어간 음식은 바로 혀와 배에서 난리가 난다) 그럭저럭 매운맛이 느껴진다 정도였다. 다만 익숙한 매운맛이 아니라 칼칼함이 강한 매운맛이었다. 면발은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쫄깃쫄깃 오동통통 '너@리'의 면과 닮았다. 양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부를 정도로 다 들어갔다. 아무래도 식사량이 늘어난 것 같다. 군만두가 인기라고 하는데 군만두까지 먹을 정도로 늘어나진 않았다. 보통 식사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둘이서 우육면 한 그릇씩 시키고 군만두는 함께 먹어도 될 것 같다.
참고로 10%의 요금(아마 부가세)이 별도로 붙는다.
돌아오는 길에 이케아에 들렀다. 이날은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집-101 타워-국부기념관-타이베이 아레나 근처의 이케아. 이케아에서 집으로 돌아올 땐 늘 버스를 탄다. 역을 이용하면 한 번 갈아타야 하지만 버스는 집 바로 근처 정류장까지 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버스가 이 빵집 근처에서 내려준다는 것. 다음 날이 휴일이라 아침 식사 대용이 필요해 빵집으로 들어갔다.
한국에도 비슷한 빵이 있는데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 밤식빵은 아니지만 밤식빵이랑 대충 비슷한 빵이다.
1)
팔에 이상이 생겨 삼일 동안의 휴일을 받았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렸고, 잘 넘어지는 나는 아니나 다를까 비에 넘어져 두 무릎은 오색빛깔로 멍이 들었다. 그리고 화요일, 거짓말처럼 개었다. 쉬라고 배려해주신 만큼, 어디에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해 식사도 산책도 모두 동네에서 해결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받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버블티를 마시기 위해 집 앞의 공원의 벤치에 잠시 앉았다.
비 개인 낮의 맑은 공기, 따뜻한 햇살, 선선한 바람, 평화로움. '이 맛에 국제 백수 하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만에 오기 직전에 한국에서 두 달 반 동안 머물렀다. 일도 안 하고, 누군가 불러내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일정이 없는 날은 아예 춥다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시간의 여유 따윈 느끼지 못했는데, 대반에 온 지 이제 일주일, 가슴속에 스며드는 온전한 평화가 심장을 살짝 쥐었다 놓는 듯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쫄깃함'인가.
2)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 집은 한국에서부터 이미 구해서 입국한 날부터 지내고 있고, 아르바이트 역시 한국에서 이력서를 미리 보내 입국 다음 날 면접, 바로 일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는 느낌이다. 비행기로 비유하자면, 아주 안정되게 착륙해, 완전한 정착을 위해 게이트까지 천천히 가고 있는 느낌.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에게 발생한 것 같다. 이 일주일이 마치 '한 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칭 타칭 '프로 워홀러'인 만큼 정착에 드는 시간이 무척 짧아 순식간에 일상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빠른 안정과 덤덤함은 나의 시간도 주변 사람들의 시간도 모두 그 속도를 왜곡시켰다.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 자신은 자꾸 '해야 하는데'에 쫓기고 있다. '하고 싶었던 것 많았잖아, 중국어 공부도 해야 하는데, 카페 투어도 해야 하는데, 여행도 해야 하는데! 언제 할 거야! 너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잖아!!' '제발 그만해. 이제 일주일밖에 안 지났다고! 이제 일주일인데 하긴 뭘 해!!!! 제발 하나씩 천천히 시작하자고. 왜 이렇게 조급해? 제발!', 이 두 가지 마음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한 달처럼 느껴지니, 나 자신조차도 이미 한 달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낸 것처럼 착각하고 만다.
이 비행기는 착륙은 했지만 아직 게이트에 도착하지 않았다. 천천히, 준비가 되었을 때, '아 지금이다'라는 느낌이 오는 순간- 본격적인 대만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까진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지.
3)
'일주일이 한 달 같다'에서 오는 문제는 저것뿐만이 아니다. 혼자 지낸 일주일이 혼자 한 달을 지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건만, 일주일 동안 거진 혼자 지낸 게 처음도 아닌데, 마치 한 달을 혼자 말도 없이 지낸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수다 떨 사람은 생길까, 설마 이대로 계속 혼자 지내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학교를 다녀야 하나 등등 별별 걱정이 다 든다. 아, 제발, 이제 일주일 지난 것뿐이라고!!
모든 대화가 휴대폰 안에서 글자로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말 말고 눈이 보이지 않는 말로 대화하고 싶다. 보고 쓰는 대화 말고 듣고 말하는 대화가 하고 싶다.
4)
세제와 샴푸, 그 밖의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대만은 생필품의 물가가 싼 나라가 아니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한국과 환율 대비로 본다면 싸게 '느껴질' 순 있다. 어느 곳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매번 임금 받으며 살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는 입장에선 대만이 싸다는 생각보단 오히려 '무척 비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내 기준은 늘 '이 돈을 쓰려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가'인데, 일주일 동안의 체감 물가로는 대만은 임금은 싸지만 임금에 비해 물가는 꽤 높은 편이라는 것.
사족으로 말하자면 '나의 임금 대비 체감 물가'가 가장 싼 곳은 호주였다. 최저 임금으로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4잔 마시고도 돈이 남는 곳이다.(멜버른이 호주 안에서 커피 값이 싼 편이다. 경쟁이 무척 심학 때문이다.) 집세는 확실히 비싸다고 들었다. 룸 셰어도 모자라 거실 셰어가 등장하더니, 침대라도 깔린 거실 셰어는 양반이라더라, 베란다 셰어에 옷장 셰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그건 시내 중심가인 '시티'의 경우고, 시티에서 벗어나 ZONE이라는 이름에 숫자가 붙는 동네로 가면 사정은 꽤 많이 달라진다.
함께 일했던 일본인의 경우, '오두막 해변가'로 유명한 브라이튼 비치 바로 근처에 살았는데, 한 집에 8명이 셰어 하고, 각자 독방 사용, 집 안에 수영장까지 있던 곳이 주 180 호주달러였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약 150,000~155,000원 정도, 한 달에 약 65~70만 원 정도. '셰어하우스'라는 거주형태는 장단점이 있으니 일단 제쳐두고, 주 180달러라는 돈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으며 일한다고 치면 10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이다. 주 40시간 일한다고 쳐도, 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브라이튼 비치보다는 좀 더 시티에 가까운 ZONE 1 지역의 단층 가정집에서 5명이서 독방으로 셰어 했고, 방세는 주 165달러였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는 시급을 받았고, 보통 주 40~50시간 정도 일했다. 이주 동안 일해 모은 돈의 일부로 550달러 주고 아이폰5s를 중고로 구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엔 타즈매니아의 호바트로 여행을 다녀왔다.(3박 4일, 총 경비 약 600달러)
영어를 잘 해서 좋은 시급의 일을 찾는다면 같은 시간을 일해도 금전적으로 더 여유가 생길 테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개인 생활을 더 즐길 수 있다. 여유롭게 카페에 다니며 맛있는 커피와 브런치, 디저트 등을 즐기고, 여행을 다니기에 충분할 정도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 최저 임금도 못 받고 일했던 나조차도 5개월 동안 이 동네 저 동네 커피투어, 버거 투어, 팬케이크 투어를 했을 정도다. 매번 한국 돈으로 계산하고 '히익'하고 놀랐다가 임금 대비로 계산하면 지갑이 절로 열린다.(호주 안에서도 꽤 많이 다르니)'멜버른'이 물가가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워홀러로서 살아가면서 물가가 비싸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부양가족도 없고, 학비도 안 들었다.(학비는 비싸다) 임금이 비싼 만큼 체감 물가는 '모든 게 싸다'일 수밖에 없다.
일본도 물가가 비싸지 않은 나라였다. 관광객으로서 간다면 '환율'이 있고, 매번 교통비에 손을 떨게 되지만, 정작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교통비와 집세 등 부동산 관련을 제외하고는 다!! 한국보다 싸다고 말할 정도다. 게다가 교통비의 경우 직장인의 경우엔 정기권을 구매하면 30%, 학생인 경우네 70%까지 할인이 되고 정기권으로 설정된 구간 안에선 환승이 자유롭다.
생활 물가로는 최근에 소비세가 5%에서 8%로 올랐고, 그에 따른 임금 상승, 물가 상승이 있긴 하지만 소비세를 제외하고서도 전체적인 물가는 10년 전 내가 막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보다 확실히 비싸졌다. 10년 전 물가랑 비교해서 비싸지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한국처럼 그렇게 매달 오르지 않는다. 내가 지냈던 4년 동안 물가 상승률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몸으로 느껴질 만큼 가격이 올랐구나~ 싶었던 건 계란 정도?
일본으로 건너갔던 2007년 당시, 100엔 당 700원 중후 반대의 환율이었을 시기에, 2009년 정도까지 슈퍼에서 계란 M사이즈 한 팩(12개)을 100엔 안 되게 구입했다. 당시에 할 줄 아는 음식이 계란 프라이와 라면밖에 없었기 때문에 계란 물가만큼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2009년부턴 110~120엔 근처까지 슬쩍 오르더니 최근엔 평범한 물가 상승+소비세 증가로 조금 더 오른 듯했다. 물론 좋고 비싼 계란은 늘 비싸다. 돈 없는 유학생은 그저 가장 싸고 가장 많은 것을 선택할 뿐.
독일은 생필품과 장바구니 물가가 정말 싼 나라다. 처음 가서 베를린에서 지낼 때, 가져온 돈은 가능한 쓰고 싶지 않아서 식사에서 돈을 많이 아꼈다. 며칠 동안은 아침 겸 점심으로 1,69유로의 샐러드(양이 꽤 된다)와 0.29유로의 요거트(한국의 '비요뜨'처럼 요거트에 시리얼이 들어있는)를 먹고 저녁에 근처 버거킹에 가서 0,99유로 버거나 1,20유로의 버거를 먹곤 했다. 배가 부르는 양은 아니었고, 덕분에 그 열흘 동안 살이 좀 빠지긴 했다. 아요나 치약은 0,99유로(현재는 1,15인가 1,19인가 올랐음), 카밀 핸드크림도 1유로 정도, 내가 쓰던 Garnier의 Wahre Schätze 시리즈(파라벤과 실리콘, 디메티콘이 들어있지 않다)는 250ml에 3유로가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검색해보니 1,35유로란다. 1000ml 5.4유로, 한국돈으로 약 7,000원. 2016년 최저 임금인 8.5유로에 미치지도 않는 금액이다.
그래서 이번에 대만 슈퍼에서 샴푸를 사는데 참 가슴이 아팠다. 750~1000ml의 양은 TWD 200 중후반~300 초반의 가격대였다. 내가 고른 샴푸는 역시 화학 물질이 없는 샴푸로 1000ml에 TWD 599인 것을 마침 반값 할인해서 TWD 299. 그나마 싸게 산 거지만 한국 돈으로 약 11,000원. 대만에선 샴푸 하나를 사기 위해서 도대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 것인가. 두 시간으로도 모자란다. 독일-대만의 순서라 특히나 더 물가가 아프게 다가온다.(이 샴푸는 한 번 써보고 괜찮으면 세일 중일 때 몇 개 더 구입해놓을까 한다. 화학물질 없는 샴푸는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은 임금이 비싼 편도 아니었다. 물론 한국, 대만가 비교하면 비싸지만 일본과는 비슷비슷한 편. 옆 나라 프랑스나 스위스 등에 비하면 법정 최저 시급 혹은 서비스업으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낮은 편이었다.(대신 여긴 팁 수입이 좋았다! 내가 일하던 일본 음식점은 그날 그날의 팁을 일한 시간으로 나누어 받았는데, 주 35~40시간 일할 때 기준으로 한 달에 보통 200유로 조금 안 되게 받았다.) 대신 무자비한 세금이 있다. 매월 450유로+@를 기준으로, +@에 대해선 40%에 가까운 세금을 공제한다. 1300유로를 벌어도 손에 들어오는 건 1000유로가 안 된다. 우스갯소리로 일했던 회사 안에서 누군가가 '세전 급여가 2000유로 후반이었는데, 명세서를 보니 천의 자리 숫자만 달랐다'라는 이야기가 떠돌았을 정도. 독일은 다 싼데 세금이 비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에 쓴 이야기는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다. 오직 '내가 느끼기에'에 의존한 이야기이며,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개인에 따라 보고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다 다르고, 나 역시 일본을 제외하곤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4년이나 살았다는 일본도 떠난 지 5년 반이 넘어 아주 낡은 정보들이다.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얘가 여기저기 살았는데 자기 살았던 얘기 하는 거'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고 걸러서 봐 주시길.
5)
어머,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4번은 지워버리려다 아까워서(?) 남겨둔다. 나와 나의 글의 정체성이고,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현실의 시간과 내가 느끼는 시간의 차이 덕분에 내내 혼란스러웠던 일주일이었다.
저번 1호는 하루에 몰아서 썼고, 이번 2호는 일주일 내내 틈틈이 써봤다.(그래서 길어졌다) 여러 방식으로 해보고 가장 내가 원하는 결과물+지속 가능성+편리성 등등을 고려해서 내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야겠다. 이번 건 너무 길다.
6)
아, 1월 22일 일요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쿠터'를 타봤다. 운전은 아니고 뒷자리에 탄 것이지만. 헬멧도 처음 써보고. 집주인 '치'가 집 주변의 편의 시설을 소개해주면서 여기저기 데려다주었고, 처음엔 많이 긴장했지만 회수를 거듭할수록 나도 (뒷좌석에) 타는 요령이 생겼다. '치'는 면허가 없는 내게 스쿠터 면허를 따라고 한다. 3월에 미국으로 아예 떠나버리는 '치'는 자신의 스쿠터를 내게 넘겨주겠다며 얼굴 볼 때마다 스쿠터 면허 이야기를 한다. 이 날도 '스쿠터는 타이완 사람들의 삶'이라며 기승전'스쿠터 면허'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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