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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May 17. 2017

週刊 <워킹홀리데이@타이베이> 제9호

2017년 3월 6일부터 3월 12일까지의 일주일.

週刊 <워킹홀리데이@타이베이> 제9호

이 포스팅만큼은 맨 아래의 코멘트는 당시에 미리 적어둔 포스팅이라 다소 시간차가 있습니다. 6월 초에 친구가 대만에 놀러 오기 때문에 가능한 그때까지 밀린 포스팅을 끝내고 싶은데 과연...!!



2017.03.06 월

샌드위치 푸드트럭, 台北 國父紀念館

火腿蛋三明治 NTD 35


얼마 전에 국부기념관 역 근처에 생긴 케이크 전문점 Lady M 앞에서 장사하던 샌드위치 집. 주차장 쪽에 주차하고 영업하는 푸드트럭이었는데 레이디 엠이 생긴 이후로는 오전에 레이디엠의 배송 차량이 그 자리를 차지해 종종 안 보이곤 했다.

보통 35원 정도였고, 메뉴 하나가 가격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싱싱한 야채가 꽤 들어가 상큼하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가끔 이용한다. 火腿蛋三明治은 햄(火腿) 에그(蛋) 샌드위치(三明治).


2017.03.06 월

5味臭臭鍋, 台北 延吉

蔬菜鍋 NTD 110


날씨가 쌀쌀한 날은 1인 훠궈가 당긴다. 대만에서 주로 먹고 있는 음식들은 국물 요리가 많다. 일본 음식처럼 소금탕은 아니고 육수도 간이 무척 연해 국물 요리를 즐겨 먹는다. 대만을 떠나면 그리워하게 될 베스트 3의 음식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리움은 추억과 비례한다. 대만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며 종종 먹었던 1인 훠궈는 내가 앞으로 어디서 지내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그리워질 것 같다. 아직 3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4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나머지 시간들도 훌쩍 지나가버릴 것만 같다.

이날은 채소 훠궈를 먹었다. 고기와 새우의 유혹도 강했지만 토마토가 더욱 당겼나 보다.


2017.03.06 월

世運食品, 台北 延吉

小巴黎 NTD 38


매번 지나가면서 눈에 띄던 가게였다. 빵가게인 듯싶어 들어가 보았다. 마늘바게트를 판매하길래 구입해봤다. 

한국에서 파란색 간판의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할 때 바게트 참 열심히 썰었다. 덕분에 손가락에 굳은 살도 생기고. 이것이 써는 것이 쉽지 않은데 손님들은 무척 쉽게 생각하는 듯했다. 긴 바게트는 균등한 너비로 25조각 정도로 잘랐는데, 즉 24번의 칼질이 필요했고, 투명 봉투 안에 깔끔하게 나란히 담아야 했고, 그만큼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것을 손님들은 늘 재촉했다. 처음 바게트를 썰던 날 처음 바게트를 썰게 되었을 때 손님에게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냐, 빨리 달라.'는 재촉과 '왜 이렇게 못 잘랐냐'는 질타를 동시에 한 손님에게 받은 적이 있다. 힘을 넣는 요령도 없어 썰리지도 않아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썰었다. 내가 이날 처음 일하는 걸 손님이 알 길은 없고 손님이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물론 속으로 '집에 가져가서 직접 썰면 될 텐데(순화된 표현)'라는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일했던 가게는 바게트는 당일 생산분만 판매했는데, 낮 타임에 막 나온 바게트는 너무나도 뜨거워서 목장갑을 끼고 자르는데 이게 또 너무 부드러워서 잘 안 잘리고, 저녁 타임에 일할 때는 종종 겉 표면이 굳어 날카로워져 일반 비닐장갑을 꼈을 때 빵에 찔리는(?!) 일도 생기곤 했다. 바게트 자르는 고충은 정말 빵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빵순이들은 공감할 일이다. 

종종 판매하고 남은 바게트들을 집에 가져가곤 했는데 나는 파란 간판의 프랜차이즈 빵집의 마늘 바게트에 치즈 넣은 바게트를 제일 좋아했다. 아닌가? 단맛과 짠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빵만 바게트를 사용한 한국식 빵이었다. 파란 간판 빵집 메뉴 중에서도 내 돈 주고 사 먹곤 했던 것은 단팥 크림 코팡, 소보루빵, 마늘 토스트, 크림치즈 찹쌀도넛, 샐러드 빵, 또 하나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조그만 도넛에 케첩이랑 머스터드 뿌린 거였는데. 써놓고 보니 달고 짠 걸 좋아하는구나. 사실 내가 빵을 좋아하는지 나도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빵 참 열심히 먹었다. 정통 유럽식 빵도 좋아하고 유럽빵이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화된 일본식 빵도 좋아하고 한국인들이 일본에 가서 배워와 다시 한국 현지화가 된 한국식 빵도 좋아하고.(독일빵은 안 좋아한다)

아무튼. 저 작은 바게트 하나에 대만돈 38원이다. 확실히 빵은 한국에 비하면 많이 싸다. 小巴黎는 빵 이름은 아니고 말 그대로 Little Paris란 이름. 바게트는 法國麵包(뜻 : 프랑스 빵)라고 쓴다. 


2017.03.07 화

自助餐,快餐, 台北 後山埤

排骨 NTD 85


늘 가는 쯔주찬이지만 메뉴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뭔지 모르면 안 먹으면 될 것을 그놈의 호기심과 행동력 때문에 뭔지 몰라도 일단 주문한다. 이번엔 실패했다. 흐흑.


부추꽃볶음 蒼蠅頭 270

2017.03.07 화

KiKi 餐廳, 新北 板橋 (誠品新板店)


드디어 가봤다, 키키 레스토랑. 일하는 곳 매니저님의 지인분들이 한국에서 오셔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도 초대해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신베이시의 중심 구역이자 한국인들에겐 '임가화원'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내겐 4년 전 여행에서 '이타바시'라고 읽혔던 '반챠오板橋'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키키 레스토랑을 선호하고 필수 코스로 넣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차였다.

닭고기산초무침(냉채) 口水雞(冷盤) 360

사실 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이 가는 곳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가게들도 많은데 왜 굳이 꼭 그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의문이었다. 가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일단 '꽃보다 할배'나 '배틀 트립' 등 여행 예능 방송에 나왔던 곳들이 중심이다. 유명한 대만 여행 카페 커뮤니티를 봐도 다들 너무나도 획일적이다. 키키 레스토랑, 단수이의 대왕 카스텔라와 대왕 오징어 튀김, 시먼의 대왕연어초밥의 삼미식당, 이연복 셰프도 갔다는 푸항또우장, 아종면선 곱창 국수, 진천미, 호호미 소보루, 딘타이펑, 까오지, 상인수산, 스린 야시장에서는 핫스타 지파이, 왕자치즈감자, 큐브 스테이크 등등.

말린갓돼지고기찜 梅干扣肉 380

다른 음식들도 많은데 왜 다들 같은 가게에 가서 같은 음식만 먹지? 정말 큰 의문이었다. 하지만 대만에서 생활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카페에서 눈팅을 하며 알게 된 것은 '냄새' 혹은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라는 것.(왜 쓰면서도 예전에 같은 이야기를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매운 돼지 갈비 麻辣子排 480

향신료, 고수, 대만향 등등 대만에서 거의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단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은 냄새에 민감하고 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맛이라는 것이 공통점이었던 것이다. 키키 레스토랑도 그중 하나다.

파인애플 크림새우 鳳梨蝦球 420

왜 인기인가 했는데, 일단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천 음식점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맵다. 밥이 술술 넘어간다는 '부추 꽃볶음'은 나는 한 입도 제대로 못 먹고 매워서 손 놓았다. 하지만 같이 먹었던 한국인들 중에서 나만 매워하며 못 먹었으니 한국인 입맛에는 잘 맞는 것 같다.


계란두부튀김 老皮嫩肉 230

한국인들에게 계란 두부튀김, 파인애플 크림새우, 부추꽃볶음, 사진엔 없지만 탄탄면 등이 매우 인기라고 한다. 계란 두부튀김이나 파인애플 크림새우는 100원 술집이라 불리는 러차오들에 가도 비슷한 맛을 먹을 수 있기에 굳이 키키에서 접시당 한국 돈 만 원~ 만 오천 원은 하는 비싼 돈을 주고 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강낭콩줄기볶음 干扁四季豆 240

매운 도미찜은 모 브랜드 치킨의 간장 치킨 맛이 연상되는 소스가 맛있었다. 국물에 비벼 먹고 싶어 지는 맛이다. 사실 밥이 술술 넘어간다는 말은 요리 자체가 간이 세고 맛이 자극적이어서 밥으로 중화시킨다는 말과도 같다.

매운도미찜 紅椒燒魚 520

참고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진천미'는 보급형 키키 레스토랑으로 알려져 있다.


키키 레스토랑 홈페이지

https://www.kiki1991.com/main/tw/


2017.03.08 수

北芳園精緻牛肉麵, 台北車站

蕃茄牛肉麵 NTD 160


메인 역과 그 근처는 먹을 것이 많은 듯 없는 듯한 곳이다. 얼마 전 네이버 카페에 메인 역 푸드코트 안의 토마토 우육면 글이 올라와 방문해봤다.

메인 역의 2층은 전체가 푸드코트인데, 일식집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고, 우육면 집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이곳은 우육면 집이 모여있는 곳에 위치해있다.

영어 메뉴를 건네받았고, 점원 아저씨가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음식을 받을 때엔 이것을 더해 먹으라며 무료 토핑을 추천도 해주셨고, 식사가 끝나고 빈 그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자 그냥 두고 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이날 처음 안 건데 대만에선 우육면을 먹을 때 일본에서 高菜라고 부르는 갓 무침? 절임?을 함께 넣어 먹기도 한다. 모든 가게에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종종 테이블이나 배식대에 함께 두는 가게들이 있다.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푸드코트에 있다고 무시할 것이 아니란 걸 새삼 느꼈다. 오히려 백화점, 메인 역 등에 입점해있는 가게들은 꽤 수준이 높게 느껴진다. 본점은 시정부 쪽에 있는 것 같았다. 다음엔 시정부 쪽의 본점으로 가볼 생각이다.


2017.03.09 목

四海豆浆大王, 台北 中山

小籠包 4個 NTD 30, 蛋餠 NTD25, 豆漿 NTD 16


드디어 와봤다, 사해 또우장. 네이버 카페에서 '메인 역 근처 아침 식사 집'으로 엄청 많이 본 곳이다. 물론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나도 무척 팬인 이연복 셰프가 추천하시는 '푸항 또우장'이긴 하지만,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서 아침을 먹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 가깝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게 최고다.

소롱포는 보통 사이즈와 하프 사이즈가 있어 나는 하프 사이즈로. 딴삥도 함께 주문했다. 외국어 메뉴도 있고 점원들도 외국인 손님에 익숙해 주문해 먹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소롱포 4개의 하프사이즈. 8개의 일반 사이즈도 60원밖에 안 한다. 엄청 싸다. 대만에선 아침 식사로 기름에 튀긴 긴 빵인 요우티아오 油條를 또우장에 적셔(?) 먹는다는데 '기름에 튀긴 것을 마시는 액체에 넣는 행위'가 아직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시도해본 적은 없다. 여담이지만 명나라 시절 요우티아오가 스페인으로 넘어가 츄로스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날의 나의 메뉴는 소롱포와 딴삥. 소롱포는 피가 미끈미끈했다. 꽤 맛있게 먹었다. 지나친 기름으로 느끼하지도 않았고. 

아마 처음 먹어 본 딴삥이었을 거다. 이후 여러 가게에서 딴삥을 주문해 먹으면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결과, 만드는 법은 1) 계란을 철판 위에서 흰자 노른자를 섞어 조리하고 2) 옆에선 묽은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고 얄~ㅂ게 굽다가 3) 계란을 이 전병 피 위에 올려서 4) 여러 번 뒤집고 5) 그 위에 주문한 재료들을 넣고 돌돌 말아 6) 썰어서 접시에 올린다. 주로 그 위에는 달콤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의 소스를 뿌려 먹는다.  


2017.03.09 목

珍好鍋貼, 台北 後山埤

鍋貼 개당 NTD 5


이 포스팅의 주제는 이 만두다. 이 만두야. 오직 이 만두야!!!!!!!!!


동네에 있는 만두 맛집이다. 이젠 '맛집'이라는 단어를 '그럭저럭 맛있는 음식점'들에도 붙이는 상당히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어쩌면 '음식점'이란 이름의 동의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집만큼은 정말 '맛집'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다.


관광객들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다. 관광지도 아니며, 동네의 맛집에 불과하다. 예전에도 쓴 적 있지만, 동네 맛집을 시간을 투자해 찾아가는 것은 투자한 시간 때문에 만족감을 느끼는 최소한의 기준이 높아지고, 때문에 '그럴만한 맛은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기 일쑤다. 난 그것을 원치 않다. 이곳은 내게 울 동네 넘버원 맛집이고 후려치기 당하는 것이 싫다. 그러니까 이런 곳이 있구나-로만 알고 가지 마세요. 맛은 자신 있지만 사람 입맛은 다 다르고 내 입맛은 한국의 표준 입맛과는 꽤나 거리가 먼 것 같으니까.


이 만두를 먹는 순간 엄마가 생각났다. 울 어머니 만두 정말 좋아하시는데. 매 끼니를 만두를 드시라고 하면 기꺼이 그리 하실 분이다. 외할아버지가 이북 출신이셔서 어릴 때부터 만두와 밀접한 삶을 살아온, 만두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실 엄마. 어릴 때부터 간식으로 군만두, 찐만두 등 다양한 만두가 등장 한터라 우리 삼 남매도 만두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대만에 있는 동안 엄마가 대만에 오신다면 모시고 가고 싶은 집이다. 엄마에게 꼭 맛보게 해드리고 싶다. 엄마가 묵는 숙소로 내가 가져가도 되고. 근데 엄마가 안 오실 것 같다. 오게 되면 아빠와 오든가 남동생과 오든가 해야 하는데, 아빠랑 오기는 힘들고 남동생과는 3월 말에 스위스로 효도 여행이 예정되어 있고 몇 해 전 이미 남동생과 함께 대만에 여행 왔었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올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2017.03.10 금

辰美自助餐, 台北 後山埤


늘 가는 쯔주찬 집에 늦게 갔더니 오이 반찬이 없어 역 근처의 다른 집으로 가봤다. 반찬은 좀 더 다양했지만 늘 가던 곳과는 시스템이 달랐다. 국은 따로 요금을 내야 하는 것 같았다. 늘 줄이 길게 서 있고 반찬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가끔은 이곳에 가볼까 생각 중. 가격은 기억이 안 난다.


2017.03.10 금

肯德基(KFC), 台北車站


이 날은 503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날이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 우리도 치킨 먹자고 급 모임을 가졌다.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천천히 치킨을 먹으며 무한 수다를 떨었다. 후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매니저님은 내가 들어온 이후로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내가 복을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과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척 고마운 말이었다.


2017.03.11 토

老鍾國精緻雲吞料理, 台北 信義

蝦仁蛋炒飯 NTD 90


인간적으로 먹던 걸 찍고 싶지는 않아서 아침에 먹은 국부기념관 근처의 샌드위치는 생략.


근무지 근처에 있는 밥집이고 이미 여러 번 들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나는 먹고 가겠다고 했는데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테이크아웃으로 주더라. 그래서 '아.. 여기 여기'라고 했더니 대뜸 네가 가져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는 못 알아듣겠지만 해외 생활 수년으로 눈치로 내용은 알 것 같았다. 테이크아웃으로 받아서 공원에서 먹으려니 너무 기분이 나빠 밥을 보기도 싫어져 먹지 않았다. 101 타워 근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손님도 많이 올 테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텐데 말이다. 행여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다고 해도 가게에서 테이크아웃을 그대로 먹고 가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정색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가지 않는다. 참고로 이날의 새우 볶음밥은 그 다음날 아침에 먹었는데, 그때부터 2~3일 동안 아침마다 전철에서 배탈이 나서 출근할 때마다 배가 아파서 출근이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해야만 했다. 두 달 동안의 무지각 기록이 깨졌다.


2017.03.11 토

珍好鍋貼, 台北 後山埤

鍋貼 개당 NTD 5


보기도 싫은 새우 볶음밥을 집에 두고 찾아간 곳은 이틀 전에 방문했던 만두집. 평일의 저녁 시간 전에 방문했을 땐 몰랐는데 주말의 저녁 시간대에 방문하니 가게 안팎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특히 가족단위로 와서 여러 개의 접시에 만두를 쌓아놓고 아이들과 함께 만두를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게 앞은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역시 다들 맛있는 음식 알아보는 입맛은 비슷하구먼. 이 동네의 아이들은 이렇게 어렸을 때 가족들과 만두를 먹으러 왔다는 기억을 갖고 성장하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도 아이가 셋이다 보니 어릴 때 외식은 대부분 집 근처였다. 다니던 중학교 앞에 위치한 십 년 이상 다닌 본전 갈비, 지금은 없어졌지만 광명 시청으로 올라가는 모세로 삼거리의 옛날 칼국수(이 집 김치가 진짜 맛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동생이 제일 좋아했던 황소 숯불 곰장어 구이집, 내가 좋아했던 애기능 가는 길의 추어탕 등등. 황소 같은 경우엔 남동생이 거의 오픈했을 시절부터 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소문이 나 외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집이 되었다고 들었다. 

어릴 때 온 가족이 외식하러 다녔던 가게들은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대만 오기 전에 다시 집이 이 근처로 이사를 가, 몇 해 만에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 갔었다. '국민학생' 시절부터 다녔던 책방이나 유치원 때부터 있었던 상가 안의 상점들 등이 아직도 있는 걸 보면 반갑고 없어졌으면 서운하더라.(저번에 갔더니 어릴 땐 크게 느껴졌던 상가가 그렇게 작고 좁은 곳인지 몰랐다) 나와 여동생은 타지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사 왔지만, 남동생은 태어나기 직전에 이사와 계속 한 집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군대에 간 거라 더욱 우리가 살던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클 것 같다. 

요즘은 광명도 이케아니 코스트코니 하는 것들이 들어서면서 복잡해진 것 같다. KTX 광명역 공사할 때 광명-안양으로 통학하면서 그 일대가 밭에서 역으로 변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봤었는데 벌써 그것조차도 십몇 년 전 일이니, 참 오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도로가 공사 위주로 형성되면서 말도 안 되는 곡선 도로들이 생겼다. 게다가 난폭 운전으로 유명했던 3번 버스를 타면 종종 오금이 저려오는 경험도 했는데, 맨 뒤의 가운데 자리에 가방을 껴안고 앉아있다가 급커브 구간에서 앞으로 그대로 꼬꾸라진 적도 있었다. 두 번이나.(나는 송파구 잠실에서 태어나 유치원 때 광명으로 이사, 초, 중학교를 광명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안양으로 진학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줄곳 광명에서 산 반쪽 광명 토박이다)


취두부 꼬치 臭豆腐串

2017.03.12 일

淡水 無極天元宮


이날은 근무가 끝나고 단수이 쪽으로 벚꽃이 예쁜 절로 놀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매니저님들도 취재가 있다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셔서 동행했다. 카메라 챙겨 오길 잘 했다.

매니저님의 추천으로 처음 먹어본 취두부. 보통 먹는 취두부는 아니고 취두부 꼬치? 였다. 취두부도 각양각색이라 냄새가 나는 취두부가 있고 안 나는 취두부가 있고, 냄새가 나는 취두부도 냄새가 다양하다. 동네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길에서 취두부 파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취두부 냄새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 오히려 지나갈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익숙해지려 노력했더니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취두부 냄새에 거부감은 거의 사라졌다.

'지옥의 냄새 천상의 맛'이라던 취두부, 이날 먹어본 취두부는 지옥의 냄새도 아니었고 천상의 맛도 아니었다. 역시 냄새와 맛은 비례하는 걸까. 맛보는 정도라면 먹을 수 있겠지만 혼자서는 다 못 먹을 것 같아 4월 초에 친구가 오면 함께 먹을 생각이다. 이 친구는 4년 전 대만 연수 때 취두부를 무척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그러나 결국 이 친구는 4월의 방문에서 취두부를 먹지 않았다...ㅠㅜ)

절 옆에서 파는 고구마. 고구마라 목이 막히긴 했지만 적당히 달아 맛있었다.

단수이 라오지에로 내려와 요우빤油飯을 먹으러 갔다. 유명한 집이라며 데려가 주셨다. 하지만 요우빤은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해서 다른 음식을 시켜 먹었다. 돼지고기 수육에 생강채를 얹은 요리嘴邊肉zuibianrou 먹어봤는데 정말이지 이 요리에 빠지기 시작했다.

단수이 라오지에 입구 쪽에서 좀 더 들어가면 나오는 과일을 파는 곳. 매실에 절인 것인지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한 통에 150원. 새콤달콤한 것에 환장하는 나는 다음에 단수이에 오면 이곳을 다시 들르기로 다짐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4년 전의 대만 여행 사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불현듯 떠올라 뒤져보았다. 다행히 아직 지우지 않아 남아있었다. 의도하고 찍은 것이 아닌데 우연히 비슷하게 찍혔다. 아마 4년 전에 방문했을 때엔 막 표지판을 새것으로 교체했었나 보다.(사실 왼쪽 표지판의 경우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동안 단수이에 간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단수이 역에 도착해 역 밖으로 나간 순간 4년 전 비가 찔끔찔끔 떨어지던 그 날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일주일 동안의 연수 일정 중 첫날의 첫 일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던 단수이. 스타벅스 앞의 큰 나무, 그날은 이른 아침이라 문 연 가게가 하나도 없었던 라오지에, 빗물이 고인 웅덩이, 비가 오고 있음에도 여기저기 흩어져 사진을 찍던 사학과 학우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행으로 대만에 빠질 줄은 몰랐고, 친구와 가볍게 '여기 와서 살자!'라고 했던 것을 4년 후에 정말로 이뤄낼 줄도 몰랐다. 

4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차가 존재함에도 그 공백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바로 며칠 전처럼 느껴졌다.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는 4년 동안 어떤 일들이 내게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며칠 전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되려 허무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입학한 지 만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고, 20대에서 30대가 되었고, 호주에서 1년 동안 지내며 팔이 두 동강이로 부러져 수술도 받아봤고, 염원의 독일에서도 8개월을 지냈고, 생애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긴 시간도 단수이 강 앞에선 마치 없었던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니, 4년 전 대만으로 연수 왔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1)

3월 10일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역사적인 날이었다. 나 또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만에서 역사적인 날을 축하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는 올바르지 못한 관행과 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점점 더 심하게 병이 든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던 차였기 때문에, 이것이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쳐나 가야 할 곳, 개선해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겠지만, 천천히 길게 내다보고 조금씩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온전히 한국 사회만을 보고 한국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면, 그건 정말 괜찮은 나라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게 한국은 여전히 살고 싶지 않은 나라다.


2)

3월 11일은 전날 있었던 BBC 방송과 부산대 로버트 켈리 교수의 재밌는 인터뷰 영상으로 시작했고, 그 인터뷰에 대한 다양하고 처참한 반응에 속이 상했다. 어릴 땐 상상도 못 하였던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 등으로 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더 변화하려고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의외로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어떤 미래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방향을 설정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와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보면, 적어도 변화는 필수불가결이라는 생각을 한다. (라고 너무 돌려 쓰면 너무 공격을 의식한 말이 되겠지. 나는 (한국)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도저히 못살겠다고 뛰쳐나왔겠는가. 당연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다. 싹 다.)

개인이, 사회가, 나라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가는 각자 다르겠지. 그것들은 각 나라에서 '선거'의 결과로, 그리고 그 선거에 대한 반응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내 자식들(아직 없음)은 이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이상향의 세상이 있다. 나의 자식들이,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놓는 것, 나의 아이들을 올바른 사고를 바탕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갈 일원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어차피 죽을 존재인데 굳이 인간이,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책임감을 갖고,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바르게 사고하고 정직하고 올곧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적고 보니 몇 줄 안 되는 짧은 문장이지만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20대 내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고, 30대에 들어서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내가 말하는 '세상'의 범위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한국인'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세상을 의미한다.


3)

그리고 저녁때 즈음, 6년이란 긴 시간은 일생일대의 사건에도 무뎌지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의 공포, 그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기까지 5개월의 시간 동안의 기억들.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완전히 머리 속에서 사라질까 봐, 언젠가는 잊고 살게 될까 봐 애써 다시 각인시킨다. 나는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의 사무실 텔레비전으로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괴물 같았던 검은 바다를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 내 심장을 잡고 뜯어내는 느낌이었다.


수도 없이 얘기해왔지만, 나는 이 날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 이후로도 이 공포는 내게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하다가 4년 정도 지나서 어느 날 말없이 떠나갔다. 슬프게도 그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언제 죽을지 몰라'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일본 생활 동안 나를 지탱해주었던 먼 미래를 꿈꾸는 힘과 마음속에 하고 싶은 것을 간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반짝이던 내 눈은 죽은 동태 눈깔처럼 변해버렸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그래서 이 서른 살에 시작한 삼 개국 워킹홀리데이 생활도 하고 싶은 것은 없는 채, 이후의 삶은 계획하지 않고 시작했다. 계획은 세워도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거야, 살다 보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몰라-라며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4)

2011년 3월 11일에 겪은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2014년에도 겪었다. 언론사의 거듭된 오보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고, 간절한 희망이 끝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아. 뭐라 이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인재人災 앞에서 누군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한 없이 무거워진 마음, 그 절망에 수 톤의 추를 추가로 달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부족해 누군가들의 '지겹다, 그만해라' '잊을 때가 되었다'는 말은 이미 아픈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라는 도저히 내 상식과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동안 한국이 이름을 잃고 '헬조선'이라 불려 온 이유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5)

암흑과 같은 시간들을 지나 드디어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 듯했지만, 당장 눈 앞에 5년에 한 번 있는 대국민 흙탕물,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예전부터 지지 후보를 정한 상태였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하였기 때문에 후보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상은 내 결정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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