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쉽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전부 털어놓고 싶지만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 깊이 미워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사람이 있다.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들 마음의 응어리 하나씩은 다 있다. 모두 각자의 응어리를 떠올리며 이 글을 읽으면 감정 이입이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수영 전집에 있는 죄와벌이라는 시다. 도대체 18살짜리가 뭘 안다고 엄마는 이런 책을 사줬던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다 알았던걸까, 나는 그 책을 10년째 읽고 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다보면 죄와 벌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미워하려면 스스로 갉아먹힐 각오를 해야한다. 갉아먹힐 각오조차 하지 않고서 누군가를 미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그 정도까지는 안 미워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미울 때 내가 그를 죽일만큼 미워하는가 생각 해본다. 아무리 생각 해봐도 살인을 할 만큼은 아니다. 감옥에서 보낼 10년정도의 시간을 감수할 수 있을 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가 있을 때. 살인도 하고 미워도 할 수 있다.
미워하는 것 보다 사랑하는게 쉽다. 용서하는게 쉽고 가엾이 여기는게 쉽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스스로 갉아먹힐 자신이 없고,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각오도 없는 나를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였고 누군가 너의 왼 뺨을 때리거든 오른 뺨도 내놓으라 했던가. 그래서 나는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로, 이기보다 지기로, 단죄하기보다 용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