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Sep 05. 2023

세월의 파도와 함께

나의 삶을 내가 감당하면서

  2년 차에 처음 맡은 담임. 내가 무슨 상담을 하나 싶지만 상담을 하긴 한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작한 상담이라도 ‘힘든 일은 없어?’ 하는 말 몇 마디에 눈물을 쏟는 아이들이 자주 있다. 울면서 앉아있는 학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린 날의 내가 교복을 입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다. 교육학에서 상담 배울 때 내담자가 운다고 같이 울지 말라 그랬는데, 나는 상담 교사로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학생이 울면 어김없이 같이 운다.     


  엄마가 건강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계신다는 아이, 몸이 아픈 오빠가 있는 아이,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다시 옛날의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 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말을 못 하겠다는 아이.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다 해본 고민이다. 앞에 앉은 아이에 내 모습이 겹친다. 그러면 나는 자꾸 내가 더 못 참고 울게 된다.      


  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힘들다. 한바탕 눈물을 쏟았더니 힘도 쭉 빠진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은 훅 지나간다. 어두워진 학교 주차장을 빠져나와 운전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힘들다. 아까는 학생이 앞에 앉아있어서 차마 이렇게까지는 울지 못했다면 그 때 부터는 온전히 나의 감정을 내가 감당하는 시간이다. 울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나의 어린 날에도 수많은 어른들의 손길이 스몄을 것이다. 그 어른들도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당신들의 어린 날을 겹쳤을까?    

  

  우리는 각자의 상처로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에게 나를 겹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함께 울었던 나처럼. 그리고 동시에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의 부모님도 이해가 된다.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둔 아이를 보고는 며칠을 힘들어했다. 아이를 혼자 두고 누워계신 어머니의 마음도 차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저마다의 무게를 나는 나만의 깊이로 이해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답이 아니라면 모두 오답으로 여기던 뻣뻣했던 어린 날의 내가 점점 세월의 파도와 함께 물렁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조금은 특이한 사랑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