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내가 감당하면서
2년 차에 처음 맡은 담임. 내가 무슨 상담을 하나 싶지만 상담을 하긴 한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작한 상담이라도 ‘힘든 일은 없어?’ 하는 말 몇 마디에 눈물을 쏟는 아이들이 자주 있다. 울면서 앉아있는 학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린 날의 내가 교복을 입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다. 교육학에서 상담 배울 때 내담자가 운다고 같이 울지 말라 그랬는데, 나는 상담 교사로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학생이 울면 어김없이 같이 운다.
엄마가 건강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계신다는 아이, 몸이 아픈 오빠가 있는 아이,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다시 옛날의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 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말을 못 하겠다는 아이.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다 해본 고민이다. 앞에 앉은 아이에 내 모습이 겹친다. 그러면 나는 자꾸 내가 더 못 참고 울게 된다.
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힘들다. 한바탕 눈물을 쏟았더니 힘도 쭉 빠진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은 훅 지나간다. 어두워진 학교 주차장을 빠져나와 운전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힘들다. 아까는 학생이 앞에 앉아있어서 차마 이렇게까지는 울지 못했다면 그 때 부터는 온전히 나의 감정을 내가 감당하는 시간이다. 울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나의 어린 날에도 수많은 어른들의 손길이 스몄을 것이다. 그 어른들도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당신들의 어린 날을 겹쳤을까?
우리는 각자의 상처로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에게 나를 겹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함께 울었던 나처럼. 그리고 동시에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의 부모님도 이해가 된다.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둔 아이를 보고는 며칠을 힘들어했다. 아이를 혼자 두고 누워계신 어머니의 마음도 차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저마다의 무게를 나는 나만의 깊이로 이해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답이 아니라면 모두 오답으로 여기던 뻣뻣했던 어린 날의 내가 점점 세월의 파도와 함께 물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