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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겨울에 푸르다.

by 버들 Dec 20. 2024

(14화 갯가, 갯마을의 아이러니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수산물의 생산은 예측하기 힘들다.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기후변화는 갯마을에 이르러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컨대, 치패들이 활발히 생장하려면, 어느 시점엔 수온이 충분히 올라갔다, 어느 시점엔 충분히 떨어져야 한다. 아무리 원해에서의 수온변화를 미리 측정할 수 있다 해도, 그게 어느 갯가에서 어떻게 오르내릴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어획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물을 치려면 물살을 읽어야 하는데 수온이 변하면 조류도 덩달아 변하기 마련이고, 수심이 얕은 앞바다에선 그 정도가 가히 변화무쌍이다. 이러한 환경적인 변수들을 통제하기 위해 유수의 기관들이 양식기술들을 개발해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역부족이다.


 수산물은 유통마저 어렵다. 어획하기에도 바쁜 영세한 어민들에게 최종소비자의 수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판로를 찾아내 관리하고, 그래서 중간위탁상들과 대등하게 거래를 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수산물은 맛과 식감이 신선도와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냉동하는 순간 상품성이 생물보다 낮아진다. 유독 수산물이 제철산지음식으로 가치가 높은 이유이다. 어획한 순간, 빠른 시일 내에 팔아 치워야 한다. 다른 상품들처럼 재고로 쌓아 놓을 수도 없다. 그러니 마음이 조급할 쪽은 중개상이 아니라 어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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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삶은 꼴뚜기다. 쌀 같이 생긴 건, 알이다. 그리고 (우) 갑오징어회이다. 둘 다 고흥에서 처음 접한 제철산지음식들이다.


 생산의 불확실성, 짧은 유통기한, 수산물의 이 두 가지 특성은 사업자로서 어민을 궁지로 몰아가는 숙명과도 같은 제약이다.      


 이런 어업을 보조하기 위해 정부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소위 ‘농안법’을 제정하고 공영도매시장제도를 운영한다. 생산자들이 도매시장법인에 생산품에 대한 거래를 위탁하고, 도매시장법인은 장을 열어 중도매인들끼리 가격 경쟁을 붙이거나,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해 중도매인과 적합한 가격을 협의하는 구조다. 도매시장법인은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떼어 가는데, 높은 가격을 쳐야 이윤도 많아질 테니 자연스럽게 생산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게 될 거라는, 뭐 그런 원리다. 이제 정부는 농수산물 가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고, 농수산물안정기금을 운용해 농수산업을 보전할 수 있게 됐다.     


 조금은 일반인의 관심에서 빗겨 나 있는 농안법이지만, 알고 보면 꽤나 뜨거운 감자다. 농안법은 1977년 제정된 이후 스무여 차례나 개정되며 역동적으로 변해 오고 있다. 당연하다. 법 하나, 제도 하나 만들어 놓았다고, 국가 규모의 유통구조가 공장 톱니바퀴 굴러가듯 매끄럽게 작동할 리 만무하다. 도매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대형마트들이 성장하고, 도매시장법인은 도매시장법인대로 수확체감법칙에 따라 독과점에 대한 압력 아래 놓이면서 시장 문제는 난항을 겪게 된다.


 게다가 애초에 시장에다 맡겨 놓을 수도 없다. 농수산물 가격은 비탄력적이다. 상품의 가격이나 소비자의 소득과는  상관없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진다. 비싸다고 밥, 김치, 계란 따위를 안 먹지 않는다. 형성된 가격이 생산과 소비를 조정해주지 못하니, 가격은 안정될 수 없고, 주로 생산 상황에 따라 폭등과 폭락을 반복한다. 그러니 '대체재'니, '희소재'니 하면서 국가가 소비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정쟁하기에도 딱 좋은 이슈다. 알다시피 많은 지방이 농축수산업에 근간을 두고 있다. 지방을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겐 생산자를 보호하는 규제를 밀어붙일 확실한 유인이 있는 반면, 국가경제구조를 고민해야 하는 관료들은 난처한 기색으로 조정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는 와중에도, 한덕수 권한대행은 농안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했다.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는 와중에도, 한덕수 권한대행은 농안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공영도매시장제도를 우회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바로 ‘산지조직화’이다. 생산자들이 출자를 통해 생산조합을 만들거나, 합병, 계열화를 통해 기업체를 만들거나 해서, 굳이 도매시장제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생산 규모를 확보하고, 유통상들에 대해 일종의 가격 협상력을 갖추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시장지배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기업들로 농협, 서울우유협동조합, 하림 등이 대표적이다. 수산업과 관련해서는 수협이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농축산업보다 수산업의 산지조직화가 훨씬 더 어렵다. 생산의 불확실성, 유통의 까다로움, 어민을 옥죄고 있는 두 가지 제약이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한층 더 까다로운 사업리스크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생물을 대규모로 유통하려 드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양식생산이 가능한, 그래서 이미 레드오션이기도 한 일부 생물 품목을 제외하면, 품목을 다각화해도 리스크가 회피되기는커녕 더 커지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상품의 유통기한을 늘려줄 수 있는 ‘냉동’을 포함한 수산물의 가공이 선행되어야, 규모를 갖출 수 있는 여지라도 생긴다. 가공식품시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풀필먼트(fulfillment)를 지향했던 수산업체의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 플랫폼 배송으로 인한 노동유연화를 기회삼아 창업했던 수산물유통 스타트업 ‘삼삼수산’은 수산물을 활용한 밀키트 시장을 공략해 살아남은 반면, 생물에 대한 당일어획 당일배송을 기치로 걸고 340억 원 규모의 수많은 VC 투자를 받았던 ‘얌테이블’은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런 판국에 갯마을에 닥친 지역소멸문제는 공유자원(commons)에 대한 공동체관리의 측면으로 보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주지한 바처럼, 위험하지만 풍족한 바다 자원은 쉽게 방치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곳 오취마을에선 비교적 젊은 소수의 후계어민과 다수의 외국인 근로자가 인구가 줄어들어 생긴 어업의 공백을 메꾸고 있다. 비록 마을회를 중심으로 마을의 모든 가구가 함께 갯마을의 자원을 관리해 가던 호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가업을 이어받은 몇 명의 뜻있는 젊은 어민들이 힘을 합쳐 그 관례를 지켜나가고 있다.


 잠깐, 이것도 갯마을 어장관리를 관통해 왔던 독과점화라고 볼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맞다. 오늘날에도 독과점화의 압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지역소멸위기로 인해 더욱 심대해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아니다. 규모 있는 기업이 갯가를 산업화시켜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갯마을은 쇠락하고, 아침저녁으로 직원과 외국인근로자들만 들락날락하는 공장지대로 변모할 것이다. 풍부한 바다자원은 특정 기업의 존속을 위해 사용될 것이고, 사적으로 오남용 될 것이다. 갯마을 공동체의 자원관리는 이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2024년 오취마을회 총회의 풍경, 많이 축소된 마을총회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공동체의 자원관리는 살아있다.2024년 오취마을회 총회의 풍경, 많이 축소된 마을총회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공동체의 자원관리는 살아있다.


 그렇기에 인구가 줄어드는 갯마을의 발전은 기로에 서있다. 국가는 어촌개발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법을 견지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농안법, 수협법 등을 제정해 개별 어민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수평적인 산지조직화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또한 ‘6차산업화’라는 기치 아래, 노동집적적인 어업(1차 산업)의 채산성을 높이고자 한다. 수산물을 상품으로 가공하여 유통(2차 산업)하고, 갯마을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서비스산업(3차 산업)을 육성하는 식이다. 신규 어민, 즉 귀어민들이 갯마을에 잘 안착할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귀어·귀촌 지원과 함께 ‘자율관리어업공동체’라는 제도를 통해 외지인을 환대할 수 있게끔 갯마을의 체질 개선을 유도한다.     


 이제 이장, 계장, 개발위원들은 행정의 말단 단위인 ‘마을회’를 운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을법인'을 세워야 한다. 널찍한 나무마루가 있었던 마을회관은 신축되어 숙박공간, 조리시설, 식당, 판매장 등을 갖추게 되었고, 어패류를 캐던 갯벌은 체험학습장으로 변해간다. 잘 나가는 마을이라면 해썹(HACCP) 설비를 갖춘 공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점차 권한은 집중되고 규모는 커져간다. 단순히 어업만으로 갯마을을 꾸려가기엔 지역소멸의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과점화의 압력 아래, 갯마을의 발전을 모색하는 도정에는 분명 길잡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갯마을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며, 함께 꾸려나가는 ‘갯벌어로’이다. 갯마을의 알파요, 오메가인 그 '갯가'에서 일어나는 그곳만의 어로다. 그렇기에 갯벌어로는 살아 있는 공동체성을 보존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대지는 황량해져 간다. 한 해, 만발했던 나무의 이파리들은 말라 비틀어 떨어지고, 흙 위를 덮고 있던 식물들은 시들어 땅 밑으로 숨어든다. 모든 색깔은 차츰차츰 잿빛으로 변하다 끝내 무엇 하나 다를 것 없이 흰색으로 덧칠된다. 수많은 동물들은 숨을 서서히 늦춰가며, 마치 수렴하는 그래프처럼 그 활동신호를 늘여간다. 하지만 갯벌은 반대다. 갯벌은 겨울에 푸르다. 파래, 매생이 따위가 갯벌 위로 그야말로 삽시간에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대지가 잠들어갈 때 갯벌은 깨어나는 것이다. 취도 앞바다에 서서 하얀 겨울 바다, 새빨간 노을에 물들어 가는 흙빛 갯벌, 그리고 그 위에 깔려 있는 녹색의 해조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소멸위기지역으로 여겨지는 갯마을의 생존이 바로 이 갯벌어로에 있노라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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