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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한 다라이=수학여행비

by 버들 Nov 29. 2024

 달라도 너무 다른 남도 끝자락 섬마을과 수도 서울 근린사회(neighborhood). 그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바로 ‘가족’의 위상이다. 한 세기 전, ‘사회’ 대신 ‘가족’을 강조했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치켜세워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통치이데올로기로 써먹기 위함이었다. 거의 전 세계를 망라했던 이런 생각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영악하고, 무지막지하게 나이브했다.


 일면 이해는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졌던 억압은 얼마나 지긋지긋했을 것이며, 세계시장으로 옮겨간 국가 간 각축전에서 자국의 ‘도시’들은 얼마나 중요했겠는가. ‘모던’이라는 기치를 걸고 나라와 민족과 통치체계는 경쟁적으로 ‘진보’ 해야 했다. 위정자들에게 사회는 당연히 더욱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했고, 이러한 방향성은 통치에 관한 ‘계명’이었다. 시골 짝 어딘가, 가족은 ‘문화’적으로 무언가 뜯어고쳐야 할 것 같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회는 시장 원리로 재구축해야 했다.      


 섬마을에 와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 여기선 어딜 가도 다 가족이다. 연로한 여성어르신들은 깊은 얘기를 할라치면 자식 말씀들로 ‘무한회귀’ 하시고, 마을 이야기는 듣다 보면 결국 일가 간의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을 할라 해도, 친척들이 도와주고, 그 돈을 한 번 쓸라 해도 친척의 지인들에게서다. 섬마을의 근린사회는 정말 가족을 근간으로 서있고, 경제는 그 사회에 묻혀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는 가족의 ‘살림살이’와 밀접하다. 괜히 경제가 ‘이코노미(economy)’이고, 그 어원이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이니 그런가 싶더라도, 가족이란 게 요 근래에 와서 소홀해졌을 뿐, 사실 변한 건 딱히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젊은 마을 주민들에겐 딱 아들뻘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 누구누구의 자녀가 결혼해, 마을 피로연이 열리면 내 또래들이 내려온다. 이십 대 친구가 아버지와 함께 공구를 들고 고모네 하우스를 고치거나, 어머니와 하루 종일 수다 떨면서 굴 껍데기를 까기도 한다. 내 또래 사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나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화목한 게 참 보기 좋다 싶으면서도, 정작 나는 우리 가족에겐 데면스러운 아들이라, 속이 뜨끔 거리는 것도 가족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서겠지.         


서른이 안된 따님이 본가에 내려와 새벽 두 시부터 부모님과 함께 굴 껍데기를 깐다.서른이 안된 따님이 본가에 내려와 새벽 두 시부터 부모님과 함께 굴 껍데기를 깐다.


 내 가족은 아니지만, 한 가족과 함께 굴 껍데기를 까다가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푸념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이렇게 매일 굴 껍데기를 까면 허리가 아프겠다, 내 가족도 아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걱정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따님이 하신 말이 있다. ‘그래도 여기 어르신들에게 굴 한 다라이 까는 게 자녀의 수학여행비고, 용돈이고 그랬다고.’ 정확히 말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수학여행비도 그렇게 마련됐을 터였다. 나보다 어렸는데 나보다 훨씬 의젓해서 내심 놀랐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갖다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굴 껍데기도 잘 깠다.


 게다가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가족만은 마지막 편’이라 하지 않던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취마을은 외지인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돌아오고자 하는 이에겐 한없이 너그럽다. 후계어민들 중 귀향민들이 몇 명 있다. 다들 외지로 나가 살다 인생에 풍파를 맞고 돌아왔다. 그중 한 명인 청년회장님은 수도권에 소재한 대형여행사에서 일하며, 아내와 딸 둘을 낳고 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어떤 사유로 아내와 사별하게 되었고, 그 후 어머니가 계신 오취마을로 내려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현재 따님들은 대학에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마쳐가고 있다. 청년회장님은 우리 직원들을 정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한 번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시골까지 와서 일하는 우리가 짠해 보인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주민들과 여러 번 일을 해봤는데, 이런 애정 어린 시선은 처음이라 코끝이 시큰했다.       


 생활서비스의 측면에서도 가족의 역할이 크다. 아무래도 고령화가 심각한 섬마을이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독거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개별 세대에 상수도도 제대로 직결되지 않았었던 지라, 자연스레 이런 독거어르신들이 복지서비스를  받고 계신지 염려스러웠다. 차차 조사해 보니, 자녀들이 큰 역할을 하고 계셨다. 어르신 대부분이 자녀 서넛을 슬하에 두고 계셨는데, 그중 적어도 한 명은 근처에 살며, 부모님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생활서비스 현황을 조사하다보니,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생활서비스 현황을 조사하다보니,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무작정 낭만화할 순 없겠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효자, 효녀들의 활약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이들과 함께 일종의 향우회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 주민들에게 의견을 여쭤봤다. 반응은? 단호하게 그런 거 하지 말란다. 자식들이 마냥 좋아서 부모를 돌보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셨다. 그러고 보니 자녀 이야기를 반복하는 여성어르신들에게 한이 있다면 그건 가족 때문이었고, 허리와 무릎이 상할 때까지 그 힘든 굴 작업을 이어나가게 되는 것도, 말하자면 결국 가족 때문 아니겠는가.     


 실제로 집수리 봉사활동을 위해 마을의 가가호호를 둘러본 결과,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은 자녀가 ‘못 챙겨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세대는 복지관이 꼼꼼히 돌봐준다. 오히려 정말 열악한 곳은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자녀가 ‘안 챙겨주는 곳’이었다. 가족 불화로 인한 방치가 가장 무서웠던 것이다. 주민 말마따나 ‘저 양반 언제 죽나 한단다.’ 물론 반쯤은 농담 섞인 말씀이겠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마음 한 편엔 이런 심정도 ‘같이’ 자리 잡고 있겠구나,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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